윤석열 정부의 긴축재정, 거꾸로 가고 있다

강병구 2024. 11. 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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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재의 직필] 긴축을 넘어 혁신과 포용의 재정으로

[강병구]

▲ 기쁘지 않은 소상공인의 날 소상공인의 날인 5일 서울 한 전통시장 상점이 폐업해 임대 안내가 붙은 모습. 한국신용데이터는 지난 4일 '2024년 3분기 소상공인 동향 리포트' 보고서에서 "3분기 소상공인 사업장 당 이익(매출-지출)은 1천20만원으로 전 분기보다 13.7% 감소했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정부는 2025년 예산의 목표를 '서민 중산층 시대의 구현'에 두고, 예산편성의 기본방향을 민생과제 집중투자, 경쟁력 제고와 사회구조 개혁, 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로 설정했다. 특히 이번 예산안에서는 약자복지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 기조인 '부자감세와 민간주도 성장'으로는 민생회복이 어려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선언과 달리 긴축적으로 편성된 예산 규모는 민생경제를 살리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2025년 예산안의 총지출 증가율은 3.2%로 총수입 증가율 6.5%의 절반에 불과하고, 재량지출의 증가율은 0.8%로 계획하고 있지만, 내년도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치(KDI 2.1%)를 고려할 때, 실질 규모는 오히려 줄어들게 된다. 그야말로 초긴축예산이고, 지출구조조정을 통해 24조 원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취약한 복지예산이 감축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민생경제 살리기에 턱없이 부족한 예산
▲ 2025년 예산안 연도별 비교
ⓒ 강병구
긴축예산은 낙수효과가 작동하지 않는 현실에서 추진된 부자 감세와 건전재정의 불가피한 귀결이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민간주도 성장을 강조하면서 재정 운용 기조를 감세와 건전재정으로 전환했고, 두 차례의 세법개정안을 통해 자산소득에 대한 대규모 감세를 추진했다. 2024년에는 19조 7000억 원의 감세안을 제출했다. 상속 및 증여세법 개정안에 따르면 향후 5년간 18조 6000억 원의 상속·증여세가 감소하고, 감세액의 80%가 상위 1%의 자산가에게 귀속될 것으로 추정된다.

2024년 세법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건전재정을 강조하는 정부로서는 긴축의 끈을 더욱 조여야 할 것이다. 긴축예산은 세수결손에 기인한 탓도 크다. 정부는 지난 9월 26일 세수 재추계 결과를 발표하여 올해 세수 결손액이 29조 6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9월의 국세수입 진도율(69.5%)은 2023년 9월의 77.5%보다 낮아 세수 결손액이 더 큰 폭으로 증가하고, 이는 건전재정을 강조하는 정부의 재정 운용을 압박할 것이다.

한편 경기둔화 국면에서 정부의 긴축재정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2023년의 경제성장률은 1.4%로 당초 전망치 2.5%를 크게 밑돌았고, 2024년 2/4분기의 -0.2%에 이어 3/4분기 경제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0.1%를 기록했다. 미래의 성장률 전망도 밝지 않다. 2024년 4월 국제통화기금(IMF)의 2024~2027년 연평균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022년 4월보다 0.17% 포인트 낮아졌다. 2024년 상반기에는 반도체 수출의 호조로 경제성장률이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설비투자는 오히려 감소했다. 높은 가계부채비율과 고금리로 민간소비가 위축되고, 주택공급의 축소로 건설투자도 부진하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내수가 위축되면서 2023년 폐업을 신고한 사업자는 100만 명에 육박했다. 고용률과 실업률이 개선되었지만, 늘어난 취업자는 주로 여성 고령자에 집중되었다. 고금리와 실질임금의 하락으로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면서 고령의 여성들이 노동시장으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확장적인 재정정책이 필요한 시기에 재정을 긴축적으로 운용한 결과이다.

경제의 발목 잡고 있는 긴축재정
▲ 윤석열 정부 경제성적표 자료 : 통계청
ⓒ 강병구
한편 성장세의 회복이 지연되는 가운데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도 확대되었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상위 20%와 하위 20% 계층 간 소득 격차가 2022년 2분기 15.6배에서 2024년 2분기 18.2배로 벌어졌다. 노동시장에서 저임금 노동자의 증가와 실질임금의 감소로 근로소득의 격차가 커졌고, 부동산자산을 중심으로 확대된 자산 불평등은 재산소득 격차를 주도했다. 부동산자산의 지니계수는 2021년 0.671에서 2023년 0.677로 상승추세에 있다.
▲ 소득 5분위 배율 자료 :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 강병구
대전환기의 복합위기에 대응하여 민생경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혁신으로 성장동력을 살리고, 분배구조의 개선으로 사회발전을 견인하는 '혁신적 포용 국가'의 조세재정 정책이 필요하다. 분배구조의 개선은 저소득층에 대한 소득지원을 넘어 성장과 복지국가 발전의 토대 구축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내수기반이 취약한 경제구조에서 분배구조의 개선은 성장의 지렛대 역할을 한다.
▲ 달라진 청년 취업 일도 구직 활동도 하지 않고 '그냥 쉬는' 사람이 1년 새 24만명 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쉬었음' 청년(15∼29세) 중 10명 중 3명은 원하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쉬고 있다고 답했다. 통계청은 6일 이런 내용을 담은 '경제활동인구조사 비임금근로 및 비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시 청년일자리센터.
ⓒ 연합뉴스
첫째, 낙수효과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부자 감세 기조를 철회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투자와 고용증가를 기대하면서 대기업 위주의 감세 정책을 시행했지만, 법인세 인하의 투자 및 고용효과는 미약하고, 소득 불평등은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낙수효과가 작동하지 않는 현실에서 부자 감세 기조를 유지한 채 건전재정을 강조하면 조세 및 재정의 재분배 기능과 안정화 기능이 약화되어 양극화와 불평등은 확대되고, 성장잠재력은 크게 저하될 것이다. 최상위 자산가에게 감세혜택이 집중되는 상증세 개편안은 폐기되어야 하고, 여야 합의로 입안된 금융투자소득세는 예정대로 도입해야 한다.

둘째, 긴축재정 기조를 철회하고, 경기대응적으로 재정을 운용해야 한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에서 안정화정책은 잠재성장률의 제고는 물론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부 유럽국가들은 확장적 재정정책이 필요한 시기에 긴축정책으로 선회함으로써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면서 국가채무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유럽이 경험했던 자멸적 긴축재정의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약자복지를 위해 사회안전망과 고용안전망을 좀 더 촘촘하게 구축해야 한다. 정부는 2025년 예산안에서 약자복지를 강조했지만, 실제로 배정된 예산은 취약하다. 보건𐩐복지 분야의 예산이 가장 큰 규모로 증가했지만, 대부분은 공적연금과 노인 부문에서 발생한 의무지출이며, 임대주택 예산은 큰 폭으로 감소했다. 더욱이 세수결손으로 지방교부세가 감축되면서 민생회복을 위한 지방정부의 역할이 위축되고 있다.

넷째, 재정의 민주적 통제와 정치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 예산편성은 정부의 고유권한(헌법 제54조제2항)이고,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헌법 제57조). 국회의 예산 결정 권한을 강화하고, 예산편성과 관련된 주요 논의와 의사결정 과정을 모두 공개하여 예산편성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나아가 선거제도의 비례대표성을 강화하여 서민·중산층의 요구가 균형있게 반영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고, 국민참여예산제도와 시민참여예산제도의 활성화로 재정의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며, 지역균형발전을 견인하는 방식으로 재정 분권을 추진해야 한다.
▲ 강병구 교수 필자 사진
ⓒ 강병구
* 필자 소개 : 강병구는 인하대 교수이며, 한국재정정책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세행정 개혁TF 단장, 재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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