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버터] 기부자들이 변했다 "인건비 충분히 쓰세요!"
필란트로피 가이드 인건비와 간접비
“저는 스타트업 창업과 경영을 통해 몇 가지 배움을 얻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인재의 중요성이에요. 조직이 성과를 내고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투자가 선행돼야 합니다. 영리뿐 아니라 비영리에도 해당하는 얘기지요.”
김강석 블루홀(현 크래프톤) 공동창업자는 지난 1일 더버터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사랑의열매에 10억원을 기부한 데 이어 비영리 인재와 조직의 성장을 지원하는 ‘IP1 기금’에 36억원을 출연한 고액기부자다.
비영리단체의 인건비에 대한 기부자들의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비영리사업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역량을 갖춘 인력이 현장에서 일을 해야 하고, 숙련된 인력을 고용하거나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과거 일부 기부자들이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자원봉사자’로 오해했던 것과 대비되는 현상이다.
# 인건비라는 ‘그물’
종종 이렇게 말하는 기부자들이 있다. “내가 낸 기부금이 사업비로만 100% 쓰이면 좋겠고 인건비로는 쓰이지 않았으면 한다.” 인건비는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부대 비용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건비는 사업의 부수적인 비용이 아니다. 공익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요소다.
인건비는 비영리 예산의 전 영역에 그물처럼 펼쳐져 있다. 덜어내서 생각할 수도 떼어낼 수도 없다. 비영리의 예산 구조를 들여다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국세청은 공익법인의 사업비용을 ▶사업수행비용 ▶일반관리비용 ▶모금비용으로 구분하는데, 세 카테고리 안에 모두 인건비가 포함돼 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아동을 돕기 위해 현지에 가서 일하는 사람에게 주는 월급은 ‘사업수행비용’에 속하는 인건비다. 현지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진행하는 사람에게 주는 인건비도 ‘사업수행비용’로 처리된다. 모금 전략을 짜거나 실행하는 모금부서 직원들에게 주는 인건비는 ‘모금비용’에 해당한다. 단체의 예산을 관리하고 계획을 세우는 재무팀, 인사나 채용을 주관하는 인사팀 직원에게 주는 인건비는 ‘일반관리비용’으로 들어간다.
정호윤 월드비전 경영본부장은 “비영리의 모든 사업은 결국 ‘사람’을 통해서 이뤄진다”며 “내부의 다양한 직원들, 외부의 파트너들, 이들이 각자 하는 여러 일이 모여서 효율적이고 전문성 있는 사업으로 디자인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라준영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비영리 직원들을 ‘비용’으로 보지말고 단체의 ‘자산’으로 봐야한다”면서 “비영리사업의 성과가 사람의 역량에 따라 좌우된다면 직원들에게 쓰는 돈은 ‘지출’이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간접비 깎기
앞에서 설명한 비영리의 세 가지 예산 가운데 사업수행비용을 제외한 두 가지 항목, 즉 일반관리비용과 모금비용을 간접비(오버헤드·overhead)라고 부른다. 사업 현장에 직접 쓰이는 돈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다.
우리나라의 간접비 비율은 대체로 예산의 10~30% 수준에서 정해진다. 기부자가 간접비 비율을 정해주거나 통제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비영리단체가 자체적으로 예산 구조를 짜고 간접비 수준을 정한 뒤 기부자에게 근거를 설명한다. 한국에서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기부자는 간접비를 깎으려고 하고 비영리는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하는 일이 일상처럼 벌어진다. 간접비는 나쁜 돈일까?
간접비의 한 축을 차지하는 ‘일반관리비용’은 단체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데 필요한 돈이다. 행정 인력 비용, 사무실 임대료, 공과금, 사무용품, 시스템 관리비 등을 포함한다. 단체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만들어내는 필수적인 비용이다.
‘모금비용’은 사업에 필요한 기부금을 유치하는 데 드는 경비다. 모금을 기획하거나 실행하고, 후원자와 기부자를 관리하는 데 쓰인다.
만약 간접비가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반관리비용이 부족하면 관리 기능이 부실해지고 사고의 위험성이 커진다. 기부금 사용도 비효율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모금비용이 부족하면 단체의 자생력과 독립성이 약해져 재정적으로 불안해진다.
‘간접비’는 책무성과 투명성을 위한 필수 경비
기부자에게 보내는 성과보고서 작성과 발송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기부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모든 상황이 한꺼번에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는 “간접비는 단체가 자율적으로 사업을 개발하고 운영할 수 있게 하면서도 기부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투명성을 지킬 수 있게 해주는 필수 경비”라고 말했다.
# 기부자의 각성
최근 인건비나 간접비에 관대한 기부자들이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전환되고 있다. IT 창업자 출신 고액기부자들이 중심에 있다. 이들은 사람에 대한 투자가 ‘기부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다고 믿는다. 영리에서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정윤 사랑의열매나눔사업본부장은 “IT나 플랫폼 기업 창업자들은 기부금의 쓰임보다 당초 달성하고자 했던 사업의 성과를 잘 만들어냈는지에 관심이 많다”면서 “김강석 기부자와 김봉진(배달의민족 창업자) 기부자가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의 태도도 달라지고 있다. 김미경 JYP CSR 팀장은 “4년째 월드비전과 해외 환아 치료비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사회공헌 사업이 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비영리의 인건비나 간접비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랑의열매는 지난 2013년 배분기관에 대한 간접비 기준을 20%에서 30%로 상향 조정했다. 이정윤 본부장은 “기부자와 기업의 요구가 이런 방향으로 바뀌다 보니 배분 시스템도 함께 변화하고 있는 것”이라며 “현장에서 성과가 잘 나올 수 있게 인건비나 간접비 부분은 최대한 다 잡아주고 있다”고 말했다.
황신애 이사는 “인건비와 간접비를 높이면 분명 투명성 문제가 제기될 것”이라며 “단체들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사업과 운영 예산을 배정했는지 스스로 잘 설명할 수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김시원 더버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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