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부자잖아" 계산기 든 트럼프, 가장 먼저 뒤집을 합의는 [트럼프 당선]

박현주, 조수진 2024. 11. 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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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부자 나라인데도 돈을 내지 않는다. 우린 더 이상 이용당할 수 없다."(지난달 16일, 폭스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이 6일 확실시되면서 그의 이런 발언이 현실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졌다. 특히 트럼프는 당시 "우리는 시작해야 한다"(We have to start)고 말했는데, 최근 한국이 바이든 행정부와 타결한 방위비 분담금 협정을 뒤집고 재협상을 요구하려는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이는 1기와 비슷하게 재연될 트럼프표 동맹 경시 정책의 예고편에 불과할 수 있다.

지난 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노스캐롤라이나 유세에 나선 모습. 연합뉴스.


동맹에게도 철저히 손익계산서를 내미는 트럼프의 귀환은 한·미 동맹에 큰 무게추를 두는 윤석열 정부에 외교적 위기로 다가올 수 있다. 아산정책연구원은 지난 10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트럼프는 1990년대 초부터 지난 5월까지 '주한미군 유지에 많은 비용이 드는데 왜 미국이 부담해야 하느냐'고 125차례 반복해서 강조했다"며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거래 중심적 동맹관을 강화해 미국의 이익을 보다 담보하고자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달 2일 타결된 12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짜리로 첫해 총액을 전년에 비해 8.3% 인상한 뒤 매년 물가에 연동해 분담금을 올리기로 했다. "합리적 결과를 도출했다"는 게 정부의 자평이지만, SMA는 미국에서 행정협정으로 분류돼 국회 비준 동의를 받지 않는다. 이론적으로 대통령의 뜻에 따라 뒤집을 수 있다.

트럼프는 지난달 15일 한 대담에서 "한국은 '머니 머신'(Money Machine·부유한 나라를 비유)"이라며 "내가 (백악관에) 있으면 (한국은) 연간 100억 달러(약 13조원)를 (주한 미군 주둔 비용으로) 지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가 최근 타결한 연간 방위비 분담금의 약 9배(2026년 기준)를 내라는 요구다. 비현실적인 액수지만, 그만큼 압박 수위를 높이겠다는 엄포로 해석된다.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유세에 나선 모습. AP. 연합뉴스.

트럼프는 방위비 외에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을 비롯한 확장억제 공약에도 청구서를 건넬 전망이다. 그는 재임 시절 주한미군 전략자산 전개 비용까지 SMA 항목에 포함, 한국으로부터 돈을 받아내려 했다. 미 전략자산이 사실상 한반도에 상시 배치되는 것과 마찬가지인 효과를 내기 위해 윤석열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와 쌓아온 확장억제 강화 방안 하나하나에 '가격표'를 붙일 수 있단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한·미는 지난해 4월 '워싱턴 선언'으로 출범한 '핵 협의 그룹'(NCG)을 중심으로 일체형 확장억제 태세를 갖췄다. 지난 6월에는 북핵 공격을 가정해 한국의 재래식 전력과 미국 핵전력을 통합하는 내용의 '공동지침'도 도출했는데, 이런 프로세스마다 상응하는 대가를 바랄 수 있다. 대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 규합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확장억제 강화에 전향적이었던 바이든 행정부와 비교해 트럼프는 '플러스 알파'를 요구할 수 있는 셈이다.

게다가 대선 캠페인 내내 "김정은과 잘 지냈다"고 강조했던 트럼프가 돌아오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탑다운'(top-down)식 직접 협상을 또 시도할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지난 9월 한 포럼에서 "트럼프는 북한과 정상회담을 욕심낼 수는 있지만, '스몰 딜'(핵 동결이나 장거리 미사일만 제거하고 제재 완화 등 보상을 제공하는 합의)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2019년 2월 하노이 '노 딜'의 학습효과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타고난 협상가'로 자부하는 그가 결렬로 끝난 당시 회담보다 대북 요구를 하향조정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도 많다.

전문가들도 북·미 정상회담이 한 차례 더 열릴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의 전개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홍석훈 국립창원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 자체는 양측 모두의 국내정치적 이해관계에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성사될 수는 있지만,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다"며 "트럼프 본인도 북핵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는 모습. AFP.


트럼프가 "내년 1월 취임 전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언한 건 최근 북한의 불법 러시아 파병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트럼프 당선이 확정된만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휴전 협상이 임박했다는 판단 하에 자국 영토였던 쿠르스크 탈환 등에 열을 올릴 전망이다. 종전 시 더 유리한 국경선을 그으려는 이른바 '땅따먹기'식 격전이 벌어지고, 여기에 북한군을 사실상 '인해전술'로 밀어넣을 소지가 크다. 다만 이런 국면이 소강 상태를 맞으면 푸틴에게 무기와 병력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던 김정은의 효용이 대폭 감소할 거란 분석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가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경제 제재와 대중 외교 정책의 재조정을 예고하고 있어 북핵 문제에 있어 미·중이 협력할 여지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핵 이슈가 강대국 경쟁 구도의 종속변수가 됐다"며 "북핵 방정식의 매듭을 풀기가 한층 더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한편 트럼프는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60%에 달하는 고율 관세를, 나머지 국가에서 수입되는 상품에도 10∼20%의 보편 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약했다. 미·중 무역 전쟁과 공급망 경쟁이 심해지며 한국의 전략적 공간도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대중국 견제 목적으로 2022년 출범한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와 같은 해 시행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바이든 행정부표 대외 정책도 축소·폐지될 소지가 다분해 경제안보 측면에서 한·미 동맹을 재점검할 필요성도 커졌다는 지적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선 1기 때보다 더 강도 높게 '트럼피즘'을 펼칠 수 있고 한국도 이로 인한 여파를 상당히 받게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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