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t 화물 진동없이 번쩍… 미래 먹거리 AGV로 도약
지난달 21일 방문한 인천 청라의 현대무벡스 R&D센터에서는 국내 대기업 고객사에 납품을 앞둔 무인이송로봇(AGV) 시연이 한창이었다. 이 AGV는 일반적으로 물류 운반에 쓰이는 적재용 팔레트(1100㎝×1100㎝ 크기)에 1.5t의 화물을 실어도 거뜬하게 옮길 수 있는 제품이다. AGV는 바닥에 놓여있던 팔레트를 큰 진동 없이 쉽게 들어 올렸고 부드럽게 앞으로 이동했다.
바닥에 높낮이가 다른 구역을 지날 때도 AGV에 실린 물품은 별다른 흔들림이 없었다. 성인 남성보다 큰 로봇이 최대 초속 4m로 빠르게 움직이는 데도 소음도 적었다. 현대무벡스는 국내 최대 바이오 기업과 국내 대표 배터리 소재 기업 등에 공급될 제품인 만큼 AGV의 안정적인 구동을 위해 기술력을 쏟아부었다. 자칫 운반 도중 화학 원료나 의약품, 전기제품 등이 손상될 경우 재산 피해뿐 아니라 인명 피해까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직접 옮기는 것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보였다.
앞으로 직진 이동을 하던 AGV는 갑자기 45도 방향으로 사선 이동했다. 곧바로 후진도 가능했다. 이동 방향이 바뀔 때 AGV는 제자리에 멈춰 몸체가 돌지 않았다. 일반적인 물류 로봇이 이동 방향을 바꾸려면 제자리에 멈춰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몸체를 돌려야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영호 현대무벡스 R&D본부장은 “자세 변화 없이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환경에서도 안정적이고 빠르게 물류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운반 소요 시간이 수익과 연결되는 물류 현장에서 방향 전환에 지연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당한 강점으로 작용하는 현대무벡스의 기술력”이라고 설명했다.
토탈 스마트 물류 솔루션 기업 현대무벡스는 2018년 현대엘리베이터 물류 부문과 정보기술(IT) 계열사 현대유엔아이(U&I)가 합병해 출범했다. 1989년 현대엘리베이터의 물류사업부로 시작했지만 기계와 장비, IT, 인공지능(AI) 등 다양한 산업이 융복합 된 스마트 물류가 유망 산업으로 성장하면서 별도의 법인으로 분리됐다. 현재는 현대엘리베이터와 함께 현대그룹의 성장을 이끄는 핵심 계열사로 꼽힌다.
현대무벡스는 최적의 자동화 시스템을 고객사인 기업들에 컨설팅해주고 있다. 직접 설계부터 제작, 시공, 유지·보수까지 스마트 물류 솔루션을 모두 제공한다. 현장 효율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스태커크레인 중심의 자동창고시스템(AS&RS)을 주력으로 삼고 물류 이송에 가장 적합한 AGV 등 물류 로봇까지 설계하고 제작해 공급한다.
물류는 단순히 운송하는 개념을 넘어 입고와 출고, 공정과 공정, 산업과 산업을 잇는 물자의 흐름을 포괄하기 때문에 자동화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현대무벡스가 기업의 물류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방법론과 실행력, 유지력을 모두 제공하는 셈이다.
스마트 물류를 도입하려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현대무벡스의 매출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6월까지 1335억원의 매출액을 올리며 창사 이후 최대 매출(2678억원)을 기록한 지난해의 성과를 올해 곧바로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영업이익도 지난해 41억원 수준에서 올 상반기 기준 90억원으로 대폭 상승했다.
현대무벡스는 올해 최대 수주 성과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무벡스는 지난해 2차전지 스마트 물류사업에 진출해 북미에서 연간 900억원 이상의 수주액을 달성하며 창사 이후 최대 성과를 기록한바 있다.
올해는 지난 6월까지 이미 3200억원의 신규 수주액을 기록했다. 지난 1월 에코프로비엠 캐나다 양극재 공장(200억원), 4월 글로벌 2차전지 소재사 미국 양극재 공장(370억원) 및 호주 시드니메트로사의 사우스웨스트 노선 스크린도어 설치(418억) 등 대형 수주에 성공했다. 배터리팩 제조사의 미국 애리조나 공장 ESS(에너지저장장치) 제조 공정 스마트물류 장비(420억원) 수주도 지난달 이뤄졌다. 2차전지 셀, 배터리 소재, ESS 공정까지 자동화 사업영역을 확대한 것이다.
앞으로의 수주 전망도 밝다. 국내 대기업의 헝가리 타이어공장 스마트물류 구축 수주 계약을 앞두고 있고 국내 최대 가전기업의 스마트물류 구축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현대무벡스는 사업 영역을 넓히기 위해 기술 개발에도 집중하고 있다. 2019년 연매출(1700억원)의 13%가량을 투입해 인천 청라 6612㎡ 부지에 R&D 센터를 구축했다. 자동창고시스템 고도화 기술 개발을 위해 R&D센터 층고를 최대 41m까지 높였다. 이를 기반으로 현대무벡스는 네이버·네이버랩스와 약 2년간 공동 개발을 했고 2022년 네이버 신사옥 1784의 로봇 전용 엘리베이터 로보포트를 완성시켰다. 세계 최초 로봇 전용 엘리베이터로 100대가 넘는 서비스 로봇을 이동시킨다.
현대무벡스는 AGV를 미래 먹거리로 삼았다. 산업계에서는 AGV가 컨베이어 중심의 기계식 이송 자동화를 IT 중심의 지능화로 기술 수준을 격상시킬 수 있는 게임체인저라고 설명한다. 현대무벡스는 자체 기술로 만든 수십 종의 AGV를 이미 선보였고 2차전지, 제약·바이오 등의 산업 현장 투입으로 노하우를 쌓고 있다. 부패방지·규범준수 ISO 통합인증을 취득하고 RE100 달성 실행안도 세우는 등 글로벌 사업 확장 준비도 마쳤다. 이 본부장은 “물류를 넘어 무인화를 지향하는 모든 산업 현장에 현대무벡스의 솔루션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무벡스는 2027년까지 AMR(자율주행 모바일로봇) 플랫폼을 실증하는 국책연구과제 수행 기업으로 선정됐다. 현대무벡스가 과거 10t의 물류를 운반할 수 있는 AGV 개발에 성공한 노하우를 인정받은 셈이다. 회사는 향후 AMR 소재·부품 국산화를 위한 국책과제를 성공적으로 이끈다는 계획이다. 이 본부장은 “AMR 소재·부품 국산화 과제는 유럽·중국 등 외산 제품이 점유하고 있는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좋은 계기”라며 “현대무벡스로서도 AGV에 이어 AMR까지 물류 로봇의 라인업을 확대할 기회”라고 말했다.
이영호 현대무벡스 R&D본부장
AGV 상용화 주도 첫 MZ 임원으로
“현대무벡스는 기계와 설비 중심의 하드웨어 제조 기업에서 지능화된 정보기술(IT) 중심의 소프트웨어 역량까지 갖춘 스마트 물류 전문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 기술까지 더해진다면 물류뿐만 아니라 전 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 플랫폼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전 세계에 기술을 파는 빅테크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다.”
최근 인천 청라 현대무벡스 R&D센터에서 만난 이영호(사진) R&D본부장은 연구개발 조직의 수장으로서 현대무벡스가 국내 대표 테크 기업으로 불리도록 성장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물류 로봇 솔루션 기술은 모든 산업 영역에 적용할 수 있으므로 단순 제조업 기업 이상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자동화에 대한 산업적 열망이 크고, 이를 위한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이 본부장은 “현대무벡스는 이미 물류 자동화 기술 역량을 갖추고 있고 R&D센터를 만들어 미래 기술 투자까지 단행하고 있어 한국을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1981년생으로 현대무벡스 내 젊은 리더로 꼽힌다. 2019년 현대무벡스 R&D본부 로봇솔루션팀장으로 합류해 지난해 8월부터 R&D본부장을 맡았다. 산업 현장에서 다양한 종류의 무인이송로봇(AGV)를 개발해 상용화한 역량을 인정받았다. 최근에는 현대무벡스의 젊은 인재 육성 정책에 따라 처음으로 MZ세대 임원이 됐다.
이 본부장은 중국산 로봇이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한 구조에 균열을 내겠다는 심산이다. 그는 “물류로봇은 저가를 앞세운 중국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했는데 기술력도 뒤처지지 않아 기업들의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면서 “중국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다양한 산업 현장에 얼마나 유연하게 로봇을 구동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확보했느냐다. 고객사에 대한 이해, 스마트 물류 시스템과의 협업 체계, 산업 현장에 최적화된 로봇 사양 구축 등으로 경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AI를 물류 로봇에 적용하기 위한 기술적 역량을 끌어모으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처음으로 개발자회의를 개최했다. 사내 AI 콘테스트도 열었다. 이를 통해 현대무벡스 경영진과 직원들이 AI를 일상화하는 것이 미래 경쟁력이라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 본부장은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모여 큰 개발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AI에 대한 경험이 쌓이면 현대무벡스는 첨단 테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라=전성필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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