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용 목사의 스티그마] 은혜와 긍휼을 구분할 때
성경에서 은혜와 긍휼은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부분이 있다. 은혜와 긍휼이 같은 뜻이라면 굳이 둘을 구분해서 따로 사용할 필요가 없겠지만 성경의 많은 구절은 은혜와 긍휼을 분리해서 사용한다.(출 33:19, 느 9:31, 시 51:1, 사 30:18, 단 1:9, 딤전 1:2, 히 4:16)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먼저 은혜가 ‘헨’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로 표현된다면 ‘울타리를 치다’라는 뜻이다.(시 34:7) 곧 ‘헨’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울타리 안에 구분하여 구별하고 보호하신다’는 의미로 편파적인 사랑을 나타낸다. 여래신장(如來神掌), 즉 부처님의 손바닥 안에 있는 것처럼 ‘헨’의 은혜는 이미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서 사랑이 보장된 상황을 말한다. 문제는 ‘하나님의 때가 언제 나타나는가’이다. 은혜는 하나님의 시간에 대한 것이다.
이에 반해 긍휼은 히브리어로 ‘라함’, 곧 ‘어머니의 자궁’을 의미한다. 단순히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행동해 보여주시는 어머니 사랑을 말한다. 긍휼은 말로만 ‘은혜요, 사랑’이라고 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어머니처럼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갓난아이가 자지러지게 울고 있을 때 곁에 있는 사람들은 우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불쌍히 여기지만 아이의 엄마는 자신의 가슴을 열고 아이에게 젖을 물려 울음을 그치게 하고 필요를 채워주는 모습이 바로 ‘긍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은혜와 긍휼은 철저히 구분된다.
그런데 이사야 30장 18절은 은혜와 긍휼을 함께 선포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이 구절에서 은혜는 이미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 있는 우리가 언제든 얼굴을 돌려 주님께로 돌아가기만 하면 주의 사랑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다림’을 의미하지만, 긍휼은 하나님의 전적인 개입으로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의 상태를 바꾸시고 변화시키는 적극적인 하나님의 섭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은혜와 긍휼이 하나님 사랑의 근원이 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때를 기다려 주시는 아버지의 사랑과 때론 전적으로 손을 뻗어 우리 삶에 개입하여 변화를 이끌어 주시는 어머니의 사랑을 구분해 생각해야 한다.
요즘 세상은 복잡하다 못해 판단이 어려운 시대다. 100여년 전에 있었던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2024년에도 한 치도 변함없이 방송과 신문, SNS 미디어에 반복되고 있다. 국가적 리더십은 본질과 상관없는 곳에서 발생한 불안 요소들을 전혀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스스로 안정을 추구하지 못하고 가장 불안함을 주는 원흉이 되고 있다. 경제는 한순간도 예측하지 못하는 공포 수준의 미래를 맞이하고 있으며, 기후변화에 대한 대안은 어느 것 하나 전체를 아우르지 못하는 편협한 자기주장으로만 가득 채워져 있다.
그래서 교회는 이런 세상을 두고 하나님께 은혜와 긍휼을 달라고 기도한다. 하지만 많은 교회와 성도가 그렇게 기도하고 간구하는데 왜 세상의 수많은 문제가 여전히 지리멸렬한 답답함에 머무르고 있을까. 그 이유는 우리가 반대로 기도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시간이 필요한 은혜를 두고 기도를 해야 할 때 엉뚱하게 적극적인 하나님의 섭리를 구하는 긍휼을 두고 기도하는 우를 범한다. 또 시간이 촉박해 하나님의 긍휼이 전적으로 필요할 때 아이러니하게 긴 시간이 필요한 하나님의 때를 두고 기도하니 세상을 향한 중보 기도는 응답이 요원하다.
이제 은혜와 긍휼을 구분해서 기도할 때다.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한 일이 있고 전적인 하나님의 개입과 섭리가 필요한 일이 있다. 이에 더욱 참된 기도를 위해 분별력이 필요한 때다. 그러한 지혜의 분별로 은혜가 필요한 곳에는 은혜의 기도를, 긍휼이 필요한 곳에는 긍휼의 기도를 하는 한국교회가 돼 세상의 소금과 빛의 자리를 다시 지켜 내길 간절히 바란다.
(연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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