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한강의 태풍이 지나간 자리

맹경환,문화체육부 2024. 11. 7.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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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한 지 한 달이 돼 간다.

온 나라가 한강의 태풍이 지나간 듯하다.

책을 구하지 못한 독자들이 도서관을 찾으면서 순식간에 한강 작품들은 대출 순위가 급상승했다.

독자들은 한강만 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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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경환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한 지 한 달이 돼 간다. 온 나라가 한강의 태풍이 지나간 듯하다. 이제는 태풍이 지나간 자리를 차분하게 정리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지난 한 달 동안 태풍의 한가운데에서 많은 일이 벌어졌다. 서점가는 ‘한강’이 휩쓸었다. 수상 결과가 나온 지난달 10일 밤 대형 서점 사이트가 마비되더니 1주일 만에 대형 서점에서 종이책만 100만부 넘게 팔렸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응답자의 55%가 한강의 작품을 ‘앞으로 읽을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책을 구하지 못한 독자들이 도서관을 찾으면서 순식간에 한강 작품들은 대출 순위가 급상승했다. 독자들은 한강만 읽지 않았다. 한국 작가의 다른 작품도 함께 읽으면서 판매량도 급증했다. 한강이 언급하거나 읽었다고 알려진 책 역시 주목을 받았다. 한국 문학에 대한 해외 관심도 올라가 최근 열린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는 한국 문학에 대한 판권 문의가 늘었고, 선인세 1억원을 받고 팔린 작품도 생겼다. 뜻하지 않은 특수에 인쇄소도 환호성을 질렀다. 밀려드는 주문에 밤샘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태풍이 휩쓸면서 그동안 숨어 있던 민낯이 드러나기도 했다. 한강의 특수는 고스란히 대형 서점의 몫이었고 지역 서점들은 철저히 소외됐다. 대형 서점에만 한강의 책이 원활하게 공급됐지, 동네 책방에는 주문이 들어와도 물량이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출판 유통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었다. 2017년 업계 2위였던 송인서적이 무너지는 등 도매상이 줄면서 출판 유통은 몇몇 거대 기업의 독과점 구조가 됐다. 특히 소매업과 도매업을 겸하는 교보문고 쪽에서 탈이 났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와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는 교보문고가 지역 서점에 공급하는 도매를 중지하고 소매로 자사에서만 판매를 독점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교보문고도 인정하고 한시적으로 교보문고 오프라인 서점에서 한강 작가의 도서 판매를 중단하는 조처를 했다. 하지만 대형 유통 업체의 선의에만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도서 유통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라는 숙제는 남았다.

침체에 허덕이던 출판계에 한강 특수는 모처럼 내린 단비 같았다.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이벤트만으로 ‘책 안 읽는 대한민국’의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힘들다. 출판업계의 지혜, 무엇보다 정부의 의지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출판 콘텐츠는 영화, 드라마 등 영상 콘텐츠의 토대이자 원천이다. 정부는 원천 콘텐츠로서의 출판보다 2차 생산물에 더 많은 관심과 자원을 배치하고 있다. 콘텐츠를 만들 때 드는 비용의 일정 부분을 법인세나 소득세에서 감면해 주는 세액공제 제도는 영상 콘텐츠에만 적용되고 있다. 도서·출판 지원사업 예산도 윤석열정부 들어 대폭 삭감됐다. 내년 예산은 올해보다 일부 늘기는 했지만 2023년 수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 정해진 비율 이상으로는 책값을 할인할 수 없도록 정한 도서정가제도 도입한 지 20년이 넘었기 때문에 득실을 평가해 봐야 한다. 도서관의 역할도 중요하다. 청주시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여기서는 도서관이나 단체가 도서를 구매할 때 동네 서점을 거쳐 구매토록 한다. 또 청주시 도서관 정회원으로 가입한 시민이 지역 서점에서 책을 구매해 읽고 반납하면 책값을 환불해 주는 제도도 운영 중이다. 반납된 도서는 도서관 장서로 등록돼 도서관 이용 시민에게 제공된다고 한다. 의지만 있으면 방법은 많다. 한강은 이제 누구도 부인 못하는 한국 최고의 상징자본이 됐다. 영향력도 갖췄다. 작은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는 한강이 ‘책 읽는 대한민국’을 위해 목소리를 내준다면 더더욱 큰 힘이 될 수도 있겠다.

맹경환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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