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인재난과 함께 추락하는 산업 경쟁력
고급 인력 유출 갈수록 심각해 AI 석·박사 40% 해외로 떠나
인센티브 기제 개혁 실패하면 경쟁력 강화 공허한 구호일 뿐
부동산 시장 붕괴에 따른 내수 부진으로 중국 경제는 위기를 맞고 있지만 중국의 산업 경쟁력은 미국의 전방위적 압박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으며 산업 구조도 고도화되고 있다. 전기차, 리튬 배터리, 무인 항공기, 태양광 패널, 차세대 나노 신소재, 고속철 등의 분야는 세계 1위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며, 14억 인구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AI) 분야도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를 제외하면 한국이 중국에 비해 우위에 있는 분야를 찾기 쉽지 않다. 중국 시장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 대부분이 중국 제품에 의해 잠식당할 위기에 있으며, 첨단 부품의 대중국 수출도 중국 내 자체 조달이 가능해지면서 수요가 줄고 있다. 또한 중국에 비해 우위에 있는 반도체 분야도 대만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한국 수출의 18%, 시가총액의 17%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위기를 계기로 한국의 산업 경쟁력에 대한 우려와 함께 논쟁이 뜨겁다. 하지만 정치권은 정쟁을 일삼으며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시장의 불확실성만 키우고 있다. 시장의 불확실성으로 첨단 분야에 대한 투자가 위축되면서 핵심 두뇌가 해외로 유출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미국이 석·박사급 이상 고급 인력에게 발급하는 취업 이민 비자를 인도, 중국, 브라질에 이어 가장 많이 발급받은 국가이며, 인구 대비 발급된 비자 수는 인도와 중국의 10배에 이른다.
AI와 같은 첨단 분야의 인재 유출은 더 심각한 수준이다. AI 인재의 이동을 추적·조사하는 미국 시카고대 폴슨연구소에 따르면 2022년을 기준으로 한국에서 석·박사를 취득한 AI 인재의 40%가 해외로 떠나고 있으며, 대부분은 국내 기업과 비교해 3배에 달하는 연봉과 보다 합리적인 성과 보상을 제공하는 미국의 빅테크행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자녀 교육 문제와 한국 기업, 더 나아가 한국의 불투명한 미래도 그들의 선택에 한몫했을 것이다.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가 공허한 구호가 아닌 명확한 비전을 구체적인 실행 계획과 함께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제도 개선을 통해 시장의 불확실성을 낮추고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또한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해 기업이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 체계와 나눠먹기식 보상 체계를 개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인재 유출에 앞서 더 심각한 문제는 대학이 첨단 분야 인재를 양성할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값 등록금 규제에 묶여 15년째 동결된 등록금 수준으로는 첨단 분야의 연구와 교육을 위한 기반 시설 확보가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 분야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호봉 중심의 교원 임금 체계, 기업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임금 수준으로는 첨단 분야의 교원 확보와 유지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첨단 분야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학과가 우후죽순 신설되고 있지만 학과 이름만 바뀌었을 뿐 실제 교육 내용은 기존 학과와 유사한 경우도 적지 않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평균 대학 등록금은 연 680만원, 그리고 고등학생의 평균 사교육비 지출은 전년보다 6.1% 증가한 연 890만원 수준이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지출하는 사교육비 인상은 받아들이면서도 대학 등록금 인상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벌 중심 사회의 모순과 반값 등록금에 대한 허상도 다시 한번 짚어봐야 한다. 또한 학령 인구의 지속적인 감소에도 불구하고 법정 비율에 따라 획일적으로 투입돼 남아도는 초·중·고등학교 교육 예산을 줄이고 보다 적극적으로 대학 교육 예산을 늘려 첨단 분야 인재 육성을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이공계로 유입되는 인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의대 편중 현상을 해소하지 못하면 첨단 분야의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노력도, 길러낸 인재를 지켜내기 위한 노력도 산업 경쟁력 저하를 막는 데 역부족일 것이다. 노동·교육·의료 개혁을 통해 사회의 인센티브 기제를 구조적으로 개선하지 않는 한 산업 경쟁력 강화는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구체적인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고 사회적 합의 과정도 무시한 채 진행되면서 동력을 상실한 현 정부의 4대 개혁이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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