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위기의 대통령이 보여줘야 할 것들

2024. 11. 7.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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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임기 반환점을 코앞에 둔 대통령이 여론에 떠밀려 담화를 발표하고 끝장토론을 하는 날이다. 나중에 돌이켜 보면 윤석열 정부 10대 장면에는 너끈히 포함될 것이다. 초미의 관심은 물론 대통령 배우자의 여러 부적절한 행동들을 어떻게 설명하고 앞으로 재발 방지를 약속할 것이냐에 있다. 생각하면 자괴감이 든다. 한반도의 명운을 바꿀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엄중한 시기에 몇 달째 국내 정치현안은 한없이 사소한 일들로 채워져 있다. 대통령의 배우자가 명품백 받은 것을 처벌할 수 있는지 없는지, 제1야당 대표의 여러 혐의와 그 배우자의 밥값 사건 판결은 어찌 나올지, 전직 대통령 배우자의 명품 재킷은 반납했는지 안 했는지, 그 자녀의 음주운전과 불법 숙박업 혐의는 또 어찌할지, 뭐 이런 것들이다.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의제라고 하기에는 한없이 사소하다. 모아놓고 보니 하나같이 밥 먹고 술 먹고 잠자고 차려입는 1차원적 사건들이라 민망할 따름이다. 사소한 것이 왜 커지는지 대통령실은 숙고해야 한다.

「 정권교체 위해 선택됐던 윤 대통령
정권 재창출 장애로 인식되면 끝장
보수로부터 손절의 대상 되면 위험
오늘 담화 및 끝장토론 비상한 관심

정권 출범 초기에도 지면을 통해 말한 적이 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기대 없이 당선된’ 첫 대통령이다. 그에게 투표한 유권자들은 그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에게 표를 주어야 정권을 교체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투표했다. 유권자들이 그렇게 생각했다는 근거는 차고 넘친다. 예를 들어보자. 대선 직후 이루어진 사후조사에서 윤석열 투표자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정권교체를 원했다거나 문재인 정부를 심판하고 싶었다는 ‘부정적 이유’를 댄 사람이 61%였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투표자 중 부정적 이유를 댄 사람은 6%에 불과했으니 무려 10배가 넘는다. 유권자들의 표심이 후보에 대한 기대나 지지에 있지 않았고, 그를 정권교체라는 정치적 목적의 도구로서 원했다는 분명한 근거다. 보수층이 급격히 등을 돌리는 것은 이러다가는 윤 대통령으로 인해 정권을 또 뺏길 것 같다는 불안감의 표출이다. 이쯤에서 손절하고 차기 대선을 준비할 다른 보수 지도자를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도구적 판단을 하는 것이다.

반면 그의 대척점에 있는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강성 열혈 지지층으로 포화상태이다. 수십 년 검사 경력의 대통령 눈에는 여러 중대한 혐의의 피의자인 야당 대표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영수회담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이 가지지 못한 정치적 자산인 견고한 지지층을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통령 배우자의 잘못에는 지지층이 떠나지만, 이 대표 배우자의 잘못에는 검찰의 조작수사라며 지지층이 결집하는 이유이다. 법리도 따져야겠지만 동시에 정치의 힘을 인식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 2년 반은 사법과 정치의 대격돌 시기이기도 했다.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이재명 대표를 다른 무엇보다도 사법처리 대상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그 이유가 내부 균열이든 법원의 태업이든 무엇이든 아직까지 어떠한 결과도 얻지 못했고 이달 들어서야 첫 선고를 앞두고 있다. 변호사 출신 이재명 대표는 일반적인 사법 절차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발 빠르고도 끈질기게 강성 지지층을 모으고 온갖 비판을 무릅쓰고라도 호위무사들을 국회에 입성시키고 압도적 다수를 만든 끝에 이제 은근히 사법부를 압박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 정상적인 정치는 아니지만, 아무튼 이것도 정치다. 윤 대통령은 지난 2년 반 사법과 정치의 대결에서 결국 밀렸다는 점을 인정하고 새로운 출구를 찾아야 한다.

오늘 윤석열 대통령이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은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손절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믿음을 되돌려주는 것이다. 유례없는 대통령의 끝장토론인 만큼 여러 목적을 달성해야겠지만 단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이것이다. 윤 대통령으로는 정권 재창출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 보수층이 지금처럼 늘어나면 정말로 비상한 사태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보수정부를 유능하게 운영하고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반드시 주어야 한다. 쉽지 않은 과제일 텐데, 만약 이것에 성공한다면 그다음으로는 정치 복원과 인재 충원을 약속하고 이행해야 한다. 가뜩이나 여소야대의 분점 정부로 시작한 윤석열 정부는 야당의 협조 없이 성공할 수 없는 운명이었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협상과 타협의 정치과정을 동반한다. 그런데 야당은 고사하고 여당 대표조차 만나지 않으려 하는 속 좁은 자세로 일관한 결과 여소야대 격차는 더 벌어졌다. 정치를 복원하지 않고 파국을 피할 방법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과제들을 꺼내놓고 수습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국민은 너무 많이 봐버렸고, 그 원인은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이해 부족, 좁은 인재풀, 호가호위하는 비선에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정말로 실력 있고 경험 많은 사람들을 널리 찾아 쓰겠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오늘 대통령이 셋 중 하나만이라도 성공하길 바랄 뿐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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