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옥의 세계경제전망] ‘디플레 수출’ 막으려면 소비 살리기 위한 재정 투입 필수
중국의 대규모 재정 부양 필요한 이유
지난해 회복세를 보였던 중국 경제 성장은 올해 2분기(4.7%)와 3분기(4.6%)엔 시장 기대에 못 미쳤다. 1~3분기 성장률이 4.8%에 그쳐 올해 ‘5% 안팎’이라는 정부의 성장률 목표치 달성도 어려워졌다.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압력도 커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최근 몇 달 사이 금리 인하와 부동산 대출 완화, 증시 안정화 자금 투입 및 내년 예산 조기 지출 등 각종 부양책을 동원했지만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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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 시장 둔화와 소비 부진에
‘5% 안팎’의 성장률 달성 적신호
장기화하는 디플레이션 위험 속
저성장·저물가 ‘일본화’ 우려도
경기 진작·구조 개혁 달성하려면
강한 경기 부양 패키지 제시해야
」
이제 기댈 곳은 재정 투입을 통한 경기 살리기다. 시장은 아직 낙관 회로를 돌리고 있다. 예상하는 재정 부양 규모는 제각각이다. 1조~2조 위안부터 최대 10조 위안에 이른다. 10조 위안은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8%를 넘는 규모다. 로이터 통신은 “10조 위안의 추가 차입을 발표해 앞으로 5년간 경기 부양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다양한 기대치가 있지만 많은 이들이 10조 위안 규모의 부양책을 기대한다”며 “기대보다 적으면 시장은 실망할 것”이라고 했다.
대규모 부양을 바라는 중국 내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소 4조 위안에서 최대 12조 위안의 부양책이 필요하다는 중국 관변 학자들의 주장을 보도했다. SCMP에 따르면 중국 사회과학원 산하 세계경제정치연구소의 장빈 부소장은 “내년 성장률 목표치를 5%로 잡으면 정부 재정 적자율이 7% 수준이 돼야 하고, 그렇게 되면 12조 위안 규모의 정부 부채 발생은 필연적”이라고 했다.
‘대차대조표 불황’ 빠진 중국
메가톤급 부양책에 전 세계가 목을 매는 건 중국의 상황이 그만큼 여의치 않고, 그 영향이 일파만파라는 이야기다. 고성장을 구가하던 중국은 세계 경제의 강력한 엔진이었다. 중국의 수요는 석유와 원자재부터 소비재·명품 시장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때로는 가격 급등의 주범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중국의 경기 둔화는 기업의 실적 부진과 세계 경기 둔화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 요인이 됐다.
중국 경기 부진의 충격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31일 중국 경기 침체로 화장품과 명품 등 서구 소비재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화장품 기업인 에스티로더는 올해 이익 전망을 철회하고 배당을 삭감했다. 중국 매출 회복 여부가 불투명한 탓이다. 세계 최대 맥주회사인 앤하이저부시 인베브의 3분기 중국 매출은 14.2% 감소했고, 같은 기간 칼스버그 매출은 6% 하락했다.
명품업계의 ‘차이나 쇼크’는 더 크다. 전 세계 명품 업계에서 중국 시장의 비중은 30% 수준이다. 루이뷔통·디올 등을 보유한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의 3분기 아시아 시장(일본 제외) 매출은 16% 줄었다. 2분기(-14%)에 이어 두 자릿수 감소가 이어졌다. 구찌 등을 보유한 케링 그룹의 올해 3분기 중국 매출은 1년 전보다 35% 급감했다.
중국 내수 침체는 장기화하고 있다. 소비 부진과 부동산 시장 둔화의 영향이다. 특히 중국 GDP의 20%가량을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중국 경기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를 뒤흔들 변수다. 2021년 부동산 업체 헝다(恒大)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 이후 중국 정부의 강력한 규제에 중국 부동산 시장은 얼어붙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 9월까지 중국 부동산 시장 가격 및 거래량은 각각 18개월, 17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그 결과 ‘부동산 거래 침체→공실 증가→부동산 기업 부실→경제 심리 악화→소비 부진→경기 둔화→시장 위축’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의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60% 수준이다.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가계는 긴축 모드에 돌입했다. 빚(부채)을 갚고 예금을 하며 소비를 줄이는 이른바 ‘대차대조표 불황’에 빠졌다. 돈이 없는 건 아니지만, 소비 여력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가계의 ‘버티기 태세’에 금리를 내리고 대출을 완화하는 통화정책의 약발도 통하지 않는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내년 소비 증가율 전망치도 지난 1월의 5.6%에서 지난달 4.5%로 하향 조정됐다. 오히려 씀씀이가 더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중국의 낮은 소비, 세계 경제에 문제”
부동산 시장 둔화로 인한 소비 부진은 디플레이션을 부르고 있다.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 물가는 20개월 연속 1.0% 미만을 유지하고 있다. 소비자물가와 생산자물가 상승세도 둔화하며 24개월 연속 디플레이션 위험이 이어지고 있다. 슬며시 고개를 드는 건 중국 경제의 ‘일본화(Japanication)’ 우려다. 일본화는 한 국가의 경제가 충격 요법 없이는 저성장·저물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거나 그런 국면으로 빠져드는 과정을 의미한다.
문제는 부동산 시장 침체가 촉발한 ‘중국 경제의 일본화’ 양상이 세계 경제에 적신호가 될 가능성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일 ‘아시아태평양 지역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중국의 부동산 영역 조정 장기화가 아시아와 세계 경제에 해로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우려되는 상황은 경기 둔화로 인한 디플레이션 압력에 직면한 중국이 상품 수출로 문제를 풀려고 나서는 것이다. 이른바 중국의 ‘디플레 수출’로, 싼값의 중국 제품의 공세에 중국과 유사한 수출 구조를 가진 국가의 산업 경쟁력이 타격을 입을 수 있고, 무역 갈등이 격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의 ‘디플레 수출’은 중국의 성장 모델과 경제 구조에서 기인한다. WSJ은 지난 8월 중국의 가계 소비를 분석한 미국의 시장조사 및 컨설팅 업체인 로디움그룹의 보고서를 인용해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낮은 소비 비중이 중국 경제 성장에 역풍이 되고 전 세계에도 문제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소비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3%에 불과하지만,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8%나 된다. 이 불균형 속에 중국이 수출에 적극 나서며 중국의 연간 상품무역 흑자 규모는 전 세계 GDP의 0.8% 수준인 9000억 달러로 늘어났다.
중국의 과잉 투자와 그에 따른 과잉 생산을 수출로 해소하는 과정에서 저가 공세에 시달리는 국가는 투자 불능에 빠질 수 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온라인 상거래 플랫폼인 알리와 테무를 앞세운 중국의 저가 제품의 ‘약탈적 영업’에 국내 업체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WSJ은 “중국이 세계 수요에 의존해 디플레 수출로 경제를 되살리려고 하면 세계 경제에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가계소비 성장, 중국 성장률 결정 요인”
그렇다면 경기 되살리기에 나설 중국이 ‘디플레 수출’이 아닌 평화로운 수단을 강구할 수 있을까. IMF는 “중국이 제조업과 수출을 부양하는 방식을 쓰면 무역 갈등이 심해질 수 있다”며 “부동산 부문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민간 소비를 진작하는 것이 아시아와 세계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로디움그룹은 “중국의 경제 성장을 견인했던 투자주도 성장 모델이 정점에 도달한 만큼 가계 소비의 성장이 중국의 장기 경제 성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했다.
로디움그룹은 상당한 재정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중국의 장기 가계 소비 성장률은 향후 5~10년간 연간 3~4%로 둔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이렇게 되면 가계 소비의 연간 경제 성장률 기여분은 1.5%포인트에 불과하고, 전반적인 장기 경제 성장률을 약 3% 수준으로 제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중국 정부가 나라 곳간을 얼마나, 어디에, 어떻게 풀 것이냐에 집중된다. 시장은 바주카포를 기대하고 있지만, 중국 정부가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부양책의 강도와 방향이 달라질 수도 있다.
부양책 효과 체감하기 어려울 수도
중국 정부의 ‘헬리콥터 머니’가 만병통치약일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기종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1실장은 “중국 민간 부분의 역동성이 소멸하고 빠른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만큼 부양책의 한계는 존재할 것”이라며 “통화 완화와 재정 확대를 병행한 부양책이 나와야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경제 상황의 변곡점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나랏돈을 쏟아부어도 온기가 윗목까지 전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최설화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재정 확장의 방향은 지방정부 부채 해소에 방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며 “앞으로 수년간 최소 5조~6조 위안의 자금이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경기 부양의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인프라 투자가 아닌 부채 해소에 재정을 투입하면 투자와 소비의 의미있는 신규 수요 창출로 이어지지 않는다.
삼성증권은 “중국 정부는 경기 진작과 구조 개혁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경기 부양 패키지의 성패는 ‘재정 부양 강도’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도널드 트럼프의 재집권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중국 정책 당국이 방화벽 구축을 위해 더 강한 경기 부양 패키지를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현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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