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룡의 신 영웅전] ‘조선 건국의 장자방’ 정도전의 고언
정도전(鄭道傳·1342~1398)을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일은 쉽지 않다. 곱게 보는 사람과 밉게 보는 사람의 시각에서 중도를 지키도록 애쓰면서 바라본다면, 정도전을 읽는 키워드는 세 가지다. 수재라는 점, 지략을 겸비했다는 점, 그리고 신분 상승을 꿈꾸면서 펼쳤던 야망이다. 이성계는 정도전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중용했고, 정도전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조선 건국의 기틀을 짰다.
정도전은 새 왕조 건설에 기여하고 싶은 꿈이 컸다. 그러나 재사들이 흔히 겪는 실수를 그도 비껴가지 못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한 고조 유방(劉邦)이 장자방(張子房)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한 고조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 행간에는 ‘이성계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이성계를 선택한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술자리의 실언이라기보다는 취중진담(醉中眞談)이었을 것이다. 그는 ‘조선 건국의 장자방’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은 이미 그때 정도전을 제거하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1394)에 정도전이 그린 개국의 꿈을 보면, 그가 공화국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국부 반열에 들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불행히도 서출의 후손이라는 좌절감과 면전에서 정몽주로부터 겪은 모욕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 그 한을 극복하지 못한 트라우마 때문에 비극적 생애를 마쳤다. 그 한을 더 고결하게 승화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정도전의 꿈과 의도를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지만, 그가 이 시대 정치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을 것 같은 점을 내 나름대로 뽑아본다. 위엄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함부로 복수심에서 정적을 탄핵하지 말 것이며(『경제문감』 대관(臺官)), 헤픈 사면이 뒷날의 재앙을 부른다는 점(『고려사』 정도전 열전)이다. 90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세상은 그리 바뀌지 않았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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