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드림은 살아날 것인가
지갑 닫는 中 소비자, 얼어붙은 경기
세계 경제 성장 엔진 역할을 맡았던 중국이 흔들린다. 경제성장률, 산업생산, 소매판매, 고정자산투자 등 다수 경제지표가 예상치를 밑돈다. 코로나19 유행, 미중 무역 분쟁 후유증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특히 그동안 중국 경제를 이끌어온 내수 시장과 부동산 건설업이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부진이 이어지자 중국 정부는 역대급 부양책을 내놓으며 경제 활성화에 나섰다. 통화 정책 완화, 부동산 시장 정상화, 주가 진작 등 내용이 담긴 종합 부양책을 발표했다. 막대한 돈이 투입되는 부양책 발표에 주가는 상승했고 위안화 환율도 소폭 올랐다. 다만, 이번 부양책이 중국 경제를 완연한 회복으로 이끄는 것은 힘들다는 시선이 강하다. 올해 5% 성장 목표 달성 여부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게 중론이다.
중국 현지에서는 기업과 부동산 시장, 인프라 건설에 자본을 투입해 성장률을 올리던 중국의 경제 성공 방정식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진단이 나온다. 기업에 막대한 금액을 지원해도 고용률은 오르지 않고, 부동산 시장은 돈만 먹는 하마로 전락했다. 짧은 정년, 연이은 구조조정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심해진 중국인 대다수는 지갑을 닫고 ‘저축’만 한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과거 방식을 벗어나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다. 사회 보장 제도를 강화해 불안감을 없애고, 소비자에게 직접 금액을 지원해 지갑을 열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발걸음을 옮겨 또 다른 쇼핑몰인 ‘정대광장’으로 가도 똑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일부 외국인 관광객만 보일 뿐, 중국 소비자는 아예 보이지 않는다.
중국 최대 금융 단지인 루자주이 일대는 중국 경제 발전의 상징과 같은 지역이다. 금융계, 부동산 업계 종사자들이 부를 과시하며 쇼핑을 즐겼다. 중국 경제가 한창 잘나갈 때인 2010년대 후반에는 상하이 IFC몰 명품 매장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정대광장은 늘 물건을 사려는 손님으로 붐벼 ‘번영의 상징’으로 불렸다. 그러나 코로나19 유행과 미중 무역 분쟁 여파로 중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부동산 건설 업계에서 시작된 부실이 금융 업계를 덮쳤다. 금융업과 부동산 기업이 몰린 상하이 경기는 빠르게 무너졌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금융 업체 관계자는 “상하이 경기 부진이 심각하다. 상하이 경제 주축인 금융 업계와 부동산 업계는 자고 일어나면 구조조정 소식만 들린다. 최악의 시기는 지났다지만, 여전히 전성기에 비하면 경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미국과 함께 세계 경제를 이끌어온 중국이 흔들린다. 성장률을 비롯한 주요 경제지표가 모두 예상을 밑돌며 침체에 빠졌다. 부동산 부실 직격탄을 맞은 지방 정부와 기업은 파산 위기에 내몰렸다. 그나마 회복세를 보이던 상하이, 베이징 등 ‘1선 도시’마저 침체된 분위기다. 경기가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중국 정부는 10조위안 규모 경기 부양책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상하이마저 30% 빠진 부동산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2024년 3분기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 대비 4.6% 성장하는 데 그쳤다. 2분기 성장률도 4.7%였다. 분기별 성장률이 2개 분기 연속 목표치인 5%를 밑돈 것. 중국 정부가 공언한 연간 성장률 5% 달성에도 당연히 빨간불이 켜졌다.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것은 내수 부진과 부동산 침체다. 중국 경제는 흔히 ‘삼두마차’라 불리는 세 가지 요인이 성장을 견인한다. 최종소비, 투자 그리고 순수출이다. 특히 이 중에서도 내수와 관련이 깊은 최종소비의 비중이 가장 크다. 중국 GDP 중 56%를 소비가 차지한다. 즉, 소비가 부진하면 아무리 수출이나 투자가 활발해도 경제성장률이 올라가기 힘든 구조다.
코로나 충격으로 얼어붙은 중국의 소비 심리는 ‘리오프닝’ 이후에도 풀리지 않고 있다. 올해 1~3분기 중국 소매판매 증가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3% 증가하는 데 그쳤다. 2분기 3%대로 내려앉은 데 이어 계속 하락세다. 외식 소비 증가율은 정상화되고 있으나, 중국 전체 소매판매 중 25%를 차지하는 온라인 소비 성장률은 8.6%로 둔화했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품목인 자동차 부문은 연초부터 각급 정부가 구매세 감면과 보조금 지원 등 소비 진작책을 대대적으로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1~9월 전년 동기 대비 2.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경기 침체는 여전히 중국 경기 회복을 저해하는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중국 70개 주요 도시 주택 가격은 2022년 4월부터 2024년 9월까지 2년 이상 역성장 중이다. 중국 상업용 주택 판매 면적은 2023년 10년 만에 10억㎡ 아래로 떨어진 데 이어 2024년 9월 누적 6만㎡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9.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지 무역 업체 관계자는 “상황이 가장 나은 상하이마저 집값이 30% 가까이 빠졌다. 현지 중국 직원이 집을 급매했는데 5년 전 가격으로 팔았다고 한다. 과거 만연했던 ‘부동산 불패’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귀띔했다.
침체가 길어지자, 중국 정부는 본격적인 경기 부양책 도입을 예고하고 있다. 9월 24일 판궁성 인민은행 총재가 기자회견에서 정책금리 인하와 기준금리 인하를 언급하며 포문을 열었다. 10월 17일 니훙 중국 주택도시농촌건설부장은 ‘화이트리스트’에 오른 우량 부동산 업체를 대상으로 연말까지 자금 지원 규모를 4조위안(약 772조원)으로 확대, 1조7700억위안(약 342조원)을 부동산 업체에 추가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10월 21일 중국인민은행은 사실상 기준금리인 대출우대금리(LPR)도 1년물 3.1%, 5년물 3.6%로 각 0.25%포인트씩 인하했다.
소비 되살릴 수 있나 의문
경기 부양책 목표는 내수 활성화다. 랴오민 중국 재정부 부부장이 10월 26일 IMF 연차총회에서 “경기 부양책 목적은 내수를 진작시켜 연간 경제 성장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11월 초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회의가 끝나면 세부적인 재정 정책이 나올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경기 부양책 규모가 최소 2조위안(약 386조7600억원)에서 최대 10조위안(약1993조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재정 투입만으로 중국 내수가 살아나기는 힘들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현재 소비 부진이 단순한 경기 침체 탓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실제 현재 중국 소비자가 여력이 없어 지갑을 닫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국은 국영기업을 제외한 민영 기업은 정년이 짧고 해고가 쉽다. 고용 안정성이 낮은데 재고용, 실업급여 등 안전망도 부실하다. 직장에서 잘리면 속절없이 수입이 끊기는 것. 부실한 사회안전망과 고용 불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돈을 쓰기보다는 저축하려는 이가 많다. 2024년 8월 말 기준 중국 가계저축 총금액은 147조위안(약 2경8200조원)에 달했다. 역대 최대치다. 연초 대비 9조6500억위안(약 1856조6000억원)이 늘어났다. 중국인 1인당 평균 저축액으로 보면 10만5000위안(약 2020만원) 정도다. 소비로 쓰여야 할 돈이 풀리지 않으니, 내수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는 모양새다.
최홍매 KB자산운용 상해법인장은 “과거 고속 성장 시기에는 미래 소득에 대한 기대로 미리 소비를 하는 경향이 강했다. 현재는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생각하는 중국인이 많다.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자제하고 있다. 월가 투자자를 중심으로 재정 투입보다 사회안전망 강화 등 정책 변화가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상하이 =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3호 (2024.11.06~2024.11.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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