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업계 1위 뺏긴 한샘에 무슨 일이…
국내 가구업계 독보적인 1위 업체였던 한샘에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사모펀드 IMM프라이빗에쿼티(PE)를 새 주인으로 맞은 이후 경쟁사인 현대리바트에 1위 자리를 뺏기는가 하면 고배당 정책을 두고서도 재계 안팎이 시끌시끌하다.
대주주 IMM PE 배 불리기?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실적 추산치가 있는 249개 상장사를 10월 17일 종가와 올해 예상 배당액을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배당수익률이 가장 높은 곳은 한샘이었다. 증권사들이 추산한 한샘의 올해 1주당 배당금 평균액은 4856원이다. 이에 따른 배당수익률은 9.48%에 달한다. 한샘은 지난해 보통주 1주당 4500원을 배당해 2022년(800원)보다 5배 이상 배당금이 늘었는데 올해도 고배당 정책을 이어간다는 의미다.
배당수익률이 높으면 주주 입장에서는 반길 일이지만 문제는 한샘 경영 여건이 녹록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샘은 최근 극심한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중이다. 2022년 당기순손실은 713억원, 지난해는 622억원에 달했다. 올해 상반기 흑자전환하기는 했지만 매출은 오히려 줄었다. 수익성 확보에 치중하다 보니 매출 증가세가 꺾여 결국 가구업계 선두 자리를 현대리바트에 내주는 처지로 전락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리바트의 올 1분기 연결 기준 매출은 5048억원으로 한샘(4859억원)을 앞질렀다. 한샘은 그동안 가구업계 1위 자리를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는데 이변이 나타난 것. 지난해 1분기까지만 해도 한샘 매출(4693억원)이 현대리바트(3702억원)를 1000억원가량 앞섰는데 1년 만에 순위가 역전됐다. 현대리바트가 분기 매출 기준 가구업계 1위를 기록한 것은 1977년 창립 이후 처음이다. 한샘은 올 1분기 영업이익이 130억원으로 지난해 2분기 이후 4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해 수익성 회복에는 성공했지만, 현대리바트에 매출 1위 자리를 뺏기면서 자존심을 구기게 됐다.
2분기에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졌다. 상반기 매출 기준 현대리바트는 1조18억원, 한샘은 9639억원으로 1, 2위 순위가 바뀌지 않았다. 상반기 영업이익은 한샘이 201억원으로 현대리바트(150억원)에 앞섰다. 하지만 2분기 영업이익만 놓고 보면 현대리바트(82억원)가 한샘(71억원)보다 많아 매출뿐 아니라 수익성 측면에서도 현대리바트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송유림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한샘의 2분기 영업이익은 시장 기대치 대비 51%가량 못 미쳤다. B2C뿐 아니라 B2B 특판 감소 영향으로 매출도 감소세”라고 진단했다.
이 여파로 한샘 주가도 부진한 흐름이다. IMM PE가 2021년 한샘을 인수할 당시 써냈던 가격은 주당 22만1000원이다. 하지만 이후 한샘 주가가 급락하면서 최근 5만원대 초반으로 떨어졌다(10월 30일 종가 5만1800원).
향후 전망도 불안하다. KB증권은 한샘이 전통적인 비수기를 맞은 데다 B2B 매출도 부진해 3분기 매출, 영업이익이 각각 4745억원, 80억원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장문준 KB증권 애널리스트는 “한샘 수익성 개선이 기대보다 낮아 3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를 낮춰 잡는다”며 한샘 목표주가를 기존 7만7000원에서 7만2500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이뿐 아니다. 한샘은 최근 서울 상암동 본사 사옥을 그래비티자산운용에 팔고, 장기 임대 조건으로 이 건물을 본사로 사용하기로 했다. 매년 거액의 임대료를 내야 하는 만큼 자금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고배당 정책을 펼치는 것은 왜일까. 대주주 입장에서 투자금 회수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한샘 최대주주는 하임유한회사로 지분 18.95%가량을 보유했다. 2대 주주 역시 지분 15.19%를 보유한 하임2호유한회사로 두 주주 지분 합계는 34.14%에 달한다. 하임유한회사는 IMM PE로부터 조성된 블라인드 펀드 ‘아이엠엠로즈골드4사모투자합자회사’가 지분 100%를 보유한 특수목적법인(SPC)이다. 정리해보면 한샘 배당금 34%가량은 IMM PE에 흘러가는 구조다. 기업 상황이 좋지 않은데도 ‘대주주 투자금 회수’를 위해 이례적인 고배당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가구업계 1위 경쟁력 회복할지 관심
한샘이 최근 몇 년간 직면한 최악의 위기를 딛고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한샘의 내부 인력 이탈부터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IMM PE를 새 주인으로 맞은 후 주요 임직원이 대거 경쟁사로 이직하면서 한샘 제품력과 영업력이 약화됐다는 것이 가구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은 2022년 1월 당시 지분 27.7%를 사모펀드 IMM PE에 1조4500억원을 받고 넘겼다. 이후 한샘 내부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지오영그룹 총괄사장을 역임한 김진태 대표가 2022년 1월 한샘 수장을 맡은 이후 가구업계 1위를 넘어 ‘글로벌 리빙테크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야심 찬 비전을 내놨다. 2026년까지 홈리모델링 부문 매출을 2조원으로 키워 전체 매출 4조원을 돌파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존 제조·유통 위주 사업 방식에서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형태로 기업 체질을 전환하겠다는, 그럴듯한 계획이었지만 정작 실적은 그 반대의 길을 걸었다. 2002년 코스피 상장 이후 처음으로 2022년 217억원의 연간 적자를 기록하는가 하면 매출도 2조9억원에 그치는 등 뚜렷한 감소세를 보였다.
상황이 심상찮자 IMM PE는 칼을 빼들었다. 지난해 7월 한샘 CEO를 40대 초반 김유진 대표로 전격 교체했다. 김진태 대표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불과 1년 6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유진 대표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을 거쳐 2009년 IMM PE에 합류해 IMM PE가 인수한 할리스에프앤비, 에이블씨엔씨 등 주요 기업 수익성을 끌어올린 인물이다. 김유진 한샘 대표는 CEO에 취임하면서 “매출 성장을 배제한 단기 비용 절감과 수익성 개선 없는 맹목적 매출 성장을 지양하고, 장기적으로 매출 성장과 수익성 개선이 가능한 사업 구조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럴싸한 포부였지만 이후 양태는 포부와 다르게 흘러갔다. 비용 절감을 통한 수익성 확보에만 안간힘을 썼다는 평가다. 당장 판매관리비부터 대폭 줄였다. 지난해 한샘의 판매관리비는 4304억원으로 2022년 대비 6.6%가량 감소했다. 여기에 광고, 직원 복리후생비용 등 대대적인 비용 절감에 돌입했다. 올해 인사에서 고위급 임원을 단 한 명도 승진시키지 않는 등 인건비 절감에도 나섰다. 덕분에 올 1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정작 매출이 줄면서 본연의 경쟁력을 잃어간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국내 선두 가구업체 구성원으로서 자부심이 컸던 직원들도 상실감에 대거 이직 러시에 동참했다는 후문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2471명이던 한샘 직원 수는 올 상반기 2109명으로 급감했다. 제품 개발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관리, 연구직뿐 아니라 현장 영업직 인력까지 분야를 가릴 것 없이 줄었다. 지난해 한샘의 1인당 평균 급여는 5200만원으로 경쟁사인 현대리바트 연봉(6300만원)에 못 미친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사모펀드로 주인이 바뀌면서 한샘 브랜드 이미지가 많이 떨어졌다. 서울, 수도권 핵심 지역 재건축, 재개발 아파트 빌트인 가구업체를 정할 때 현대리바트 등 경쟁사에 밀려 한샘이 과거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으로 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3호 (2024.11.06~2024.11.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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