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에 지친 당신, 100분만 빌려주시겠어요?
[장혜령 기자]
▲ 영화 <청설> 스틸컷 |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철학과를 졸업하고 꿈도 목표도 없던 용준(홍경)은 남들처럼 취업 준비를 해야 할지, 부모님의 도시락 가게를 도와주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엄마 등쌀에 밀려 억지로 수영장 배달을 가던 날, 햇살 같은 여름(노윤서)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때부터 용준의 흐지부지했던 인생 목표가 새롭게 수정된다. 여름을 향한 사랑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것. 여름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 힘들고 지칠 때 곁에 있으며 친구 이상의 수호천사가 되어준다. 고백할 때를 틈틈이 노리지만 쉽지는 않다. 듣지 못하는 여름과 가을 자매에게 행여나 큰 부담과 결례를 범하지 않을까 노심초사, 전전긍긍하다 때를 놓친다.
한편, 여름은 동생 가을(김민주)의 뒷바라지 말고는 눈에 들어오는 게 없다. 가을이 수영선수로 성공하는 것만이 유일한 소망이다. 최근 친해진 용준을 만나 오래된 스쿠터도 고치고, 도시락도 얻어먹고, 난생처음 클럽도 가면서 보살핌을 받지만 마음 한구석이 편하지 않다. 언제나 주는 데만 익숙해진 탓에 괜한 미안함과 부담이 커진다.
여름은 타인의 친절을 처음으로 맛본다.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 이런 걸까'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충만한 행복이었다. 다만 '지금 누군가를 좋아할 때가 아닌데'라며 자꾸만 앞서가는 마음을 억누르기 바쁘던 날. 중요한 선발전을 앞둔 가을에게 사고가 생긴다. 하필이면 여름이 자리를 비웠을 때 생긴 사고라 여름은 자기 탓인 것 같아 죄책감을 느낀다. 이대로 지내도 괜찮은 걸까 고심하던 여름은 용준에게 무거운 마음을 전하기로 결심한다.
▲ 영화 <청설> 스틸컷 |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대만 원작의 감성을 살리면서 한국만의 현실성을 더해 각색했다. 그 와중에도 '순수함'은 흐트러짐 없이 간직했다. 언어와 문화, 배우가 다르기 때문에 한국 자매 관계의 특수성을 새롭게 설정했다. 동생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희생정신 강한 언니 여름을 노윤서의 맑고 성실한 얼굴로 전한다.
▲ 영화 <청설> 스틸컷 |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영화는 첫사랑 영화의 본국 대만의 동명 영화를 14년 만에 리메이크했다. 로맨스 판타지, 로맨스 회기물, 로맨스 사극 등 장르의 배합 없는 단일 장르를 지향한다. <유열의 음악앨범>, <동감>, < 20세기 소녀 > 이후 청춘 로맨스 영화의 계보를 잇는다. <말할 수 없는 비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리메이크 영화가 개봉을 앞둔 상황에서 <청설>은 대만 리메이크 버전의 첫 타자다. 2000년대 초반 극장가를 물들인 <엽기적인 그녀>, <클래식>, <내 머릿속의 지우개> 등 청춘 로맨물이 자취를 감춘 상황 속 현시대를 대표하는 20대 라이징 스타가 모여 요즘 세대의 감성을 전한다.
그래서일까. 도파민이 만연한 시대에 무해한 매력을 정공법으로 택했다. 영화만의 매력, 영화만의 감수성을 전한다. 느림의 미학, 아련한 감정과 성장통을 느끼고 싶다면 추천한다. 첫사랑 로맨스 장르의 강국인 대만과 일본의 감수성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