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상마다 가마솥을 꺼내는 MZ들이 있습니다
요즘 20대 자취생들이 먹는 아침은 기성세대의 ‘아침밥’과는 다르다. 바쁜 사회초년생들에게 아침 식사는 건강 챙기기의 일환일 수도 있고, 소소한 즐거움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해장과 재정비의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요리는 간단해야 하고, 준비 시간은 짧아야 한다. 이 연재는 현대 자취생들이 어떤 방식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그들만의 아침 시간 속에서 삶의 작은 즐거움을 어떻게 찾는지 보여준다. ‘극단 간편형’, ‘요리 매니아형’, ‘개성 취향형’이라는 세 가지 카테고리를 통해 자취생 MZ세대의 현실적인 아침 풍경을 담아내며, 그들만의 독립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엿본다. <기자말>
[정누리 기자]
▲ 가마솥 |
ⓒ 정누리 |
나도 본래 자취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요리 정성형'에 속했다. 화력이 세지도 않은 하이라이트를 그리도 괴롭혔다. 1인용 작은 가마솥에 곤드레를 넣고 밥을 짓는다. 뚝배기에는 냉이 된장찌개를, 달래는 숭덩 숭덩 썰어서 장을 만든다.
오히려 본가에서는 상상 못할 도전이었다. 주방은 엄마의 영역인 것처럼 여겼으니까. 가사 일에 질려버린 엄마 앞에서, 뚝배기나 가마솥을 쓰는 것은 쓸 데 없이 일을 벌리는 행위였다. 밥솥 쓰거나 배달 시켜 먹으면 될 것을, 왜 굳이?
지금은 레시피도 엄마에게 묻는 대신 SNS에 쳐본다. 5분만 검색하면 어떤 요리든 상세하게 나와있다.
어느 날엔가는 내 자취방에 놀러온 엄마가 놀랄 정도였다. 자기가 가르쳐주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했냐고 묻는다. 학교에서 귀가 닳도록 들었던 자기주도적 학습,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 아닌가.
음식을 생각보다 많이 만든 날, 동네 친구를 데려와서 밥을 같이 먹었다. 그 친구가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넌 살아있는 SNS 인간 같다. 이런 자취 생활은 인스타에나 있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도 있네."
▲ 도시락 |
ⓒ 정누리 |
그런데 놀랍게도 이 도시락은, 만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 그의 애인 것이다. 아침마다 본인도 출근하기 바쁠 텐데, 이 친구는 늘 연인 것까지 함께 도시락을 준비한다. 부랴부랴 출근하는 남자친구는 그녀 덕분에 차에서라도 밥을 챙겨 먹는다.
▲ 자취요리, 회사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샌드위치. |
ⓒ 정누리 |
여러 명의 음식을 담을 수 있는 그녀의 그릇은 누구보다도 넓다. 누가 MZ를 보고 'MZ는 이기적'이라고 했던가.
'식당집 딸내미'의 밥상... 어마어마한 사랑을 받았군요
예전에 부모님이 식당을 하셨다던 언니가 생각났다. 언네에게 혹시 혼자 밥을 차려 먹을 때 아침을 어떤 식으로 먹는지 보여줄 수 있냐 물으니 언니는 흔쾌하게 답한다.
"당연하지! 근데 너무 잘 차려 먹은 아침상도 괜찮아?"
▲ 9가지 자취요리 |
ⓒ 정누리 |
▲ 치아바타샌드위치 |
ⓒ 정누리 |
그녀가 본가에서 얼마나 정성 어린 밥을, 사랑을 먹고 자랐는지. 부모님처럼 식당을 해보라고 권유하면 웃으며 손사래 치던 그녀지만, 그 속에는 남다른 자양분이 녹아있다.
'자취생들은 음식을 대충 해 먹는다'라는 공식은, 선입견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낡았다. 그저 '바쁘다'는 이유만으론 아침상을 타협할 수 없는 20대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이들에게 아침은 부적과도 같다. '밥은 하늘입니다'라는 말은 되려 신선하다. 낡은 줄만 알았던 이 문장을 새롭게 쓰는 자취생들이 이곳에 있다는 걸 알았다. 난 그들을 존경한다.
다음 편으로는 '개성 취향형' 식탁을 살펴본다. '그것만 먹고 아침이 되겠냐'라는 부모님의 잔소리를 벗어나, 오로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을 먹는 이들의 식사다.
과일, 곡물, 음료 등 그 형태도 다양하다. MBTI보다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는, 'FOOD' 유형. 식탁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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