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에 달린 혹평들, 저도 반성합니다
[고광일 기자]
▲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스틸컷 |
ⓒ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스틸컷 |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은 사람이 영화를 보고 가장 크게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아마 결혼식 축가가 바뀐 부분이지 않을까. 원작 소설에서 흥수(노상현) 역할인 영이 재희(김고은)에게 불러주는 축가는 핑클의 '영원한 사랑'이다. 영화에서는 미쓰에이의 'Bad girl good girl'이다. '항상 나의 곁에 있어(영원한 사랑)' 달라고 약속하는 지고지순한 부탁은 '자신 없으면 저 뒤로', '날 불안해하지 않는 남자를 찾는다('Bad girl good girl')'는 선언으로 바뀐다. 원작은 2019년에 출간됐다. 당시에도 지고지순과는 거리가 먼 주인공이기에 모순적인 웃음을 자아냈던 축가 선곡이 5년 만에 (보다 직설적이지만)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다.
영화는 치밀한 분석보다는 각자의 감상에 빠져들게 한다. 친구를 만난 것 같은 익숙함 덕분이다. 주인공인 재희, 흥수가 익숙하다는 게 아니라 원작자와 동년배로 동일한 시대를 통과한 관객의 입장에서 그렇다. 친숙함 뒤에는 부러움이 찾아온다.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는 어떨지 모르지만) 스스로는 어정쩡하게 놀고, 이도 저도 아니게 공부해 결국 별거 없는 사회인이 된 건 아닐까 하는 후회가 고개를 든다.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찾아낼 수 있었던 최적의 타이밍을 놓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동안 외면해 온 진실이 흥수와 재희를 보며 다시 피어오른다.
▲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스틸컷 |
ⓒ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스틸컷 |
재희가 흥수에게 했던 말은 사실 본인에게 먼저 적용된다. 재희는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연애한다는 이유로 '걸레' 취급을 받는다. 그 와중에 남자 보는 눈이 없어서 자주 봉변을 당했다. 그런 20대를 지나온 재희가 남편에게 '꼭 내게만 내 꿈을 맡기고 싶어'(영원한 사랑)라는 메시지를 남기는 건 성장의 증거가 아닌 정체의 흔적 아닐까 싶다. '겉모습만 보면서 한심한 여자로 보는 시선이 웃긴다'('Bad girl good girl')는 변화가 옳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부러움과 후회보다 부끄러움이 크게 다가온다. 동일하게 00~10년대에 20대를 보냈지만, 나의 자리는 흥수와 재희는 아니었다. 고백하자면 오히려 그들을 이해할 수 없는 괴짜, 별종으로 단정하고 바깥으로 몰아내던 쪽에 가까웠다. 10여 년이라는 시차, 주인공들의 대학 생활과는 거리를 두고 있기에 <대도시의 사랑법>을 반짝이는 성장영화라 받아들일 수 있는 것뿐이다. 동시대를 사는 나였다면 영화 외적인 면을 들어 혹평을 남기지는 않았을까. 솔직히 자신할 수 없다.
국내의 영화 커뮤니티를 훑어보면 혹평의 주된 이유가 대체로 한 가지로 좁혀진다. 영화에서 왜 정상적인 남자가 등장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영화속 남자들은 단체채팅방에서 여성의 외모를 품평하고, 몰래 바람을 피우고 심지어 데이트폭력을 행사한다. 이는 곧 여성은 절대적인 피해자고, 게이만 괜찮게 그려지는 게 정치적 올바름이냐는 비아냥으로 연결된다. 당시 남성 집단 저류에 깔려있던 비참한 수준의 인권 의식이 메신저를 이용한 딥페이크 범죄 등으로 오히려 한 단계 진화한 모습으로 재현되는 걸 보면 <대도시의 사랑법>이란 성장영화의 필요성이 더 도드라진다.
▲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스틸컷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스틸컷 |
ⓒ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스틸컷 |
지난 8월 대법원이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했다. 그러나 차별금지법, 동성혼을 반대한다는 보수단체 시위에 여전히 100만 명이 운집한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와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가 2014년 약 3200명의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터에서 만난 당신의 동료들은 귀하의 LGBTI 정체성을 압니까?'라는 질문에 80% 이상이 '거의 모른다' 혹은 '아무도 모른다'고 답했다.
'LGBTI'란 레즈비언(lesbian)·게이(gay)·바이섹슈얼(bisexual)·트랜스젠더(transgender)·인터섹스(intersex)를 줄인 말이다. 물론 내 옆자리의 사람의 정체성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80% 이상 거의 모른다는 답은 내 주위의 소수자가 없는 게 아니라 모르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스틸컷 |
ⓒ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스틸컷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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