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 활기 돈다"…스마트팜서 '유럽 쌈채소' 만드는 어르신들

지난 4일 충북 증평군 노암4리 둥구머리협동조합 스마트팜에서 조합원들이 갓 수확한 채소를 보여주고 있다. 왼쪽부터 김은주 사무국장, 손현성 대표, 손미자 감사, 최영자 이사, 김윤수 조합원. 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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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 둥구머리 마을 '유럽 쌈채소' 실험

지난 4일 오전 충북 증평군 도안면 노암4리 둥구머리 마을. 경로당 앞에 있는 165㎡ 크기 소규모 스마트팜 안에서 주민 3명이 샐러드용 채소를 따고 있었다. 카이피라·버터헤드·이자벨·로메인 등 주로 유럽 사람이 샐러드로 즐겨 먹는 채소 품종이다. 쌈으로도 먹을 수 있다. 친환경 수경재배 방식으로 기른 채소를 주 2~3회 수확해서 인근 공장이나 리조트에 납품한다.

노암4리 노인회장인 최영자(70)씨는 “오전 7시~8시까지 당일 납품할 채소를 수확하고, 경로당에 모여 포장 작업 후 배송한다”며 “스마트팜 덕분에 마을에 활기가 돌고 있다”고 말했다. 김윤수(83)씨는 “마을 이름을 걸고 채소를 판매한다고 해서 눈이 어둡지만 일손을 보태고 있다”며 “일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했다. 손미자(64)씨는 “경로당 바로 앞에 하우스가 있다 보니 수확·포장 작업이 수월하다”고 말했다.

증평 외곽의 산촌인 둥구머리에서 친환경 샐러드·쌈 채소를 재배하기 시작한 건 2021년 10월 이 마을에 스마트팜을 만들면서다. 그해 채소 생산·판매를 위한 ‘둥구머리협동조합’도 설립했다. 협동조합 설립 초기 60~80대 주민 16명이 각각 50만~250만원 정도 출자했다. 몇 년 새 어르신 3명이 세상을 떠나면서 조합원은 13명으로 줄었다. 조합원 중에서 이사(4명)와 감사(1명)를 선출했다.

지난 4일 충북 증평군 노암4리 둥구머리마을 주민들이 이날 스마트팜에서 수확한 채소를 포장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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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안 보여도 힘 보태니 좋아…스마트팜 덕에 활력”

손현성 둥구머리협동조합 대표는 “농협에서 40년 근무하다 2018년 고향에 돌아와 보니 마을 어르신이 경로당에서 김치찌개에 술을 드시거나, 화투를 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셨다”며 “서로 다투는 일도 많았고 건강도 챙기시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소일거리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회사 퇴직 후 1년 동안 농업기술센터 등을 찾아다니며 스마트팜과 농업용 드론·농기계 관련 교육을 받은 게 조합 운영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2021년 마을 이장을 맡았던 손 대표는 고민 끝에 증평농업기술센터 ‘농촌 어르신 복지 실천 사업’에 공모해 5000만원을 지원받아 스마트팜 시설을 만들었다. 부지는 군 소유 땅을 임차했다. 충북 괴산에서 스마트팜을 운영하는 윤경륜 라이스밀 대표 조언으로 샐러드와 쌈으로 먹을 수 있는 유러피안 채소로 작목을 정했다.

손 대표는 “처음엔 스마트팜 운영이 서툴러서 물 온도를 맞추지 못하거나, 배관이 막히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며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샐러드 채소를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샐러드 채소 생산 첫해 한 달 평균 500㎏을 수확했다. 매출은 2022년 2000만원, 2023년 6000만원 정도다. 올해는 농림축산식품부 ‘마을 만들기 자율개발 사업’에 선정돼 마을 뒷 편에 새 스마트팜 시설(495㎡)을 구축하면서 한 달 생산량이 1500~2000㎏으로 늘었다.

6일 충북 청주 굿파머 농산물 디저트연구소 개소식에서 둥구머리협동조합 조합원과 관계자들이 샐러드 배송 출시를 축하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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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 제품 출시…청주·증평에 배송 서비스도

올해 매출은 지금까지 8000만원 정도다. 구내식당 등 3곳에 정기 납품하고, 농장을 찾은 주민에게 직접 판매하기도 한다. 손 대표는 “수익금은 마을기금으로 적립하거나, 증평에 사는 초·중·고 학생에게 장학금 지급, 지역축제 후원 물품 지원 사업에 쓰고 있다”며 “아직 매출 규모가 크지 않아 지자체 ‘일손이음’ 사업으로 인건비를 드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르신들이 아침마다 신선한 채소를 수확하며 일상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드리는 게 협동조합 설립의 가장 큰 목표”라고 덧붙였다.

둥구머리협동조합은 샐러드 채소 판매를 다변화하기 위해 조만간 정기 배달 서비스에 도전한다. 지역 퀵서비스 업체와 제휴를 맺고, 증평에 사는 아파트 단지 주민이 아침마다 샐러드 채소를 배달받을 수 있는 구독 서비스를 도입할 예정이다. 굿파머 농산물 디저트연구소와 함께 개발한 둥구머리 샐러드 브랜드 ‘꽃매밥상’을 출시, 증평·청주 지역에 배달한다. 꽃매밥상은 꽃을 든 할머니가 생산한 샐러드 채소란 뜻이다.

청주지역 채소·샐러드 정기 배송 서비스는 상하목장 청주중앙대리점에서 맡았다. 우유나 유제품에 곁들일 수 있는 샐러드·도넛·즉석식품을 함께 판매하는 방식이다. 안기홍 굿파머 본부장은 “로컬 푸드 강점은 그날 생산한 농산물을 선도를 유지한 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라며 “기존 유제품 업체 유통망을 활용하면 둥구머리 샐러드 판매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증평=최종권 기자 choi.jongk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