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생 이 사람 심장이 매일 시동 걸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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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경 기자]
"이거 한 대를 논으로 가지고 가려면 4명이 필요했지. 지게에 한 사람이 호이루(휠, 바퀴) 한 짐 얹고, 한 사람은 몸통 한 짐 지고, 또 한 사람은 수통(수관) 한 짐 지고 들로 나가는 겨."
"4명이 필요하다면서요? 나머지 한 명은요?"
"기술자는 연장만 들고 따라가면 되는 겨."
충남 부여군 석성면 창리에 사는 1935년생 박대규씨가 발동기를 모으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지난 10월 중순, 발동기에 대해 전혀 상식이 없고 호기심만 있는 상태에서 나는 소개해준 지인을 따라 창리마을로 향했다.
▲ 발동기 소리에 추억 한자락을 펼쳐놓으며 그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박대규 씨의 수장고를 열어놓자 마을 사람들이 찾아왔다. |
ⓒ 오창경 |
"논에 경지정리 하기 전에는 말여, 이 강가에 발통기(발동기)가 열 두 대나 쫙 깔려 있었어."
발동기는 농업이 근대화되기 시작하던 시기에 논에 물을 대고 탈곡기를 돌리고, 방앗간에서 정미용으로 사용하던 기계이다. 순전히 하늘만 바라보고 노동력으로만 농사를 짓던 시기에 이 발동기라는 물건은 농업의 신세계를 열어준 기계였다.
부여군 석성면은 백마강 갯벌이 만든 넓은 들판 논에서 농사를 짓는 곳이다. 땅은 비옥했고 백마강에서 물을 끌어와 논에 물을 대서 벼농사를 지었다. 강물을 끌어오지 못하는 골짜기 논에는 한구석에 둠벙을 파서 물을 가둬놓았다가 두레박이나 무자위를 밟아서 물을 퍼서 논에 물을 댔다.
사람들 눈 번쩍 뜨이게 했던 신문물
'농사를 지었다'는 말을 들으면 풍요로운 두레 풍장소리만 들릴 것 같지만, 실은 모든 과정마다 치밀하게 계산되고 동원된 노동력이 배어있다. 일제강점기 말쯤 일본에서 '발동기'라는 기계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 백마강 물을 끌어다 논에 물을 대기 위해서 이 수통을 발동기에 연결해야 한다. 지금은 P.P 소재의 호스와 모터를사용해 물을 끌어오지만 발동기가 도입된 시기에는 이런 수통을 사용했다. |
ⓒ 오창경 |
어린 박대규씨도 발동기의 괴력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는 부여군 석성면 창리에서 태어나 평생 목수로 일하며 농사도 지으며 사는 동안 기계의 매력에 매혹되어 시골 마을 안의 '얼리어답터'로 살았다.
▲ 국산 발동기 일제강점기에 도입되기 시작한 발동기는 대부분 일제가 많지만 국산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발동기가 현재 눈부신 기계 문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
ⓒ 오창경 |
10여 년 전 어느 날, 창고 한구석에서 뒹굴고 있던 추억의 발동기를 꺼내서 기름칠하고 부속을 구해 수리를 시작하면서 그의 황혼 인생도 같이 반짝반짝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소를 키웠던 축사를 개조해 개인 수장고를 만들었다. 목수였던 젊은 날을 간직하고 있는 연장과 가설재, 목재 등을 정리해놓고 한쪽에는 추억의 발동기들을 수집해 윤활유를 넣고 기름칠하고 부속품을 갈아서 시동을 걸어보는 재미로 살고 있다.
"내가 강원도 발동기만 못 구했어. 이건 저기 아랫지방에서 구해온 거야. 발동기는 보통 3마력 짜리가 많아. 일제(日製)가 많지만, 국산도 있지."
발동기의 뒷모습만 보고도 어느 회사에서 만든 건지, 어디에서 얼마를 주고 구해온 것인지 그 기계의 역사를 줄줄 읊으며 스토리텔링하는 박대규씨는 90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정정해 보였다. 그가 발동기와 함께 지내는 동안 그의 심장은 지금도 작동하는 발동기처럼 뛰었다.
모든 기계에 버튼만 누르면 작동이 되고 리모콘 시대를 지나 음성 인식도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나라 근대화 시기에 들여온 발동기는 우리가 지금 편리하게 사용하는 모든 기계의 기본형이며 모체라고 할 수 있었다.
"발동기가 아니라 애통기여. 기계를 잘 모르면 시동거느라 한나절이 그냥 지나가는겨."
"맞아요. 맞아, 우리 아버지도 그랬슈. 발동이 잘 안 걸린다고 애먼 우리한테 화를 내곤 하셨쥬."
"우리 집안 형님이 들 논에 발동기를 가져다 놓고 발동을 거는데 영 안걸리는겨. 3일을 발동기와 씨름하다가 집에 와서 마루에 벌러덩 누워서 쉬는데 가만히 보니께 한 구석에 부시(부시롯드)가 빠져 있잖여. 그래가지구 그걸 가져다가 끼우고 발동을 거니께 잘 돌아가더란 말이지..."
이게 왜 안 되는겨... 사람들 애 먹이는 '애통기'
당시에는 사람들의 발동기 조작이 서투른 탓도 있었지만, 애초 기계에 들어간 연료의 질도 좋지 않아서 시동이 종종 걸리지 않기도 했다고 한다.
박대규씨의 수장고 문을 열고 발동기를 구경하는 사이, 그 앞을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이 들어와 한 사람씩 발동기가 애를 먹였던 애통기였던 과거 시절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 60년 이상 잠들어 있던 발동기를 깨우는 90세 박대규 씨 노동력에 의지했던 농업을 아날로그 기계의 세계로 이끌었던 발동기에 대한 감성을 간직한 90세 어르신 ⓒ 오창경 |
농사의 신세계를 열어준 발동기라는 신기한 기계를 접하게 되면서 박대규씨는 기계의 구조와 작동 원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어지간한 기계들은 수리하게 되었다. 새로 나온 기계는 마련해서 사용해봐야 직성이 풀렸다.
"여기 있는 것들이 지금도 작동이 되나요?"
"내가 날마다 한 대씩 시동을 걸어보는 재미로 산다니께. 부품을 못 구해서 안 걸리는 것도 있는디, 어지간하면 다 되지."
박대규씨가 박제된 곰처럼 엎드려 있던 발동기 몸체의 어딘가를 만지작거리고 양옆 바퀴의 손잡이를 돌리자 시동이 걸리는 둔탁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60년 넘게 잠들어 있던 괴물을 깨우는 순간이었다.
무생물적인 세계에 생명을 부여하고 살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발동기의 세계였다. 온몸의 근육과 힘으로 농경 사회를 이끌었던 남자들이 아날로그 세계로 입문하게 된 계기가 발동기였다. 발동기는 그 시절 남자들의 욕망과 로망, 아날로그적 감성의 결정체였다.
"옛날에는 말여, 이 발동기 삯을 받았어. 한 가마니에 한 말씩 삯을 줘야혔어. 벼 모가지가(벼이삭)가 나올 때쯤에는 논에 물이 콸콸 들어가야 하거든. 그때는 서로 논에 물을 대려고 난리가 나는겨. 발동기를 먼저 쓰려고 막걸리도 사주고 그랬어."
▲ 그 시절 애간장 터지게 했던 애통기였던 발동기들 발동기가 열었던 농사의 신세계를 경험했던 세대들이 찾아왔다. |
ⓒ 오창경 |
그러는 동안 발동기는 순식간에 시골 마을에 나타났던 속도로 사라졌다. 동시에 우리나라 공업의 발달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사라진 발동기는, 점점 작아지고 세련되어지면서 기계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지금 다가오고 있는 AI 세상은 투박하고 애간장 터지게 하던 애통기 혹은 발동기가 시동을 건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경운기가 논을 갈고 방앗간에 발동기를 놓으면서 사람과 소들이 편해졌지."
박대규씨가 모아 놓은 발동기들의 몸체 위 투명한 유리컵 안에는 붉은 액체가 들어있었다. 발동기의 시동을 걸 때 엔진을 부드럽게 해주는 윤활유이다.
그는 매일 윤활유를 점검하고 시동을 걸어 마치 행진곡과도 같은 발동기 소리를 듣는다. 올해 90년 차 인생을 사는 박대규의 심장도 그렇게 여전히 쿵~쿵쿵쿵하며 발동기와 함께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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