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에서 부모로 [취재진담]

신대현 2024. 11. 6.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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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 기획기사를 연재하던 중 ‘우리 얘기를 들어주세요’라는 제목의 메일을 받았다. 자신을 경기도에 거주하는 34세 여성이라고 소개한 김다영(가명)씨는 난임 병원을 다닌 지 1년째에 접어들었지만 거듭되는 임신 실패에 하루하루가 우울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난임 검사 결과 ‘다낭성 난소 증후군’을 진단받았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란 난소의 남성 호르몬 분비가 증가해 배란이 잘 이뤄지지 않아 월경 불순, 다모증(몸에 털이 많아지는 증상), 불임이 발생하고 장기적으로 대사 증후군과 연관되는 질환이다. 이 질환은 비만이 높게 동반되며 완치가 어려워 꾸준한 관리가 요구된다.

김씨는 병을 진단받고 나서 좋아하던 술을 끊었다. 영양제를 골고루 챙겨 먹기 시작했다. 식단을 조절하며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참았다. 하루에 매일 2만보씩 걸었다. 남편도 담배를 끊고 운동을 시작했다. 아파도 과배란주사를 꾹 참고 맞았다.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비급여 약물도 효과가 좋다고 하면 마다하지 않았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아침 일찍 병원을 찾는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었다. 김씨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실패 뒤에 오는 좌절과 무력감이었다. 이 일을 1년 더 반복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졌다.

김씨가 보낸 메일에 대한 회신은 아직 못했다. 한동안 어떻게 답장해야 할지 몰라 고민에 잠겼다. 생각해 보면 취재하면서 만난 난임 부부들을 대하는 게 조심스러웠다. ‘환자’라는 단어를 쓰는 것조차 망설여졌다. 대학에서 학점 채우고, 직장에선 커리어 쌓고, 경제적 안정을 위해 부지런히 돈 벌고, 결혼해서 가까스로 집을 구하고. 행복하게 살려고 아득바득 노력하며 임신을 미뤘을 뿐이다. 그런 이들을 과연 난임 환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난임 기획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작년 12월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국회토론회를 취재하고 나서다. 그때 방청하러 온 난임 가족들을 만났다. 패널토론까지 모두 마치고 객석에서 질문을 받았는데 난임 가족이 준비해온 글을 읽어 내려갔다. 시간 제한 때문에 발언이 중간에 끊겼지만 간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들의 얘기를 더 듣고 공감하고 지지를 보내고 싶었다. 이들의 연락처가 적힌 자료집을 가방에 넣어놓고 다녔다. 그로부터 취재에 착수하기까지 꼬박 8개월이 걸렸다.

그 사이 여러 난임 정책이 발표됐다. 정부의 지원이 강화되고, 지방자치단체의 관심이 높아졌다. 사회적 인식도 나아졌다. 난임 예방을 위해 생애 한 번만 지원하던 난소기능검사(AMH) 횟수는 세 번으로 늘어났고, 여성 1명당 25회(인공수정 5회·체외수정 20회)에 걸쳐 지원하던 난임 시술은 이달부터 출산 1회당 25회로 확대됐다. 연령에 따라 차등 부담했던 건강보험 급여 본인부담금도 연령과 관계없이 모두 30%만 부담하면 된다. 서울시는 난임 시술 중 의도치 않게 시술이 중단된 경우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내년도 예산안에 ‘난임 시술 중단 의료비 지원금’ 6조3800만원을 편성했다. 아직 부족한 점이 있고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많지만, 난임 부부를 위한 정책이 계속 개발되고 있다는 점은 반가운 일이다.

주창우 서울마리아병원 부원장에게 들었던 난임 부부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45번의 난임 시술 끝에 출산한 여성이 있다. 우리나라에 유명하다는 병원은 다 다녀봤을 거다. 숱한 고비를 넘겼고 유산도 여러 번 경험했다. 난임 환자들이 소통하는 온라인 창구가 있는데 이 사람의 닉네임이 ‘꼭 해낼 거야’였다. 출산하고 나니 닉네임이 ‘해냈다’로 바뀌었다. 이제는 둘째 아이를 갖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난임 부부의 여정에 함께할 수 있었다. 부부에서 부모가 되기 위한 여정에서 간절하게 아이를 바라는 이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계속 관심을 기울이고 사회적 인프라와 지지 기반이 강화되길 바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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