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영원한 우리 땅"…독도 생방송, TBC가 처음이었다
한국 방송국 최초로 독도에서 "여기는 영원한 우리 땅"이라고 시작하는 생방송 리포트를 한 곳은 어디일까. TBC 동양방송이다. TBC는 1977년 2월 18일 정오뉴스에서 "우리나라 가장 동쪽에 자리 잡은 독도입니다"라고 역사적 리포트를 했다. 이듬해인 1978년엔 한국 방송국 최초로 아프리카 대륙의 6개국을 종횡무진 취재하는 기록도 세웠다. TBC가 한국 방송사(史)에 아로새긴 족적의 일부다.
TBC는 그러나 한국 방송사에 아픈 이름으로 남았다. 1964년 5월 9일 개국 후 한국 방송의 외연을 넓히고 국민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지만, 돌연 1980년 11월 30일 문을 닫아야 했다. 당시 전두환 정부의 강압적 언론통폐합 조치로 인한 통한의 마침표였다. 그러한 TBC의 정신을 계승해 2011년 설립된 방송사가 JTBC다.
통폐합되지 않았다면 올해 개국 60주년을 맞았을 TBC. 그 짧지만 강렬했던 역사를 회고하는 책이 나왔다. 『TBC 뉴스 17년의 기록』이다. TBC 보도국의 기자ㆍ아나운서들의 모임인 동양방송 보도국회, 즉 동보회(東報會) 회원들이 함께 펜을 들었다.
동보회 회원이자 이번 책의 편집위원을 맡은 이들은 강갑출, 김관상, 김벽수, 남선현, 이창근, 장성효, 차만순 위원들이다. 편집위원들은 머리말에서 책 편찬 배경에 대해 "과거 민방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현재의 언론인과 연구자들이 1960~70년대 한국 '방송 저널리즘'이 처했던 시대적 상황과 사회상을 깊게 파악하게 함으로써 앞으로의 방송 발전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책은 동보회 회원들의 생생한 기록으로 가득하다. 저녁 방송 뉴스가 금기이던 시절 '7시 종합뉴스'를 과감히 편성해 TBC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15분만 진행하던 뉴스 방송 루틴을 깨고 30분으로 확대한 건 단순히 TBC를 넘어 한국 방송의 새 역사를 쌓은 벽돌이었다.
신문과 방송을 당국이 일일이 검열하던 시절. 당국의 서슬에도 굴하지 않고 1980년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취재했다. 앞서 1970년대 유신 체제 종말의 도화선이 된 일명 'YH 여공 사건(YH무역이라는 기업의 여성 공장 근로자들의 농성이 정치적 파장을 일으키며 부ㆍ마항쟁으로 이어짐)'을 보도한 일화는 시대를 관통하는 저널리즘의 임무를 다시 일깨운다.
보도뿐 아니라 스포츠 보도 및 예능에서도 TBC는 한국 방송 역사를 써나갔다. 1977년 권투선수 홍수환이 4전5기 끝에 꺾고 챔피언을 '먹었던' 경기,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무하마드 알리(1942~2016)와 일본 간판 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1943~2022)의 1976년 매치, TBC가 중계하며 전국 애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경기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이노키와 알리의 경기는 전 세계에서 14억명이 생중계로 시청했는데, 한국에선 TBC가 독점 중계했다.
여성 방송인 1세대의 희로애락 회고담 역시 책의 흡입력을 더한다. TBC 개국요원인 이성화 아나운서는 서울 중구 서소문 중앙매스컴 빌딩 보도국에 입사한 최초의 여성 중 한 명이다. 1964년 전국체전 개막식에서 기지를 발휘해 경호원들을 뚫고 육영수 당시 퍼스트레이디를 깜짝 인터뷰했던 일화가 미소를 자아낸다. 당시 유행하던 무릎 위 미니스커트 차림에 동료 출연자가 "다리가 다 나오는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는 거, 정신세계가…"라고 혀를 찼다는 이야기는 격세지감 그 자체다.
책은 TBC 고별방송 부분에서 절정으로 치닫는다. 간판 프로그램 'TBC 석간'의 고별 방송을 맡았던 여성 앵커 이영혜 아나운서는 "울 수도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정옥 아나운서 역시 "이제 몇 시간밖에 남지 않은 TBC, 어느 사람도 섣불리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며 "강제로 헤어지는 연인처럼, 어쩔 수 없이 이별하는 혈육처럼 TBC의 마지막 방송 모습은 그랬다"고 기록했다.
당시 아쉬움의 눈물은 보도국뿐 아니라 TBC 전체에 가득했다. 가수 이은하 씨가 종방에서 노래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을 부르다가 눈물을 흘렸다는 이유로 당국이 방송 출연 정지를 시킨 일화도 남았다.
책은 "17년 동안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사랑받았다"며 "한국이 중진국으로 성장하는 데 일조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취재기자를 비롯해 촬영기자, 아나운서, 미술부와 식자실 그리고 라디오와 TV 주조정실 요원까지 합심해 분초를 다투며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며 "개국 60년이 지났지만 무한한 자긍심을 간직하고 있다"고 적었다.
TBC의 마지막날이었던 1980년 11월 30일, 보도국 전 직원은 사호에 서명을 남겼다. 직원들은 고(故) 홍진기 사장이 나눠준 석별패를 갖고 힘든 발걸음을 돌렸다. 그 석별패에 적힌 두 단어가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다. "TBC는 영원하리!"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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