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문화] 솜뭉치 인공 태반·오줌 결정체 조각… 전위적 亞 ‘페미니즘’ 미술
사각으로 된 흰 솜뭉치 가운데 둥그런 구멍이 뚫려 있다. 저 설치 미술 작품에서 누구라도 연상되는 게 있다. 태반이다. 태아가 엄마의 몸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자궁 내벽에 붙은 그 기관 말이다. 그런데 인공 태반이라니. 모성의 역할을 기계화한다는 급진적 발상을 담은 일본 여성작가 미츠코 타베의 작품 '인공태반(人工胎盤)'(1961)은 1960년대 이후 페미니즘 논의가 얼마나 급진적으로 전개되며 아시아 미술계를 강타했는지를 선명하게 증거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하는 전시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은 신체를 키워드로 1960년대 이후 아시아에서 여성주의 미술이 전개된 역사를 보여준다. 서구 중심에서 벗어나 아시아로 한정했다는 점에 점수를 주고 싶다. 일본 구마모토미술관, 필리핀국립미술관 등 국내외 기관에서 작품을 대거 대여해왔고, 그 덕분에 백남준의 일본인 아내 구보타 시게코의 비디오 조각 ‘뒤샹피아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裸婦)’(1976), 미츠코 타베의 ‘인공태반(人工胎盤)’, 중국 작가 구오펭이의 ‘자유의 여신상’(2003) 등 국내 처음 소개된 작품이 적지 않다.
130여점이 쏟아진 대규모 회고전인 만큼 관람하면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면 정강자, 정정엽, 박영숙, 윤석남, 이불, 이미래 등 귀에 익숙한 한국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지팡이 삼는 것이 좋을 거 같다.
페미니즘 운동은 20세기 초 참정권 획득에 성공한 이후 60년대부터는 ‘모성본능은 신화일 뿐 실재하지 않는다’며 인공재생산을 주장하거나 가사의 사회화를 주장한다. 또 90년대부터는 백인 여성 중심 페미니즘 운동에 비판이 제기되며 신화, 양성성, 환경 문제, 유색 인종 등으로 초점이 확대했다. 전시는 아시아 여성미술가들 역시 이 페미니즘 흐름에서 비껴가지 않았음을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기획자인 배명지 학예연구사는 이를 시대순으로 보여주기보다 주제별로 배치했다.
1부 ‘삶을 안무하라’에서는 식민, 냉전, 전쟁, 이주, 자본주의, 가부장제 등 근현대사를 관통한 이데올로기가 여성의 신체에 어떻게 새겨졌는지를 탐색한다. 윤석남의 회화 ‘엄마의 식사 준비’(1988), 일본 작가 아데미츠 마코의 영상 ‘가정주부의 어느 날’(1977)은 아시아 중산층 여성이 공통적으로 느낀 가사 노동 문제를 보여준다. 일본의 연예인으로, 홍콩의 가정부로 노동을 파는 필리핀 여성의 처지를 표현한 필리핀 작가 브렌다 파하르도의 회화(1993)는 한국의 60∼70년대 여성들의 처지를 상기시킨다.
가장 큰 시각적인 충격은 2부 ‘섹슈얼리티의 유연한 영토’에서 받을 수 있다. 도발적인 상상력으로 성과 죽음, 쾌락과 고통 등 사회가 금기한 주제에 도전하며 성기와 가슴 등 섹슈얼리티를 드러내는 이미지가 노골적으로 이어진다. ‘인공태반’도 이 코너에 나왔다. 쿠사마 야요이의 퍼포먼스 영상 ‘자기 소멸’(1967)은 그 유명한 ‘땡땡이 호박’ 회화 속 무수한 점들이 어디서 연유하는지 짐작하게 한다.
작가는 무수한 점을 찍어 흔적을 지우고 위계를 지운다. 오줌 결정체를 묻힌 장지아의 조각(2007), 올해 영국 테이트모던 터바인홀에 작품을 설치한 이미래의 설치 작품 ‘봐라, 나는 사랑에 미쳐 날뛰는 오물의 분수: 터널 조각1’(2022)도 만날 수 있다.
3부 ‘신체·(여)신·우주론’에서는 신화에 등장하는 신, 샤먼을 작업의 주요 표현 대상으로 삼거나 우주론의 관점에서 신체를 해석한 여성 미술가들을 만날 수 있고, 4부 ‘거리 퍼포먼스’에서는 거리를 무대 삼아 진행한 여성 미술가들의 퍼포먼스들을 자료 중심으로 소개한다.
5부에서는 신체의 반복성에 잠복된 이데올로기를 폭로한다. 관람객이 자신의 옷을 가위로 자르게 하는, 오노 요코의 그 유명한 퍼포먼스 영상 ‘컷 피스’(1965)도 나왔다. 구보타 시게코의 ‘뒤샹피아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는 네 개의 나무 계단 속 모니터에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여성의 반복된 몸짓이 나오는 영상이다. 마르셀 뒤샹의 회화 ‘계단을 내려다오는 나부’를 의식한 입체 버전으로 뒤샹의 작품에 잠복된 남성적 시선을 고발한다. 마지막 6부에서는 인간과 비인간, 남성과 여성, 인간과 자연, 정신과 육체 등 이분법에 따른 위계를 허물고 수평적 관계 맺기를 시도하고 보여주는 작품들이 선정됐다. 중국 작가 롱웬민의 퍼포먼스 영상 ‘플리킹’(2022)은 나무가 거꾸로 매달려 빗자루처럼 지구 대지를 위로하듯 쓸어준다. 지구에 상흔을 낸 인간 중심주의를 반성하며 여성적 시각을 내세우는 에코페미니즘의 관점이 있다.
출품작들은 주제에서 전위성이 강하다보니 퍼포먼스가 많고 이는 영상이나 자료 사진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시각적으로 스펙터클함이 부족하다.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과거 퍼포먼스를 전시장에 재현했더라면 공감의 강도가 커졌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다.
그룹 입김의 ‘아방궁 종묘 점거 프로젝트’(2000)는 유림의 반대로 무산됐다. 당시 유일하게 실현됐던 ‘나부끼는 분홍 한복 치마’를 전시장에 재현하는 것만으로도 아시아 여성주의 미술의 목소리가 전시장에 구호처럼 메아리치지 않았을까.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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