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임기 24시간짜리 대통령제는 어떤가?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추방당하기 전에 둘러 엎어버린다
헌법을 당 대표 집권을 위한 제물로
형사피고인 한 사람이 일국의 정치과정을 이처럼 철저히 독점하고 좌지우지할 수 있다니! 그것도 민주 대한민국에서!
다수의 국민대표가 이성적 합리적 대화 토론 설득 타협의 과정을 거치면서 국가를 안정적‧발전적으로 이끌어 간다는 게 대의민주정치의 요체이고 취지이며 의의다. 그건 그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국민과 대의원들의 지성·이성·합리성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 이들의 강제되지 않은 정신, 자유로운 사고와 판단이 제도의 성공적인 존속을 받치는 기둥이다. 당연히 정치적 우상(偶像)의 존재는 배격된다.
적어도 정치의 장에서 우상은 반지성·반이성·비합리·비민주의 상징이다. 정치적 우상을 생각 없이 추종하고 경배하는 국민에겐 자주·자율성이 없다. 그 이미지는 (아주 상징적 표현으로) 좀비에 가깝다. 북한의 ‘수령뇌수론’이 그 같은 인식의 한 예다. 그들에게 국가란 수령을 두뇌로 하는 유기체다. 인민은 세포에 불과하다.
민주정당이라면서 우상 만들다니
더불어민주당은 정말이지 난해한 정치집단이다. 자유민주국가의 민주정당을 표방하고 있기는 하나 그 정체를 알 수가 없다. 이재명 대표의 가솔 혹은 가신 집단이나 호위대 같은 인상을 주는데 아무려면 이 대명천지 대한민국에 그런 정치집단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난해하다는 것이다.
국회 상임위 회의장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악을 쓰고 소리를 질러대는 것을 보면 자신의 의지나 지시에 따른 ‘판단정지’의 처지는 아닌 게 분명하다.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에서 ‘국민의 소리’를 전한다면서 ‘욕설’까지 뱉어내는 게 당명(黨命) 때문이기야 하겠는가. 그렇기는 해도 집단으로서의 민주당 의원들이나 열성 당원들의 행태는 자극에 대한 ‘조건반사적 반응’과 흡사하다. 아니면 마리오네트(marionette: 줄인형)이든가.
민주당 이 대표는 형사범죄 혐의의 양판점 같은 인상을 주고 있는 정치인이다. 정치범·사상범이 아니고 개인적인 범죄로 이 대표처럼 많은 혐의를 가진 정치리더는 없었다. 그가 오는 15일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의 선고를 받게 된다. 무죄 판결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겠지만 그 자신이나 민주당 의원들의 태도로 보아 불안감에 짓눌리고 있는 인상이다. ‘이재명은 무죄’라고 주장하는 탄원서를 모으고, 의원들이 ‘무죄’ 서명 손팻말을 들고 인증 샷 릴레이를 벌이는 게 무엇 때문이겠는가.
전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검찰만 공격하더니 이제는 법원을 향해서까지 협박이다. 15일 선거법 위반 혐의 판결에 이어 25일에는 위증교사 혐의에 대한 선고가 있게 된다. 검찰이 각각 징역 2년형과 3년형을 구형한 만큼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이들은 거기에서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아예 ‘판 둘러엎기’에 들어갔다. ‘어게인 2017’을 공공연히 외치며 대중 선동에 나선 것이다. 지난달 7일 ‘윤 대통령의 계엄령 준비설’을 퍼뜨리기에 열심이던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을 본부장으로 한 ‘집권플랜본부’를 발족시켰다. 현 정부의 조기 종식에 대비한, (말하자면) 정권인 수 준비 작업인 셈이다.
추방당하기 전에 둘러 엎어버린다
이달 1일에는 조국혁신당과 함께 ‘임기단축 개헌 국회의원 연대 준비모임’이라는 것을 결성했다. 지난 7월 당권 경쟁 때 이 주장을 꺼냈던 김두관(민주당) 전 의원은 대통령 임기를 1년 줄이자고 하더니 이번 ‘개헌 연대’는 2년을 단축하자는 안을 내놨다. 이 주장에는 이준석의 개혁신당까지 가세했다. 그러니까 전체 야권이 윤 대통령 몰아내기 연대를 결성했다는 의미가 된다.
그뿐만 아니라 민주당은 지난 2일 서울역~숭례문 일대에서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 및 특검 촉구 국민행동의 날’ 집회를 열었다. 당이 동원령을 내렸고 자체 추산으로 30만명이 모였다고 했다. “딱 보니 100만명”이라던 광화문 촛불집회를 들먹이기엔 스스로도 낯 뜨거웠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것도 엄청난 뻥튀기였다고 한다. 경찰 추산으로는 1만 7000명 정도였다. 해당 지역 면적에 단위당 수용 가능 인원수를 곱하면 희망 참가자 수가 아니라 수학적 참가자 수가 확인된다. 촛불집회 때는 예사로 100만명, 200만명 주장이 나오고 언론들이 맞장구를 쳤었다. 감정이 과학을 앞서면 민주정치는 위기에 빠진다.
“밀어붙이자, 그러면 정권은 무너진다!”
아마 이 대표와 그 추종자들은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싶을 것이다.
“민중이야말로 정권을 있게도 하고 없게도 하는 힘의 원천이다! 봤지, 우리의 민중 동원력을?”
이런 으름장도 들리는 듯하다. 이 대표 자신이 군주민수(君舟民水: 군주는 배,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뜨게 하지만 배를 뒤엎기도 한다. 『순자』)를 강조한 것도 정권과 사법부에 대한 압박이자 대중에 대한 선동이라 할 수 있다.
1심 재판에서 유죄판결이 나오더라도 2심 3심이 있긴 하다. 그러나 여유를 부릴 처지는 아니다. 과거 같으면 무한정 끌 수도 있겠지만 대법원이 각급 법원에 ‘신속한 선거 재판’을 권고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하루라도 빨리 현 정권을 붕괴시키는 것만이 이 대표의 정치적·법적 안전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판단했을 법하다.
헌법을 당 대표 집권을 위한 제물로
1심에서 유죄가 나오든 무죄가 나오든 민주당과 주변 정당들의 정권 허물기는 격화될 게 뻔하다. 끝없이 정권에 포화를 퍼부어댈 것이다. 터무니없는 괴담도 대중의 심리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정부에 대한 신뢰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큰 성과다.
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서든 하루빨리 정권을 장악하고 싶어서든 어떻게 헌법상의 대통령 임기를 단축하는 개헌을 하자는 발상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인지 어이가 없다. 탄핵보다 더 빠르고 용이하다고 해서 그런다는데 헌법까지도 이 대표의 안전과 집권을 위한 제물로 바치겠다는 저들의 무모함이라니!
임기 단축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서 말인데, 24시간짜리 대통령제는 어떨까? 고대 아테네에서는 평의회 의장이 국가(폴리스)의 수장직을 맡았다. 의장의 임기는 단 하루였다. 그래도 아테네 민주정은 제대로 작동했다. 민주당 이 대표와 그의 호위 무사들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다. 혹 ‘기껏 5년짜리 정권’(이 대표의 표현)이나 ‘하루짜리 정권’이나 다를 바 없다고 여겨 ‘임기 1일 정권’ 개헌을 추진할 의사는 없는가? 무능 논란도 독재 논란도 없어질 테니까. 대통령직을 위해 벌이는 살벌하고 추한 정쟁도 필요가 없을 것이고….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으로서는 더 물러설 데가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다는 생각을 지금이라도 공유할 일이다. 당연히! 아직도 뒷걸음질 치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볼 생각이나 하면 상황 호전의 가능성은 로또 1등 당첨보다도 희박해진다. 7일로 예고된 윤 대통령의 담화와 기자회견이 불신의 골짜기를 건너 신뢰의 언덕으로 민심을 이끌어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특히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에 대해 자신이 우월적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2인3각 경주의 파트너임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권’에 아직 희망은 있다. 형사피고인들이 쳐놓은 덫에 걸려 허덕이는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그들이 예상하는 것 이상의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희망’은 그럴 때나 다가온다.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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