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석운 칼럼] ‘공정과 상식’은 어디 갔는가

전석운 2024. 11. 6.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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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의 공천 개입 의혹
‘공정 회복’ 약속과 달라

김 여사 ‘법 위에 군림’ 이미지
임기 내내 형평성 논란

‘관상과 해몽이 인사와 순방
뒤바꿨다’ 상식 밖 주장 해괴

지지율 추락에 신뢰 상실 위기
윤 대통령도 국민도 불행
악순환의 고리 누가 끊나

윤석열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기치로 내걸고 집권했다. 검찰총장직을 자진사퇴하고 대선 출마 선언을 할 때도,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됐을 때도 윤 대통령의 캐치프레이즈는 공정과 상식이었다. 그러나 집권 2년 6개월이 흐른 지금 윤 대통령이 강조한 공정과 상식은 어디 갔는지 묻고 싶다.

대통령에게 가장 요구되는 공정의 덕목은 정치 중립이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으로 2022년 3월10일 국민의힘 선대위 해단식에 참석해 “대통령이 된 저는 모든 공무원을 지휘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당의 사무와 정치에는 관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의 정치 중립과 당무 불간섭 선언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한 달이 안 돼 윤 당선인이 국민의힘 김태흠 의원에게 충남지사 출마를 권유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당선인 측은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윤 당선인의 권유와 지지가 알려진 탓인지 김 의원은 그해 6월 지방선거에서 현직 도지사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양승조 후보를 여유있게 누르고 이겼다. 대통령 당선인을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켜야 하는 공무원으로 볼 수 있는지 논란은 있다. 그러나 취임 전에 국무총리 후보 등을 지명하는 당선인의 권한을 감안하면 사실상 대통령이나 마찬가지다. 공직선거법 9조1항은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기관, 단체 포함)는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명태균씨의 통화에서 드러난 건 윤 당선인이 지방선거뿐 아니라 국회의원 보궐선거 공천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이다. “김영선 좀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라고 말한 윤 당선인의 육성은 아무리 들어도 대통령실의 해명처럼 ‘덕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윤 당선인이 명씨에게 말만 그렇게 했을뿐 실제 김 전 의원의 공천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건지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 그런데 명씨는 “진짜 평생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대답한 뒤 이 통화 내용을 지인들에게 들려주며 자신이 김 전 의원의 공천을 따냈다고 자랑했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통화 다음 날이자 윤 대통령의 취임식 날 김 전 의원을 재보궐 선거 후보로 공천했다.

더 오랫동안 공정성 시비를 부르고 있는 건 김건희 여사다. 김 여사는 300만원짜리 명품백을 받아도 주가조작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도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김 여사는 두 사건의 피의자 신분이었지만 압수수색을 당한 적이 없고, 휴대전화를 제출하지도 않았다. 김 여사는 단 한번 조사를 받았다. 그런데 조사받은 곳이 검찰청사가 아닌 대통령 경호처 소관 건물이었다. 검사들은 김 여사 조사에 앞서 소지하고 있던 휴대전화를 일시 반납했다. 검사와 피의자가 뒤바뀐 풍경이었다. 김 여사는 법 위에 군림하는 존재로 비쳤다.

국정 운영 원칙이라던 상식은 무속에 밀려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명씨가 윤 대통령을 ‘장님 무사’, 김 여사를 윤 대통령의 어깨에 올라 앉은 ‘앉은뱅이 주술사’로 비유하면서 김 여사와 ‘영적 대화’를 나눴다는 강혜경씨의 국정감사 증언은 듣기에 민망했다. 윤 당선인의 첫 대변인이 경질된 배경에 ‘윤 대통령과 기운이 상충하는 인사여서 교체해야 한다’는 명씨의 조언이 있었다는 강씨의 진술은 귀를 의심케 했다. ‘명씨의 꿈자리가 사납다’는 이유로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일정을 바꿨다는 주장도 충격이다. 사실이라면 주술과 무속에 영향을 받아 국정이 파행된 사례가 이뿐일까.

윤 대통령의 진짜 위기는 점점 더 많은 국민들이 윤 대통령을 신뢰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07년 이후 현직 대통령의 신뢰도를 평가해온 시사인이 지난달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신뢰도(2.82)는 역대 대통령 중 꼴찌를 기록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국면에 접어든 2016년 신뢰도(3.91)보다 낮았다. 윤 대통령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44.6%에 달했다. 중앙일보의 4일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잘할 것이다’라는 평가는 28%에 그쳤다. 오마이뉴스 조사에서는 21%로 더 낮았다.

임기가 절반이나 남은 현직 대통령의 신뢰도와 기대치가 이렇게 바닥인 적은 없었다. 국민들이 믿지 않고 기대하지 않는 대통령은 불행하다. 그런 대통령을 둔 국민들은 더 불행하다. 이 불행의 악순환을 누가 끊을 것인가.

전석운 논설위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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