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한한령 8년’ 중국이 잃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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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권력자 개인에게 좌지우지되는 인치사회에서 법이 지배하는 법치사회로 전환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해 11월 중국 외교부 겅솽 대변인은 "소위 한한령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강변했다.
한한령이 없었다면 콘텐츠 강국인 한국과 경쟁·협력을 통해 중국 대중문화 산업도 진일보했을 수 있다.
중국에 저작권 침해 국가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해진 것도 한한령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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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권력자 개인에게 좌지우지되는 인치사회에서 법이 지배하는 법치사회로 전환했다고 주장한다. 인권침해 논란이 있을 때는 “중국은 법치주의 국가”라고 힘주어 말한다. 하지만 법적 근거나 실체가 없는 ‘한한령’(한류금지령)의 위력을 보면 아직 인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중국에서 한국 아이돌이 대규모 공연을 한 것은 2015년 빅뱅의 중국 순회공연이 마지막이었다. 이듬해 7월 한국과 미국이 북한 핵과 탄도탄에 대응하기 위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결정한 뒤 한국 대중가수의 중국 내 공연은 금지됐다. 한·중 합작 콘텐츠의 제작도 중단됐다. 중국 방송사에선 한국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이 사라졌고 한국 영화도 개봉할 수 없었다. 중국 문화산업 감독기관인 광전총국이 2016년 9월 각 방송사 등 업계에 한류 금지를 지시한 데 따른 조치라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그해 11월 중국 외교부 겅솽 대변인은 “소위 한한령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강변했다. 2022년 11월에도 외교부 자오리젠 대변인은 “한한령을 시행한 적이 없고, 한국 측과 인문 교류 협력에 개방적”이라는 억지 주장을 폈다.
중국이 8년간 한국 문화콘텐츠의 유통을 완전히 봉쇄한 것은 아니었다. 2016년 12월 악동뮤지션의 상하이 쇼케이스를 허용했고 2021년 영화 ‘오!문희’가 중국에서 개봉했다. 2022년 1월에는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가 중국 지방방송국에서 방영됐고 올해에는 소프라노 조수미가 베이징 대극원 무대에 섰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공식적으로 한한령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알리바이를 강화했을 뿐이다.
중국이 한한령으로 한국을 무릎 꿇게 만들고 싶었다면, 실패했다. 잠시 주춤했던 한국 대중문화 산업은 미국 등 서구와 중남미 공략에 나섰다. 중국 자본 대신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의 투자도 유치했다. ‘기생충’의 미국 아카데미상 4관왕, BTS의 빌보드 핫100 정상 등극, ‘오징어게임’의 에미상 수상 등이 모두 한한령 기간에 이뤄졌다. 한국의 콘텐츠 수출액은 한한령 이전인 2015년 56억6000만 달러에서 2023년 129억6200만 달러로 성장했다.
반면 중국의 대중문화 상품은 영화·드라마·가요 모두 세계시장에서 존재감을 찾기 힘들다. 거대한 국내 시장을 바탕으로 막대한 수익을 거두지만, 국내용이라는 한계가 명확하다. 한한령이 없었다면 콘텐츠 강국인 한국과 경쟁·협력을 통해 중국 대중문화 산업도 진일보했을 수 있다. 문화산업이 개방과 경쟁 속에 성장한다는 사실은 1990년대 후반 일본 대중문화에 문을 연 후 급성장한 한국 대중문화 산업이 보여준다. 중국에 저작권 침해 국가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해진 것도 한한령 탓이다. 중국 SNS엔 정식 유통되지 않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 감상평이나 2차 저작물이 쏟아진다. 중국인들이 음지에서 불법적으로 한류 콘텐츠를 즐긴다는 명백한 증거인데 중국 당국은 손을 놓고 있다. 문화적 향유 욕구는 권력으로 통제하기 어렵다. 한한령을 유지하는 한 불법 콘텐츠의 유통은 활개를 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반중감정이 높아진 것도 중국엔 큰 손실이다. 중국은 한류 확산 초기에 큰 기여를 했다. 한류라는 단어 자체가 중국 관영매체 청년보가 처음 사용한 단어다. 양국의 가수나 배우가 교류하고 합작이 활성화되면서 양국 국민의 친밀도도 상승했다. 중국 드라마도 한국에서 꽤 두터운 팬층을 확보했다. 한한령 8년은 이렇게 차곡차곡 쌓아온 것들이 무너진 시간이었다. 퇴행을 거듭한 한·중 관계를 정상화하려면 비자 면제보다 한한령부터 해제해야 한다.
송세영 베이징 특파원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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