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내가 나일 수 있는 곳

2024. 11. 6.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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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에는 스스로 결정하기도 전에 여러 가지 옳은 기준이 있고, 사회는 이런 기준을 따르기 원한다.

상담자: 철수는 이런 상황에서 울고, 민수는 화를 내는구나.

그들은 P-LAY 학교에서 자기 모습이란 타인과 사회적 기준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아이가 말을 배울 때 문법 기준을 제시하는 대신 실수하고 실패해도 부모가 즐거워하듯, 두려움과 걱정 없이 자기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면 우리는 자기로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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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호 평택대 상담대학원 교수


인간의 삶에는 스스로 결정하기도 전에 여러 가지 옳은 기준이 있고, 사회는 이런 기준을 따르기 원한다. 업무는 유능하게 처리하고, 공부는 잘해야 하며, 대인관계는 유연해야 한다 등과 같은 ‘보이지 않는 기준’은 몇 가지 예다. 이런 기준을 통과한 사람은 이상적이고 좋은 사람이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요청을 받는다. 이는 미숙한 구성원이 사회에 적응하려면 필요한 조건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잘못된 일인가. 이 질문을 하는 것은 얼마 전 경기도 평택교육지원청에서 실시한 ‘어울림 플레이 학교(P-LAY SCHOOL)’를 운영한 경험 때문이다. 여기에 참여한 학생들은 ‘기준’을 따라가지 못해 ‘학습’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어떤 학생은 사소한 문제에도 눈물을 흘렸고, 어떤 학생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소리를 질렀다. 학습 목표를 작성하라는 말에 학생들은 오랫동안 어떤 것도 적지 않았다. 질문을 하면 침묵이 지속되거나 “모르겠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스스로를 ‘나쁘다’고 이야기했다. 그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못했다.

프로그램 셋째날 한 학생은 자기 이야기를 해보라는 친구의 부탁에 울기 시작했다. 말을 꺼낸 학생은 왜 우냐고 화를 냈다. 다른 학생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긴장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럴 때는 대개 두 학생을 달래고자 한다. 서로 오해하지 말고,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생각하게 하거나 좋은 뜻으로 말한 것이라고 설득한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 진행자들은 조정하거나 화해시키는 대신 그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했다. 대화 장면 하나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상담자: 철수는 이런 상황에서 울고, 민수는 화를 내는구나. 둘 다 솔직하게 표현을 해주고 있네. 이럴 때 우리는 서로 어색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지금은 각자 자기를 표현하는 중이니까. 이럴 때 각자 어떤 마음일까.

학생1: 저는 이럴 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괜히 더 나빠질까봐요. 그래서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해 봐요.

학생2: 저는 사실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학생3: 저는 놀라서 긴장했어요. 그런데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가만히 있었어요.

누구도 서로 비난하지 않고, 변화하거나 성장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상담자와 학생들은 느끼는 것을 솔직하게 말했다. 목소리가 작아 말하기를 꺼려하는 학생에게 누구도 크게 말하라고 하지 않았다. 단지 더 귀 기울여 들었다. 그것은 여기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도 괜찮은 곳이라는 것, 울거나 화내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들은 P-LAY 학교에서 자기 모습이란 타인과 사회적 기준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한 학생은 문자를 보냈다. “P-LAY 학교 덕분에 또 다른 저를 알게 됐어요. 수업 재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들은 느린 학습자도, 부적응 학생도, 문제가 있는 학생도 아니었다. 그들은 삶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우는 꾸준한 학습자였다.

모든 곳에서 지금보다 더 잘하라거나 더 좋은 모습으로 변하라고 요구하는 대신에 P-LAY 학교처럼 자기를 드러내고 존중받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떨까.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고 나서야 성장하고, 그 후에 세상을 살아간다. 여기에는 올바른 기준이란 없다. 아이가 말을 배울 때 문법 기준을 제시하는 대신 실수하고 실패해도 부모가 즐거워하듯, 두려움과 걱정 없이 자기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면 우리는 자기로서 아름답다. 우리는 모두 자기를 사랑하는 일에 느리지만 꾸준한 학습자다. 그런 점에서 거울을 보면 각자 아름답다.

차명호 평택대 상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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