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손끝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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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점자를 쓸어보지만 도통 발전의 기미가 없다.
나는 여전히 서아라비아 숫자 하나와 작은 점 여섯 개를 보는 것에 집중한다.
올해 초, 시립 도서관에 갔다가 별관에 마련된 점자도서관에 들른 적이 있다.
표지판이 눈에 띄어 호기심에 발길이 닿은 스무 평 남짓의 공간, 벽면을 따라 배치된 서가에는 두툼한 점자책들이 정갈하게 꽂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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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점자를 쓸어보지만 도통 발전의 기미가 없다. 나는 여전히 서아라비아 숫자 하나와 작은 점 여섯 개를 보는 것에 집중한다. 올해 초, 시립 도서관에 갔다가 별관에 마련된 점자도서관에 들른 적이 있다. 표지판이 눈에 띄어 호기심에 발길이 닿은 스무 평 남짓의 공간, 벽면을 따라 배치된 서가에는 두툼한 점자책들이 정갈하게 꽂혀 있었다. 종이 위에 새겨진 볼록한 문양 속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쓸어도, 온 신경을 집중해 눈의 초점을 또렷이 해도 나로서는 가닿을 수 없는 닫힌 세계였다. 그제야 평소 잘 와닿지 않았던 그러나 너무나도 명명백백한 사실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내가 시각 정보에 얼마나 많이 의존하며 살아왔는지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만나는 사람들이 아주 가까이 있음을 말이다.
며칠 전인 11월 4일은 한글점자의 날이었다. 1926년 또 다른 한글인 훈맹정음을 반포한 날을 기념해 제정됐다. 서울에 제생원 맹아부가 세워진 뒤 전국에서 시각장애인이 모여들었는데 해부학 같은 어려운 수업을 일본어로 배워야 해서 학생들이 힘들어했다고 한다. 이를 안타까워한 박두성 선생은 조선총독부의 감시를 피해 수년에 걸쳐 한글점자를 개발했다. 그렇게 탄생한 한글점자는 98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시각장애인에게 세상을 잇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사회에는 누군가의 고충을 헤아리고 불편을 개선하려는 선한 마음이 있기에 이뤄진 일들이 있다. 음성 도서 제작, 점자책 배달 등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고 문화적 소외를 줄일 수 있도록 방안을 모색하는 일도 그렇다. 자신의 능력을 이롭게 사용하는 사람들로 인해 과거보다 현재에, 오늘보다 내일에 더 많은 사람이 공평하게 누리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겠지. 내가 가진 재주는 무엇을 이롭게 하였나. 깊고 귀한 마음이 담긴 작은 점자가 아침 해를 품은 이슬처럼 손끝에 맺힌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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