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수 특파원의 여기는 워싱턴] 두 개의 미국 봉합할 ‘승복’… 트럼프가 후보라서 불안한 앞날

임성수 2024. 11. 6.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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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지난 대선 패배 뒤에 선거 조작 주장
의사당 폭도 난입·점거 비극 불러와
트럼프, 이미 수차례 투표 문제 지적
양 당, 승복 원하는 민심 따를지 관심

주사위는 던져졌다. 미국 현대사를 통틀어 가장 치열했다는 미국 대선 투표가 5일(현지시간) 완료됐다. 개표가 남은 상황에서 모두가 걱정하는 것은 선거 후유증이다. 대선 이후로도 주별 개표 과정을 둘러싼 법적 소송 등이 남아 있다. 극도로 양극화된 정치 환경에서 선거는 경쟁이 아닌 전쟁이 됐다.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에 대한 전혀 상반된 진단과 전망, 공약을 내놨다. 유권자들도 정확히 절반으로 쪼개졌다. 기자가 경합주를 중심으로 취재한 유권자 여론 역시 선거 내내 ‘두 개의 미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분열돼 있었다. 해리스 지지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선거의 최대 이슈로 민주주의 보호와 여성의 재생산권을 꼽았다. 그들은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미국 민주주의는 망가지고 여성 인권은 과거로 되돌아갈 것으로 봤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불법 이민과 경제가 불만이라고 했다. 조 바이든에 이어 해리스가 대통령이 되면 남부 국경으로 불법 이민자들이 쏟아져 미국인들의 일자리는 사라지고 인플레이션은 더 치솟을 것으로 우려했다. 양극화된 여론이 선거가 끝났다고 해서 접점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유권자들의 관심은 이제 개표로 쏠린다. 각종 음모론과 공정 시비 속에서 철저하고 정확한 개표가 이뤄져야 유권자를 설득할 수 있다. 초박빙 선거 탓에 누가 당선되더라도 유권자의 절반은 실망할 수밖에 없다. 실망은 분노로 바뀌고, 때로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2020년 대선 이후 벌어진 트럼프의 대선 불복과 이에 따른 2021년 1월 의사당 난입사태는 미국 민주주의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AP통신이 지난달 28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선 선거 이후에 대한 두려움이 묻어났다. 미국 성인 107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등록 유권자 10명 중 약 4명은 선거 이후에 결과를 뒤집으려는 폭력적 시도를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패자의 승복이다. 미국 대선에선 패자가 승자에게 축하 전화를 한 뒤 승복 연설을 하는 관례가 있었다. 이긴 후보가 승리 선언과 함께 국민 모두를 포용하겠다는 연설을 하는 것도 일종의 공식이었다. 2008년 대선 당시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의 승복 선언이 대표적이다. 매케인 후보는 “방금 전 버락 오바마 당선인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둘 다 사랑하는 이 나라의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을 축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런 관례를 무너뜨렸다. 트럼프는 아직도 2020년 바이든 대통령에게 패한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트럼프는 조지아주에서 선거 결과를 뒤집으라고 압박한 혐의로 지난해 8월 기소되기도 했다. 선거 불복은 트럼프와 공화당이 낳은 비극이다.

이번 대선 역시 끝나도 끝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이번 선거에서도 자신이 진다면 그건 선거가 조작됐기 때문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이어왔다. 자신이 이기는 경우에만 정당하게 치러진 선거라는 것이다. 특히 최대 경합주 펜실베이니아와 관련해 “펜실베이니아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사기를 포착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유권자들은 트럼프가 질 경우, 또다시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AP 조사에서 유권자 10명 중 9명은 모든 주에서 개표가 끝나면 패배자가 승복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공화당원 10명 중 8명도 패자가 승복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문제는 트럼프다. 유권자의 3분의 1만이 트럼프가 패배하더라고 승복할 것이라고 봤다.

트럼프의 선거 불복 ‘시즌 2’는 더 독해질 전망이다. 트럼프와 공화당 전국위원회는 패배할 경우를 대비해 이미 우편투표의 문제점을 수차례 지적해놓은 상태다. 선거 참관인이나 관리자에 포진한 보수 인사가 지방정부 단위의 개표 결과부터 문제 삼을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가 질 경우 다시 극성 지지자들을 선동하고, 이들이 결집해 폭력 사태를 벌일 수도 있다. 2021년 1월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인 의사당을 폭도들이 난입해 점거하는 장면을 전 세계가 지켜봤다. 그때보다 정치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트럼프는 달라지지 않았다. 2024년 대선 이후에도 의사당 난입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괜한 기우는 아니다.

민주당도 이번엔 그냥 당하지 않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민주당은 트럼프의 조기 승리 선언에 대비해 “트럼프의 선언을 믿지 말고 공식 집계를 기다리라”는 취지의 광고를 준비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문제는 해리스가 패배하는 경우다. 해리스가 지면 ‘파시스트’ ‘민주주의의 위협’이라고 규정했던 트럼프에게 패배를 인정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다.

2020년 선거 사기를 주장한 트럼프에 맞서며 ‘영웅’으로 떠올랐던 가브리엘 스털링 조지아주 총무장관실 최고운영책임자는 최근 CNN 인터뷰에서 “우리는 200년 넘게 낙선한 사람이 승리한 사람과 악수하고 앞으로 나아간 역사를 갖고 있다”며 “우리는 결과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결과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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