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프리즘] 소나무 무덤
단풍인 줄 알았다. 울긋불긋한 산을 보며 ‘벌써 단풍이 들었네?’라는 짧은 의문을 가졌을 뿐 그게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라고 짐작을 못 했다.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는 위에서부터 말라 내려오는데, 그러면 잎이 불그스름하게 바뀌면서 단풍처럼 보인다. 특히 솔잎이 우산을 접은 것처럼 아래쪽으로 쳐지는 것도 또 다른 증상이다.
이런 소나무 재선충이 경남 밀양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창궐하고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2022년 37만8079그루가 재선충으로 죽었다. 그러나 2023년에는 106만5067그루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올해도 현재까지 89만9000여 그루가 고사했다. 지역별로 보면 경북, 경남, 울산, 대구, 경기, 제주, 전남 등 145개의 시·군·구에서 재선충병이 발생했다.
재선충은 소나무에 기생하는 선충(1㎜ 내외 크기)의 일종이다. 나무 조직 내 수분·양분 이동 통로를 막아 소나무를 말려서 죽인다. 하지만 맨눈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작아 스스로 나무를 옮겨 다니지 못해 솔수염하늘소 등 ‘매개충’ 몸에 침투해 다른 나무로 옮겨 다닌다. 특히 재선충의 번식력은 놀랍다. 암수 한 쌍이 20일 후 20만 마리까지 번식해서다. 현재는 백신도 없어 걸리면 죽을 확률이 100%여서 ‘소나무 불치병’ 등으로도 불린다.
이렇게 해마다 재선충이 창궐하는 이유에 대해 산림청은 기후변화를 꼽았다. 지구온난화로 소나무 생육 여건이 악화하고 봄철 고온 현상 등으로 매개충의 조기 우화(번데기가 날개 있는 성충으로 변화)와 활동 기간 확대로 재선충병 발생 위험이 커졌다는 것이다. 여기다 예산 부족 등으로 기존 재선충 감염목을 다 제거하지 못한 것도 또 다른 원인이다.
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는 차량 접근이 가능하면 벌목해 다른 곳에서 파쇄한다. 그렇지 않은 곳은 전기톱으로 병에 걸린 소나무를 1m 크기로 자르고 쌓아 여기에 약을 뿌리고 대형 비닐(가로 1m, 세로 1.2m, 높이 0.7m)로 밀봉하는 ‘훈증방식’으로 처리한다. 그런데 이때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만 벌목하는 것이 아니다. 조류인플루엔자(AI)와 구제역이 발생하면 함께 있던 닭과 돼지를 무더기로 살처분 하는 것과 비슷하게 재선충이 발병한 소나무 인근 소나무 등도 ‘감염 우려목’으로 분류해 함께 처리한다. 훈증방식으로 처리한 대형 비닐이 구제역 살처분 장면과 겹쳐져 ‘소나무 무덤’처럼 보인 이유다.
살처분 장면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살아 있는 생명이 땅에 혹은 저장조에 무더기로 매장되는 장면이 얼마나 끔찍한지 안다. 산에서 들리는 ‘윙~’하는 전기톱 소리가 자꾸 살처분 때 동물들이 내는 비명과 겹쳐졌다. 더는 이런 방식으로 재선충에 대응해서는 안 된다. 해마다 피해가 극심한 특별방재지역은 수종 전환을 추진하겠다는 산림청의 입장은 그래서 반갑다.
위성욱 부산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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