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힌 모공을 뚫어주고 크기를 줄여주며, 여드름이 잘 안 나게 하고, 주름과 잡티를 없애고, 피부 탄력을 강화하며 톤은 맑게 해 젊음을 돌려주는 화장품 성분’이 있다고 말한다면 거리 약장수 보듯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잘’ 쓰면 그 모든 효과를 볼 수 있는 성분이 실재한다. 바로 ‘엄마들이 주름에 바르는 거 아니야?’란 오해를 사는, 레티놀을 위시한 비타민 A군(Retinoids).
합성 비타민 A 유도체 트레티노인(Tretinoin)은 1968년 미국 펜실베니아대클리그먼 (Albert Kligman)과 풀턴 (James Fulton) 연구팀이 그 여드름 치료 효과를 밝혀내 1971년 국소 여드름 치료제로, 1995년엔 광 노화 치료제로 미국 식품의약처(FDA)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함부로 쓰면 발적이 생기고 각질이 벗겨지는 등 피부 자극이 심해 이후 등장한 이소트레티노인 (Isotretinoin), 아다팔렌(Adapalene)등과 함께 현재도 처방을 받아야 하는 전문 의약품이다. 이에 화장품 업계는 레티놀(Retinol), 레티닐팔미테이트(Retinyl palmitate), 레티닐프로피오네이트(Retinyl propionate), 레티날(Retinaldehyde), 하이드록시피나콜론레티노에이트 (HydroxypinacoloneRetinoate, 이하 HPR) 등 다양한 레티노이드로 자극 없이 최대 효과를 볼 수 있도록 불꽃 튀는 연구 경쟁을 벌여 왔다. 레티노이드는 피부 속에서 레티닐팔미테이트-레티놀-레티날 순으로 변환돼 마지막엔 트레트노인 같은 레티노익애시드(All-transretinoic acid) 형태로만 세포 분화 작용을 할 수 있어 그에 가까운 것일수록 효과도 강하다. 가장 널리 공인된 안티에이징 기준 성분은 순수 레티놀이지만 그 불안정성과 두 단계 변환이란 한계를 뛰어넘는 제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저강도 레티놀 0.01~0.1% 미만
주름 개선 기능성 제품 인증을 받을 수 있는 레티놀 최소 함량 2500IU/g, 즉 0.075% 이하 제품도 꾸준히 사용하면 묵은 각질을 제거하고 콜라겐 합성을 촉진해 피부 결이 좋아지며 모공이 잘 막히지 않고 작아 보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 0.03% 이상이면 피부가 일상적으로 입는 손상을 상쇄할 수도 있다. 저강도 제품은 크게 자극을 걱정할 필요 없어서 10~20대 타깃 스킨케어 브랜드에도 흔하다.
하지만 레티놀 입문자나 민감한 피부는 일주일에 2번 밤에만 쌀알 하나 크기를 눈가, 입가를 피해 나눠 바르고 반응을 보면서 서서히 격일, 매일로 늘리는 게 좋다. 순수 레티놀 함량이 몇 ppb(십억분의 1을 의미)에 불과하거나 안정화, 전달 기술이 없어 급격히 파괴되거나 대부분 레티노익애시드로 전환되지 않는 천연 원료만 함유해 피부 개선 효과가 거의 없는데도 레티놀, 비타민 A란 타이틀을 단 제품도 많으니 석 달 이상 썼는데 피부 결조차 변화 없다면 조금 더 고함량에 안정된 제품으로 바꾸는 게 좋다.
중강도 레티놀 0.1%~0.3% 미만
잔주름이 사라지지 않을 때, 모공이 아래로 처져 길어 보일 때, 여드름 자국이 잘 사라지지 않을 때면 순수 레티놀 0.1% 이상 함유 제품을 시도해보자. 0.1%는 2015년 대규모 임상 시험에서 피부에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8주 만에 여러 노화 증상을 개선하는 효과가 다시금 검증돼 레티놀 제품에 가장 흔하다. 한편 피부 내에서 변환될 필요 없이 바로 작용하는 HPR은 아모레퍼시픽 그룹이 레티놀과 같은 양 5000IU/g로 비교한 결과 자극은 65.9% 적고 생체 이용률은 10배 높았던 최신 성분이라 ‘저자극 차세대 레티놀’로 입지를 넓히는 중이다. 인공 피부에 HPR과 레티놀, 살리실릭애시드, 항균 성분을 함께 썼더니 레티노익애시드보다 자극이 적고 여드름 치료 효과가 좋았다는 로레알 그룹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아직 대규모 임상 연구 결과는 없어서 대체로 효과는 레티놀, 레티닐팔미테이트보다 우수하고 자극은 레티노익애시드, 레티놀보다 적단 정도만 알려졌다. ‘그랜액티브 레티노이드(Granactive Retinoid)’는 HPR을 10% 함유한 원료명이다.
고강도 레티놀 0.3%~1% 이하
미국, 영국 등에선 레티놀 0.3%를 저강도로 보지만 국내에선 효과는 강력하지만 자극 반응을 겪는 사람들이 많단 사실이 밝혀져 고강도 제품으로 분류한다. 그래서 1% 가까운 레티놀 단일 성분 제품은 드문 대신 레티날, 아데노신, 펩타이드, 레티닐팔미테이트 같은 안티에이징 성분을 함께 쓰거나 이중, 삼중 캡슐, 진정 성분 따위로 자극을 줄인 제품이 많다. 최근 인기인 레티날은 한 번만 전환되면 레티노익애시드라 소량만 써도 레티놀보다 효과가 강력하다. 스위스 제네바대 지겐탈러(G. Siegenthaler) 박사팀 연구 결과 작용 속도는 11배 빨랐고 연세대 피부과학팀 이주희 박사와 다른코스메틱스 공동 연구에선 8주 사용 후 피부 개선 효과가 대략 2배(0.05% 다음 0.1%를 4주씩 사용 후 레티날, 레티날 각기 주름 23.91%, 12% 감소, 탄력 20.34%, 11.86% 증가, 수분도 53.97%, 35.78%가 각각 증가) 좋았다. 0.05% 이하로도 피부 결이 개선되고, 0.12%면 트레티노인 0.025%와 비등한 광 노화, 여드름 치료 효과가 있다는 외국 연구도 있다.
초고강도-레티놀 1% 초과 효과
통상 화장품 레티놀 최대 함량인 1%의 강도를 초과하는 고강도 레티노이드 제품이 속속 등장 중이다. 자극을 많이 줄였다 해도 초보자에겐 절대 권하지 않으며, 고농도 레티놀 제품을 써도 별 효과 없는 ‘강철 피부’나 오랜 기간 써서 내성이 강한 경우 적응 기간을 충분히 두고 시도해볼 만하다. 성공하면 굵은 주름과 색소 침착이 생겼을 만큼 광노화한 피부, 여드름과 모공 때문에 울퉁불퉁하고 딱딱해진 피부도 좋아질 수 있다. 자극이 두렵다면 먼저 보습제를, 그 위에 레티노이드 제품을 극소량 바르고, 다시 보습제를 덧바르는 샌드위치 기법을 써볼 것. 반대로 효과를 최대한 보고 싶으면 피부에 착 달라붙는 연고 제형에 글리세린, 히알루론산을 함유한 오일 베이스 제품을 선택해 맨피부에 바른다. 밤에만 쓰더라도 아침 세안을 깨끗이 한 후 반드시 자외선 차단제를 충분히 사용하고 자외선을 최대한 피한다.
*비타민 A가 포함된 보충제를 먹는 사람이 고농도 화장품, 의약품까지 쓰면 과잉증이 생길 수 있어 2022년 유럽 소비자 안전 과학 위원회(SCCS)는 레티놀 기준 보디용 보습제에 최대 0.05%, 기타 제품군과 씻어내는 보디용 제품엔 0.3%로 한도를 규정했다. 또한 임신 중이거나 가능성 있는 사람은 최기형성 우려 때문에 바르는 레티노이드도 금기 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