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부터 털신 신던 노인의 눈물, 의원님들은 알고 계십니까

강지영 2024. 11. 5.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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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지난여름에도 털신을 신었던 노인 여성을 보면서

[강지영 기자]

가게를 얻지 못한 가난한 상인은 난전에 좌판을 벌여 놓고 장사를 한다. 주로 여성 노인들이다. 그들은 쪽파, 애호박, 고구마 줄기, 도라지, 오이 등을 판다. 손님을 기다리며 그들은 쪽파를 다듬고 도라지 껍질을 깐다. 그들이 파는 오이는 마트에서 파는 오이와는 다르다. 꼬부라져 있다. 허리가 굽은 노인이 꼬부라진 오이를 판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김포시청 앞 사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지난 주말에도 그곳을 지나갈 일이 있었다. 난전 상인 중 한 명이 눈에 띄었다. 털신을 신고 있다. 아직 털신을 신을 만한 날씨는 아니다. 더구나 그 여성 노인은 지난여름부터 털신을 신고 있었다. 궁금했으나 주변에 다른 난전 상인이 있어서 말을 걸지는 못 했다. 의아했다. 무더운 여름에 털신을 신고 있다니. 혹시 유독 발이 시린 사람인가, 생각했다. 나의 지인 중에는 여름에도 발이 시려서 밤에 양말을 신고 잔다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런 상상을 했다.

털신 신고 쪽파 팔던 노인의 사연
 11월 2일 한 여성 노인이 난전에서 채소를 팔고 있다. 그녀는 지난여름부터 지금까지 털신을 신고 있다.
ⓒ 강지영
마침내 때가 왔다. 궁금증을 풀 수 있게 되었다. 쪽파 2000원 어치를 사며 용기를 내어 물었다.

"할머니, 발이 시리세요? 지난여름에도 털신을 신고 계시던데..."
"이거유? 신발 살 돈이 으읎..."

답을 하다 말을 잇지 못한다. 그러면서 눈물을 글썽인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고개를 드니 울음 가득한 눈이 더 잘 보인다. 그러면서 여성 노인은 말을 잇는다. 주변에서 차 소리가 나서 정확한 발음으로 듣진 못했지만, 몇 마디 말로도 충분히 짐작이 갔다. 그녀가 들려준 사연은 이렇다.

몇 달 전에 동생이 암으로 죽었다. 조카들도 형편이 좋지 않아 그녀의 동생은 병 치료를 제대로 못했다. 가까이 살고 있는 자신이 동생의 투병을 지켜봐야 했고, 그러면서 많은 돈이 들어갔다. 불쌍한 동생은 세상을 떠났고, 조금 있던 재산마저 동생의 병 시중에 다 쓰고 이제는 돈이 없어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짧은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그녀는 참았던 설움이 북받쳐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손을 잡았다. 쪽파를 다듬느라고 손은 거칠었다. 나이를 묻지는 않았으나, 70대 후반으로 보였다. 쪽파 값을 치르면서 현금 얼마를 더 드렸다. 그녀는 이러면 안 된다며 마다했다.

신발 한 켤레 값도 안 되는 돈으로 그녀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는 않았나, 마음이 불편했다. 그녀는 2000원어치의 쪽파 외에 호박 한 개와 쪽파 두 단을 내게 더 주면서 파김치를 담그면 좋다고 말했다. 감사히 받아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큰 현수막이 펄럭였다.

"정쟁 말고 민생!"

정쟁 유발의 원인 제공은 누가 했는가. 대통령 부부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아니던가. 어서 빨리 정치권이 정상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민생을 우선하겠다는 약속을 지켰으면 좋겠다.

누구의 '민생'을 외치고 있습니까
 경기도 김포시의 한 사거리에 '민생'을 강조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강지영
정치권에서는 늘 '민생'이 우선이라고 한다. 기. 승. 전 '민생'이다. 그런데도 국민의 생활, 생계는 나아지지 않고 있다. 정치권이 말하는 국민이란, 세금을 잘 내는 그래서 국가 경제를 살리는 사람을 지칭하는지도 모른다.

난전에서 좌판을 벌여 놓고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은 국가경제의 논의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발 한 켤레 살 돈이 없어서 그 무더운 여름부터 지금까지 털신을 신고 있는 여성 노인을 보면, 말로만 민생을 외칠 게 아님은 분명하다.

<경향신문>의 한 기사('약자복지' 챙긴다더니···세수 부족에 보건·복지·노동 재량지출 줄였다, 2024. 11. 3.)를 보니, 내년도 보건 복지 노동 분야 예산이 4조 원이나 감소했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은 "무책임한 재정 운용에 서민이 피해를 입는다"라고 했다.

그 기사에 따르면, 정부지출은 의무지출과 재량지출이 있다. 의무지출은 법으로 지출 규모가 결정되는 법정지출과 이자지출이라 정부가 임의대로 줄이거나 늘릴 수가 없다. 반면에 재량지출은 정책적 의지에 따라 재량권을 가지고 규모를 정할 수가 있다. 그런데 내년도 예산에서 보건 복지 노동 분야의 재량지출이 줄었다는 것은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는 뜻이라고 차규근 의원은 지적했다.

<연합뉴스>에도 내년도 예산 관련 기사가 나왔다(677조 예산전쟁 돌입…'尹부부·이재명표 사업 칼질' 대치, 2024. 11. 3.) 국민의힘 관계자는 3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꼭 필요한 민생 부분의 예산은 꼼꼼히 챙기겠지만, 민주당이 억지를 부리는 예산의 증·감액은 막아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지역화폐 추가 발행 사업을 추진하려 하고, 국민의힘은 그에 따른 증액을 수용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한다. 또한 민주당이 감액하려는 것은 대통령 부부와 연관 지을 수 있는 예산이라고 한다.

대통령은 지난 총선을 앞두고 지역 순회 민생토론회를 열었다. 거기에서 밝힌 각종 정책과제 추진방침이 선심성이라는 견해가 민주당에서 나왔다. '개 식용 종식 관련' 예산도 삭감하겠다는 것이 민주당의 입장이다.

개 식용 종식 관련해서 어떤 예산이 드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예산은 삭감하는 게 마땅하다고 본다. 검찰을 비롯한 권력기관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예산에 대해서도 '칼질'을 예고했다는 <연합뉴스>의 보도가 반갑다.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빈곤의 문제는 어렵고 복잡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나라가 앞장서야 한다. 그리고 그 속담은 수정되어야 한다. '가난 구제는 나라가 해야 한다.' 잘난 사람은 자기 능력으로 잘 살아간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일상이 고통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 인권을 외치는 현시대이지 않은가. 복지국가가 뭔가.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간다운 기초생활을 할 수 있게끔 하는 게 아니던가. 국민의 세금을 허투루 쓰지 않기를 바란다. 여당이 말하는 '꼭 필요한 민생' 부분에 여름에도 털신을 신어야 하는 할머니의 슬픈 현실이 반영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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