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지갑' 탈탈 털더니...초유의 사태 온다

송두한 2024. 11. 5.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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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세수펑크 방치하면 재정발 경제위기 못 막아...경제라인 전면 교체해야

[송두한 기자]

▲ 국무회의 입장하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10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건전재정은 관치의 검증된 무능과 시장주의 신념이 결합해 만들어 낸 합작품인데, 이제는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시스템 리스크로 진화하고 있다. 정부의 세수펑크 처방전은 국채발행 금지와 부자감세 원칙은 손대지 말고 급전으로 돌려막거나 그것도 안 되면 국민들이 알아서 더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것이다. 지금처럼 민생곳간을 털어 나라곳간을 채우려 하면, 결국 재정은 더 불건전해지고 민생은 더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체불명의 건전재정이 재정 이슈에 국한되지 않고 경제정책 전반에 2차 충격을 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 건전재정의 부산물인 세수펑크 충격을 한국은행 급전이나 기금(외평기금, 주택도시기금 전용 등)으로 돌려막는 사이, 재정운영 시스템이 무너져버렸다. 둘째, 경제가 어려울 때 일방적인 민생 긴축재정을 강요해 구조적 소득충격이 만성적 내수불황으로 이어지는 단초를 제공했다. 셋째, 최근 재정발 경제위기, 즉 2년 연속 '1%대 저성장 쇼크'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진짜 건전재정은 경기가 어려울 때 재정을 풀어 경제를 살려내고 경제가 좋아져 다시 곳간을 채우는 전문 역량을 요구한다.

건전재정에 더 불건전해진 나라살림

부자 뺀 건전재정이 불러온 초유의 세수펑크 사태도 문제지만, 국채발행 없이 땜질 처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2차 가해는 더 큰 문제다. 국세실적 추이를 보면, 건전재정 원년인 2022년에 396조 원을 기록한 후, 2023년 344조 원, 2024년 337조 원(본예산 기준 정부추정액)으로 급감 추세를 보인다. 건전재정발 세수펑크에 나라살림이 급격하게 쪼그라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영업자에 비유하면, 코로나사태에 준하는 매출 충격이 발생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재정운영 시스템이 망가지면서 이제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총체적 난국에 빠진 것이다.

세수추계를 둘러싼 경제관료들의 행태는 더 가관이다. 문재인 정부 때에는 역대급 초과세수가 발생해 "과소추계" 의혹이 일어난 바 있다.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기껏해야 '20조 원+α'라며 애써 숫자를 줄이려 했지만, 결국 엄청난 규모의 초과세수(2021년 +61.4조 원, 2022년 +52.5조 원)가 발생했다. 세수 예측만 정확했다면, 필요한 곳에, 필요한 재원을 더 빨리, 더 많이 투입해 코로나 경기충격을 조기에 진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처럼 그때도 정책 실패를 책임지는 경제관료는 아무도 없었다.

세수오차율(세입예산 대비)
▪ 전 정부: '21년(21.7% · +61.4조 원) ⟶ '22년(15.3% · +52.5조 원)
▪ 현 정부: '23년(-14.8% · -56.4조 원) ⟶ '24년e(-8.1% · -29.6조 원)

반면, 윤 정부가 기록한 2년 연속 대규모 세수펑크 참사는 유례를 찾기 어렵고,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초과세수 사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2023년에는 –56.4조 원이라는 믿기 어려운 세수 결손을 기록했는데, 이 중 44%(-24.6조 원)가 법인세 감소분이다. 올해에도 –29.6조 원의 결손이 예상되는데, 이중 절반 정도가 법인세 감소분이다. 건전재정이 내민 청구서로 인해 중산층과 서민경제는 민생 긴축재정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건전재정발 세수펑크에 망가진 재정운영 시스템
  청약통장 가입자가 한 달 새 4만명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10월 20일 서울 시내 설치된 4대 은행 ATM 기기의 모습. 이날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청약통장 가입자 수는 2천679만4천240명으로 한 달 전(2천683만3천33명)에 비해 3만8천793명 감소했다.
ⓒ 연합뉴스
그렇다면 국채발행 없는 카드 돌려막기식 땜질 운영이 왜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키는지 살펴보자. 정부가 세수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처방전은 최대 16조 원 규모의 기금 돌려막기다. 그러나 외국환평형기금, 주택도시기금, 공공자금관리기금 등 목적 기금에 손을 대면, 고유 목적이 훼손되거나 관련 사업이 부실화될 수밖에 없다.

첫째, 통화정책의 컨트롤타워인 한국은행이 급전 창구로 전락하면서 재정운영의 기존 체계와 질서가 무너졌다. 한계가구가 은행대출이 막히자, 사채로 대출을 돌려막다 파산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한은 일시대출금은 다음 해 1월까지 상환해야 하는 초단기 대출이기에, 상환부담이 높고 불필요한 이자비용이 발생하는 부채다. 한은 대출금은 올해 3분기 기준 152.6조 원으로 2020년 코로나사태 수준(102.9조 원) 넘어섰고, 관련 이자비용도 2022년과 비교해 7배 이상 증가했다. 한국은행 역시 정부 출장소라는 비판을 받는 등 독립성과 신뢰도가 크게 추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은 마이너스통장 이용횟수를 보면, 상황이 더 심각하다. 2022년 이용횟수는 13회에 불과했으나, 건전재정 원년인 2023년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용 횟수는 2023년 64회, 올해 3분기 75회 등으로 2022년과 비교하면 4~5배 증가한 셈이다. 나라살림이 얼마나 졸속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은행도 마이너스통장 상한 규정을 정비하지 않고 사태를 방치했다는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한은 차입금 이용횟수 · 대출금(이자비용)
▪ 전 정부: '20년 51회 · 102.9조원(471억원) ⟶ '21년 3회 · 7.6조(9억) ⟶ '22년 13회 · 34.2조(274억)
▪ 현 정부: '23년 64회 · 117.6조(1,506억) ⟶ '24년 3분기 75회 · 152.6조(1,936억)

둘째, 정부는 외평기금에서 최대 6조 원을 끌어다 쓰기로 했는데, 이는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행위에 가깝다. 국내금융 시장은 환율의 단기 변동성이 급격하게 확대되면서 원-달러환율이 '1400원 방어선'을 위협하는 엄중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오른 것도 없는 증시는 버블 없는 버블 충격에 노출되어 있고, 금리인하를 단행했는데 대출금리는 상승하는 등 금융리스크가 발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어느 때보다 크다. 만약,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외평기금에 손을 댄다면, 경제라인을 전면 교체하는 것이 맞다.

셋째, 건전재정발 세수펑크는 밑장 빠진 민생재정이 중산층과 서민경제를 선별 타격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일례로, 기금 돌려막기의 희생양이 된 '주택도시기금'이 이에 속한다. 정부가 손을 대려는 주택도시기금 여유자금은 최근 몇 년간 급격히 줄어들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서민의 주택대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기금의 재원인 청약저축 가입자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6월 운용 기금 평균잔액은 15.8조 원으로 2021년 49조 원과 비교하면 이미 3분의 1토막 난 상태다. 특히 기금이 은행에 지급하는 이차보전 비용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기금을 전용하게되면, 디딤돌대출 등 서민의 내집마련을 지원하는 정책대출을 대폭 줄일 수밖에 없다.

▲ 주택도시기금 여유자금 평잔 ['21년 대비 68% 감소]
▪ '21년(49조 원) ⟶ '22년(28.7조 원) ⟶ '23년(18조 원) ⟶ '24년 6월(15.8조 원)

▲ 공공임대주택 예산 ['22년 대비 34% 감소]
▪ '22년(22.5조 원) ⟶ '23년(17.5조 원) ⟶ '24년(18.1조 원) ⟶ '25년 예산(14.9조 원)

설상가상으로, 서민의 주거안정 자금인 '공공임대주택' 예산도 건전재정의 직격탄을 맞았다. 정부가 임대보다 분양 기회를 늘리겠다고 하면서 정작 공공임대 예산을 지속적으로 삭감해 왔기 때문이다. 내년도 공공임대 예산은 14.9조 원인데 이는 2022년 22.5조 원과 비교하면 무려 34%가 줄어든 셈이다. 향후 공급충격이 발생하면 결국 그 피해가 무주택 서민에게 집중될 것이다. 건전재정이 민생 긴축재정 압력을 높여 민생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는 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저성장 압력 높이는 자기파괴적 세수펑크 사이클
▲ 대화하는 최상목 부총리와 이창용 총재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0월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자기파괴적 세수펑크 사이클은 부자 뺀 건전재정이 세수펑크를 통해 고강도 민생 긴축재정 → 내수불황 → 성장률 쇼크 → 세수펑크로 이어지는 악순환 경제를 의미한다.

첫째, 건전재정의 본질은 민생 긴축재정이고, 민생 긴축재정은 내수불황의 주범이다. 부자감세 여파로 법인세는 2022년 103.6조 원에서 2023년 80.4조원으로 줄었고, 올해에는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기간 2200만이 대상인 근로소득세는 경기불황의 역풍을 뚫고 57.4조 원에서 59.1조 원으로 증가했으며, 올해에도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년(13~23)간의 누적 증가율을 보더라도, 법인세는 83% 증가에 그쳤지만, 근로소득세는 169%로 법인세보다 2배 이상 빠른 증가세를 보였다. 이처럼 근로자의 가처분소득이 줄면, 소비 여력이 줄어 내수 부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소득세 세율구간이 화석화되어 세율을 올리지 않아도 세금이 올라가는 자연증세 현상이 장기간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부양을 위해서는 법인세 감세가 아니라 소득세법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는 이유다.

둘째, 건전재정발 소득충격이 내수불황을 견인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정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가 성장해도 소득이 줄고, 수출이 늘어나도 소득이 주는 양극화 경제가 뉴노멀(새로운 표준)로 정착한 상태다. 가계실질소득이 성장률 궤도를 이탈해 '제로 성장선'을 수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자가 대상인 '실질임금증가율'은 2022년 –0.2%, 2023년 –1.1%, 2024년 2분기 –0.4% 등으로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이 정도의 소득충격은 금융위기가 아니면 결코 경험할 수 없다. '성장률(실질임금증가율)' 추이를 보면, 2021년 2.7%(-0.2%), 2023년 1.4%(-1.1%), 2024년 상반기 2.4%e(-0.4%) 등으로 격차가 확대되는 흐름을 보인다. 특히, 윤 정부 들어 실질소득이 성장률 궤도에서 완전히 이탈해 버렸다.

정부별 격차 (실질임금증가율 - 성장률)
▪ 전 정부: '18년(+0.5%) ⟶ '19(+0.7%) ⟶ '20(+1.2%) ⟶ '21(-2.6%)
▪ 현 정부: '22년(-2.9%) ⟶ '23년(-2.5%) ⟶ '24년 상반기e(-2.8%)

셋째, 건전재정은 결국 성장률로 평가받는 구조인데, 한국경제는 2년 연속 '1%대 저성장'이라는 성장률 쇼크에 빠질 위기에 처해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1분기 성장률 서프라이즈에 고무돼 전망치를 2.5%로 상향했다가 3분기 성장률 쇼크 이후 다시 2.4%로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이마저도 2.1% 안팎으로 추가 하향할 가능성이 높다. 올해 2%대 성장률 방어선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4분기 성장률이 최소 0.7%(전분기대비)를 찍어야 한다. 그러나 작금의 리스크 환경을 고려하면 절대 녹록지 않은 수치다.

현재 상황을 타개하려면, 우선 두 가지를 선행해야 한다.

첫째, 신념과도 같은 건전재정 기조를 전면 폐기하고 중장기 균형재정의 틀 안에서 민생 확대재정(추경)을 추진해야 한다. 과감한 민생 확대재정으로 내수경기 부양에 적극 나서야 하고 동시에 법인세는 보편 감세에서 '선별 감세'(일자리나 생산분야 투자 기업) 기조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무능한 경제라인을 전면 교체해 정책 실패가 반복되는 악순환을 차단해야 한다. 건전재정발 세수펑크 충격, 기금 돌려막기에 무너진 재정운영 시스템 등과 같은 정책 실패는 해임으로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책 기조의 대전환은 권한은 누리고 책임은 지지 않는 관치의 악습을 청산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송두한 민주금융포럼 상임대표(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 송두한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민주금융포럼 상임대표(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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