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보트피플에서 북미 베스트셀러 작가로...킴 투이의 여정

홍지유 2024. 11. 5.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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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출신의 캐나다 작가 킴 투이(56)는 열살 때 고무보트로 베트남을 떠나 말레이시아 난민수용소를 거쳐 캐나다 퀘백에 정착한 난민 출신이다.
디아스포라 문학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자전적 소설 『루』(2009)는 퀘백과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가 됐고 전 세계 25개 언어로 번역됐다. 킴은 데뷔작『루』로 2010년 캐나다 총독문학상을 받았고 2018년에는 미투 이슈로 수상자를 발표하지 않은 노벨문학상을 대신해 만들어진 스웨덴 ‘뉴 아카데미 문학상’ 최종심에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이름을 올렸다.
한국·캐나다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한국을 찾은 그를 지난달 11일 서울 마포구 문학과지성사 사옥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킴 투이 작가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문학과지성사

Q : 기존의 디아스포라 문학과『루』는 어떻게 다른가.
A : 나는 전쟁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말하고 싶었다. 베트남은 20년간 전쟁을 겪었고 그 이전에는 식민 지배를 받았다. 베트남을 이야기할 때 전쟁의 고통과 상처를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전쟁의 공포가 아닌 아름다움이다.

Q : 전쟁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나.
A : 전쟁 중에도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 포탄이 터진 자리에서만 연기가 피어나는 게 아니다. 차를 끓여 마시면 찻주전자에서도 연기가 난다. 그 차를 친구와 나눠 마시는 것이 아름다움이다. 인간은 전쟁 중이라도 기어코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존재다. 이런 아름다움이 인간을 다시 일어서게 하고, 살아가게 한다.

Q : 긍정의 문학이어야 한다는 뜻인가.
A : 그렇다. 『루』에서는 떠나온 사람의 슬픔보다 새로운 문화를 배워가는 기쁨에 초점을 맞췄다. 새 문화에 뿌리내리고 있는 독자들이 용기를 얻길 바랐다.

킴 투이 장편 『루』『만』『앰』. 2013년 작 『만』은 베트남 식당을 운영했던 저자 모습이 반영된 소설이다. 사진 문학과지성사

Q : 최신작인 장편『엠』을 포함한 대부분의 작품이 서정적이고 따뜻하다.
A : 내가 캐나다에서 받은 사랑이 그랬다. 처음 퀘벡에 도착했을 때 비좁은 난민 캠프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낸 상태였다. 온몸에서 악취를 풍겼고 머릿니가 득실거렸다. 그때 버스에서 내렸는데 캐나다 사람들이 처음 보는 내게 이마를 맞대고 몸이 부서져라 포옹을 해줬다. 그들이 보낸 따뜻한 눈빛이 오직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온 초라한 사람들의 존엄을 회복시켰다.

Q : 정체성 혼란은 없었나.
A : 베트남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는 못하지만 나는 베트남 사람이다. 동시에 퀘벡 문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100% 퀘베커라고 느낀다. 캐나다가 중요시하는 가치를 나 또한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100% 캐나다인이다. 이중 정체성이 나를 반쪽의 인간으로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Q :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살다가 직장을 관두고 돌연 베트남 식당을 열었다.
A : 베트남 문화를 알리겠다는 생각으로 벌인 일인데 사업 수완이 없어 망했다. 그래도 그 덕에 작가가 됐다. 식당 문을 닫고 '이제 진짜 뭘 해야 하지?' 생각한 끝에 나온 결론이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 뒤죽박죽인 원고를 출판사에 가져가 보여준 이도 지금은 친구가 된 당시 식당 단골이었다. 그렇게 마흔한 살에 작가가 됐다.

Q : 캐나다는 200년 넘게 평화를 유지한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출간한 전쟁 이야기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A : 보편성 때문이다. 소설은 전쟁 이야기지만 더 들여다보면 아이를 잃은 엄마의 이야기다. 아이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설 속 인물에 자신을 대입해보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역사나 정치, 이데올로기와 무관한 일이다. 나는 인간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Q : 정작 고국인 베트남에서 책을 내지 못한 것이 아쉬울 것 같다.
A : 45개국에서 책을 냈지만, 베트남에서는 못 냈다.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베트남을 떠난다는 구절이 있는데, 아마 이 부분이 문제가 된 것 같다. 부모님의 지인 한 분이 "당신 딸이 공산주의를 미화한다"고 항의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공산주의자는 악마인데,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묘사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양쪽에서 미움을 받은 셈이다.

Q : 영향을 받은 작가가 있나.
A : 마르그리트 뒤라스를 사랑한다. 캐나다에 와서 뒤라스의 책을 닳도록 읽었다. 내가 열 살 때 떠나온 베트남은 매일 육중한 탱크가 지나다니는 먼지 낀 거리였다. 그런데 뒤라스의 『연인』에 나오는 베트남은 그런 베트남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연인이 거리를 거니는,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 책은 내게 베트남도 폭탄과 전쟁이 아닌 다른 무엇일 수 있음을 보여줬다. (프랑스 작가 뒤라스는 사이공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Q : 작가로서의 꿈이 있다면.
A :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탐구하며 살고 싶다. 그것이 내가 스스로 부여한 사명이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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