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불안 심리 안정에 도움..."MB 보금자리주택 참고하라"
정부가 서울 서초구 서리풀지구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를 통해 2만 가구 공급하는 등 수도권에 5만 가구 주택공급계획을 5일 발표했다. 1971년 7월 도입한 그린벨트를 해제해 주택을 공급하는 건 이전 정부에서도 집값이 들썩일 때마다 꺼내 든 카드였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미 교통망이 잘 갖춰진 서울 도심의 인접 지역에 주택 공급이 이뤄지면서 서울의 주택 공급난 해소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교통이 불편한 외곽에 신도시를 지어 우회적으로 주택 공급 확대를 꾀하기보다 수요자들이 필요로 하는 지역에 집중적으로 짓는 정공법 공급 대책"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서울의 아파트값 상승 추세가 주택공급 감소에 대한 불안 심리에서 상당 부분 기인했다는 점에서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최대 규모 재건축인 둔촌 주공이 1만2000가구인 점을 생각하면 서울에 (서초 서리풀지구) 2만가구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규모"라면서 "서초 지역이 평당 7000만원대인데 여기는 토지수용을 통해 시세보다 저렴한 3000만∼4000만원에 나올 테니 서울 안에서의 수요 분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당장의 공급난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서울의 주택 공급량이 부족한 만큼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 속도와 물량이 중요하다”며 “물량 자체도 너무 적고, 첫 입주 시점도 2031년으로 예상돼 단기적인 효과는 적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도 “이번 공급은 최소 수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라며 “마냥 이 지역 아파트 분양만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3기 신도시 등 지속적인 주택 공급이 우선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건은 속도..."MB 보금자리주택 참고 해야"
정책의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사업 속도가 관건이다. 택지지구 개발 등을 통해 주택을 공급하면 계획 발표 후 실제 입주까지 최소 10년 이상이 소요되는 게 일반적인데, 이를 줄이는 게 핵심이다.
이명박 정부 때 그린벨트 해제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2008년 말 이명박 정부에선 보금자리주택을 짓기 위해 5.0㎢ 규모의 그린벨트를 해제했다. 그린벨트 해제로 공급한 보금자리주택도 ▶강남구 세곡동(6500가구)·수서동(4300가구) ▶서초구 우면동(3300가구)·내곡동(4600가구) 등 강남권 위주였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말 그린벨트를 풀어 보금자리주택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고, 2009년 9월 사전청약, 그해 말 본청약을 진행했다. 2012년부터는 입주가 시작됐는데,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였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당시 민간 건설사에서 반값에 가까운 공공분양을 했으니, 사람들이 높은 분양가의 민간 아파트청약을 기다리지 않는 분위기였다”며 “가격 추세를 보면 서울 아파트는 2009년 사전청약 시기, 본청약 시기에 우상향 곡선이 꺾였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부동산원 주택가격동향 조사를 보면 이명박 정부의 보금자리주택 공급이 본격화한 2009년부터 2012년 말까지 서울 아파트값은 누적 5.82% 하락했다.
이에 정부도 2026년 상반기 지구지정, 2029년 첫 분양, 2031년 첫 입주를 목표로 제시하며 ‘속도전’을 약속했다. 계획대로라면 5년 만에 분양, 7년 만에 입주가 진행되는 셈이다. 이 교수는 “이명박 정부처럼 속도를 내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밀어붙이기 어렵다면,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신뢰를 지속해서 보여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토지보상 난관 예상...보상 재원 마련도 필요
‘속도전’을 위해 넘어야 할 산도 있다. 공공택지 개발을 위해서 토지 수용·보상 절차를 진행하는데, 개인 소유주가 많을 경우 보상에 시간이 오래 걸릴 가능성이 있다. 실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서초구 일대 그린벨트 토지 소유주의 42%가량이 개인 소유였다. 또 한 필지를 여러 명이 소유한 지분 쪼개기 등도 변수다. 국토교통부가 이번에 선정한 지구와 인근 지역 내 최근 5년간 거래 5335건을 조사한 결과 1752건의 이상 거래(미성년·외지인 매수, 잦은 손바뀜, 기획부동산 의심)가 나타나기도 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은 “보상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민원이 발생하고, 이 과정에서 사업이 지체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단기적인 정책 효과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3기 신도시 일부 지역도 아직 보상 절차가 다 끝나지 않은 상황이라 이번 택지 개발을 맡을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의 재원 확보 여부도 관건이 될 것”이라며 “보상 재원 마련을 위해 범정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전 보금자리주택을 총괄한 LH는 대규모 택지 보상 문제로 심각한 자금난에 봉착하기도 했다.
분양가 수준도 중요하다. 분양가가 시세보다 저렴하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분양을 기다리는 수요자가 늘면서 주택 수요의 ‘대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분양가가 너무 낮으면 ‘로또 아파트’ 논란이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 분양에 뛰어들 수 있는 특정 집단에 개발 이익이 집중될 것이란 우려에서다.
실제로 보금자리주택으로 공급된 강남구 수서동 ‘강남데시앙포레’ 전용 84㎡의 실거래가격은 지난달 기준 18억원 대로, 2013년 분양가(4억원대)를 고려하면 10년 새 4배 넘게 가격이 뛰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민간 아파트는 분양가 상한제에 따라 분양가가 책정되고, 공공주택 뉴홈 역시 시세차익을 정부와 수분양자가 공유하는 환수 장치가 마련돼 있다”며 “과거 보금자리주택처럼 수분양자가 모든 시세차익을 가져가는 구조는 지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린벨트를 풀어 공급하는 서리풀지구 2만 가구 가운데 55%(1만1000가구)는 서울시가 신혼부부용 장기전세주택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규모 임대 아파트 공급이 서울 주택 공급난 해소에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진형 교수는 “헬리오시티(9510가구)나 올림픽파크포레온(1만2032가구) 등의 입주도 서울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했는데, 2만 가구, 그중 절반이 임대 아파트라면 강남권 대기 수요를 맞추기에 부족한 물량”이라고 강조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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