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가스통으로 만든 펭귄, 추억여행하러 오세요
광주를 흔히 예향이라고 부른다. 예로부터 음악, 미술, 문학 등 예술이 꽃피고 예술을 향유하며 살던 고장이다. 고향의 향기는 농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도시의 골목 어귀에도 시간이 축적한 추억들은 켜켜이 쌓여 있기 마련이다. 골목에는 재미가 있다. 추억이 있고 사연이 있고 오랜 세월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도시는 골목길로 이뤄지고, 골목길에서 만나는 예술은 도시를 숨 쉬게 한다. 그리고, 그 길을 통해 우리는 만난다. <기자말>
[매거진G]
▲ 펭귄 |
ⓒ 매거진G |
주인 모를 집 담벼락을 타고 핀 능소화와 좁은 골목 안 작은 화분 곁을 맴도는 호랑나비, 오랜 생활상이 느껴지는 낮은 주택의 고즈넉함 같은 것들이다. 잘 보존된 전통가옥을 둘러보는 정취와 더불어 시인 김현승의 흔적을 만나는 시간이 반가운 길이다.
▲ 양림동 골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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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재밌는 펭귄마을. 비록 펭귄은 살지 않지만, 나이 든 어르신들의 걷는 모습이 뒤뚱거리는 펭귄을 닮아 별칭처럼 부르던 것이 아예 마을을 대표하는 이름이 됐다. 오래되어 거무죽죽 얼룩이 진 콘크리트 담장엔 검은색 스프레이를 뿌려 적은 옛 시절 이삿짐센터 광고와 마을 지도, 색색의 분필로 적은 온갖 낙서들이 가득하다. 부엌에나 있어야 할 양은냄비며 프라이팬, 소쿠리들이 일광욕이라도 즐기듯 담벼락에 딱 달라붙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 양림근대역사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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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주민들이 자신이 갖고 있던 옛 물건들을 내놓고 합심해 마을을 가꾸면서 이곳 쓰레기들은 추억의 시간 여행을 위한 훌륭한 원동력이 됐다. 평범하기 그지없던 마을이 '발상의 전환'으로 핫플레이스가 되고, 타임머신 여행지로 재탄생한 것이다.
▲ 선교사 사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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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신학대학 안에는 <가을의 기도>를 새긴 시비가 있고, 가까이에 저렴한 가격으로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쉬어갈 수 있는 카페가 자리했다. 카페 앞 야외 공간에 서면 양림동 일대와 무등산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와 멋진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전통가옥인 이장우 가옥(광주광역시 민속자료 1호)과 최승효 가옥(광주광역시 민속자료 2호)을 만날 수 있다. 이장우 가옥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공간과 광주 최고의 부자들이 살았던 공간을 분리하는 기준이 되는 집이었다. 1899년에 지어진 전통가옥으로 일자형이 주를 이루는 남부 지방의 가옥과 달리 한양의 가옥처럼 'ㄱ'자 구조다. 나름 부를 과시하고 멋을 부린 것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일본식 정원과 사랑채, 멋스러운 안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평상시에는 대문을 닫아놓고 있으니, 왼편의 샛문을 이용해 들어가면 된다. 최승효 가옥은 1920년 최상현이 지어 일본 요정으로 운영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고 한편으로는 본채에 비밀 다락을 두어 독립운동가들의 은신처로 사용했던 공간이다.
▲ 이장우 가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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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자체가 '지붕 없는 미술관'이 된 양림동. 골목골목마다 점처럼 분산된 공간을 찾아다니며 마을이 품은 예술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미술 축제가 양림동에서 펼쳐진다. 지난 2021년 처음 열린 '양림골목비엔날레'. 예술가를 비롯해 문화기획자, 주민, 상인이 함께 마을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마련했다. 마을 곳곳에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전시와 프로그램은 골목비엔날레 정체성을 보여주는 의미있는 축제로 평가받는다.
올해도 양림골목비엔날레가 양림동 일대에서 펼쳐진다. 11월 10일까지 68일간 펼쳐지는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골목마다 자리한 개성적인 갤러리와 카페 등 일대
공간이 미술관으로 변신한다. 주제는 'Connecting Way ; 사이, 사이를 잇다'. 예술과 일상, 시간과 공간, 마을과 세계와의 연결을 매개로 연대의 기쁨을 회복하자는 의미다. 특히, 올해 30주년을 맞이한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주제전 '소리숲-양림'의 전시장으로 양림동이 활용돼 마을 가치와 매력을 세계에 알린다는 계획이다.
▲ 양림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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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매거진G>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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