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운 선생이 체험한 을묘천서의 진실

이윤영 2024. 11. 5.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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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대서사시, 모두가 하늘이었다 7] 수운 최제우 선생 탄신 200주년,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동학의 근원을 찾아서

[이윤영 기자]

▲ 호암곡 여시바윗골 울산 유곡동에 자리하고 있는 호암곡(狐岩谷)은 '여시바윗골'로 불린다. 이곳에서 수운 선생은 그 유명한 을묘천서(乙卯天書)라는 신비체험을 한다. 을묘천서에 대하여 동학을 연구하는 분들의 여러 견해들이 있어왔다. 천도교에서는 대체로 수운 대신사의 영적체험이라는 견해이다. 또 동학연구자들 일부는 서학의 교리서 천주실의(天主實義)라고 주장한다. 이에 본 글로 을묘천서에 대한 논란이 불식되었으면 한다.
ⓒ 천도교중앙총부
여시 바윗골에서 신비한 체험을 하다

울산 태화강 상류에 있는 유곡동 호암곡(狐岩谷) 일명 여시바윗골은 야산에 둘러싸여 조용하고 아늑한 곳이다. 또한, 상서로운 기운이 감돌아 마치 어머니 품 안처럼 포근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현재 복원된 초당 앞에서 잠시 앉아만 있어도 마음이 안정되며 정신적 고향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명당이다. 수운 선생이 여시바윗골 초당에서 시작한 사색과 기도는 반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증험도 나타나지 않았다. 마음이 답답하여 십 년간 주유천하 때 구입한 여러 책자를 읽으며 자신이 한계에 이른 것을 자책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음 해인 1855년(32세, 을묘년) 3월 3일 처음으로 영적 체험을 하게 된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던 3월의 어느 봄날 정자에 기대어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비몽사몽 간에 문밖에서 주인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바라보니, 어디서 왔는지 선사 모습의 스님 한 분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소승은 금강산 유점사에 있습니다. 기껏 해보아야 부처님 경전이나 읽는 처지나, 아무런 영험이 없기에 백일기도를 드리면 신기한 효험이 있을까 하여 간절히 원하며 빌고 있었습니다. 기도를 마치는 날 탑 아래서 잠깐 잠들었다가 깨어보니 탑 위에 책이 한 권 있었습니다. 읽어보니 세상에 보지 못한 귀한 책이었습니다. 소승은 두루 다니며 사람들을 찾아뵈었으나 책의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선생의 소문을 듣고 온 것입니다. 혹시 선생께서 이 책을 알 수 있겠는지요?"

수운 선생이 책을 펼쳐 보고는 "며칠간 살펴보겠습니다"라고 하자, 선사는,
"그러면 3일 후에 다시 오겠으니 그동안 자세히 살펴보심이 어떻습니까?"하고 물러갔다. 그날이 되자 선사가 와서 묻기를, "혹시 깨달은 바가 있습니까?"하니 수운 선생이 "제가 이미 다 알았습니다"라고 했다.

선사는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 책은 진정 하늘이 선생께 내려주신 책입니다. 소승은 다만 이 책을 전할 뿐입니다. 바라건대, 이 책의 뜻과 같이 행하시길 바랍니다"하고 두 손 모아 합장하고 선사는 홀연히 사라졌다.

수운 선생은 이상하게 생각하였으나, 곧 선사가 신인(神人)임을 알게 되었다. 그 뒤에 서책의 이치를 깊이 살펴보니 기도에 관한 가르침이 담겨있었다. 노승이 전해준 서책의 내용이 곧 하늘의 계시를 적은 천서(天書)로 알고 지금까지의 제사로 행하던 구도 방법을 버리고, 하늘에 기도하는 수행의 방법으로 전환하는 중대결심을 하게 된다.

을묘천서(乙卯天書) 이야기와 닮은 또 다른 기록이 있다. 수운 선생을 좌도난정의 죄목으로 체포했던 선전관 정운구가 임금에게 올린 장계에 따르면, 서울을 떠나 경주로 가면서 최제우와 동학에 관해 탐문수사를 하였다고 한다. 당시 수운 선생의 고향인 가정리 근처 마을 사람들에게서 들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운 선생은 5~6년 전에 경주에서 울산으로 이사 간 다음 무명옷을 팔아 살다가 가까운 해에 이르러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나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정성을 다해 기도하던 중 돌연 공중에서 책 한 권이 떨어지는 것을 얻어 공부하였다. 사람들은 어떤 글자인지 알지 못하였으나, 나는 홀로 선도라고 말하였다."

이렇듯 왕에게 보고한 관변기록에까지 있는 것을 보면, 을묘천서에 관한 영적 체험의 소문이 많은 사람에게 전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수운 선생의 을묘천서 이야기는 한울님 계시에 의한 무형의 영적 체험으로써 새로운 구도 방법을 터득하는 계기가 되었다.

수운 선생의 영적체험인 을묘천서(乙卯天書) 이야기는 선생께서 글을 남기는 등 직접 거론한 적은 없지만, 선생의 제자 강시원(강수)이 지은 '최선생문집도원기서' 등 동학 초기 역사서에서 전해오고 있다. 다만 수운 선생께서 지으신 늙은이와 젊은이의 꿈속에서 주고받은 이야기인 <몽중노소문답가(夢中老少問答歌)>에 "···잠을 놀라 살펴보니 불견기처(不見基處) 되었더라"즉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 살펴보니, 그곳에 아무도 보이지 않더라'등의 을묘천서와 닮은꼴의 이야기가 나옴으로, 을묘천서가 사실이냐 아니냐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기로 한다.

···금강산 상상봉에 잠간앉아 쉬오다가
홀연히 잠이드니 몽에 우의편천일도사가
효유해서 하는말이 만학천봉 첩첩하고
인적이 적적한데 잠자기는 무삼일고
수신제가 아니하고 편답강산 하단말가
나는또한 신선이라 이제보고 언제볼꼬
너는또한 선분있어 아니잊고 찾아올까
잠을놀라 살펴보니 불견기처 되었더라.
「몽중노소문답가」

호암곡 을묘천서 이후 수운 선생은 천성산 내원암과 적멸굴의 칠칠(49일)기도로 이어진다. 결국 을묘천서는 용담 득도의 단초가 되는 신비한 하늘의 계시였다는 추론도 하여본다.
▲ 수운 최제우 대신사 적멸굴 49일 특별기도 수운 최제우 선생이 49일간 한울님께 기도한 적멸(寂滅)굴은 ‘번뇌의 세상을 완전히 벗어난 높은 경지’라는 뜻이 깃들은 고요하고 신비한 자연동굴이다. 적멸굴 입구 모습은 큰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있는 형상으로, 굴안은 세상과 단절됨은 물론 욕망 같은 것들이 사라져버린다는 곳이다. 수운 선생이 기도가 끝난 후 수리(독수리)가 되어 날아갔다는 설화를 배경으로 박홍규 화백이 그린 명작이다.
ⓒ 박홍규
도탄에 빠진 세상을 구하고

수운 선생은 을묘천서의 영적 체험을 통해 한울님의 계시를 받고 이전의 자신이 아니라 하늘이 점지한 그 어떤 특별한 사명감을 느끼게 된다. 해가 바뀌어 1856년(33세) 따스한 봄철이 돌아오자 조용한 처소에서 기도에 전념하고 싶었다. 집에서 하던 기도의 한계를 느끼던 차에 때마침 스님 한 분이 찾아와 양산 천성산(千聖山)에 있는 내원암(內院庵)이 기도하기에 좋은 곳이라 소개하였다.

수운 선생은 음식을 준비하고 폐백을 받들어 스님의 안내로 천성산 내원암을 찾아간다. 천성산은 깊은 계곡과 폭포가 많아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산으로 소금강산이라고도 불리던 곳이다. 천성산에 자리하고 있는 내원암 계곡은 맑은 물이 흐르고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으로 비경을 품고 있었다.

내원암은 하늘이 감춘 천혜(天惠)의 사찰로, 수운 선생이 49일 특별기도를 결행하는 장소로 선택된다. 오직 한마음으로 활연관통하는 깨달음이 있기를 바라는 기도수행이다. 그런데 기도를 마치는 날에서 이틀을 채우지 못하고 47일에 이르러 정성을 드리던 중 문득 숙부가 돌아가시어 상복 입은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러니 하늘에 정성을 드리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기도를 중단하고 산에서 내려왔더니, 과연 숙부(80세)가 돌아가셨다. 자신의 예감이 적중하자 이러한 신통력은 바로 수도의 과정에서 오는 것이라 여겨져 기도에 대한 열정을 더욱 강해진다. 이후 마음을 가다듬고 1857년 7월에 49일 입산 기도를 다시 결행한다.

이번의 기도 장소는, 천성산 내원암 부근의 적멸굴(寂滅窟)이었다. 적멸굴은 자연동굴로 내원사 주차장 아래 건너편 계곡을 따라 정상으로 30여 분 올라가면 그곳에 자리하고 있다. 동굴의 입구 높이가 4미터, 안쪽 높이는 1미터, 길이는 6미터 정도이다. 적멸(寂滅)이라는 굴의 이름처럼, '번뇌의 세상을 완전히 벗어난 높은 경지'라는 뜻과 같이 고요하고 신비감마저 주는 곳이다.

적멸굴 입구의 모습은 마치 큰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있는 형상으로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세상과 단절되어, 인간 욕망의 불이 완전히 꺼져버리는 느낌을 준다. 이곳에서 수운 선생은 3층 단을 짓고 지극정성으로 49일 기도에 들어간다.

수운 선생은 일편단심으로 한울님께 기도하며 간절하게, "저에게 세상을 구할 대도를 내려 주시어 도탄(塗炭)에 빠진 세상을 구하고, 모든 세상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열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다.

두 번째 입산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려 혼신의 노력 끝에 49일 기도를 제대로 마친다. 그러나 기도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적의 신통력은 약간 있었으나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는 하늘의 큰 진리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실망한 채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수운 선생의 적멸굴 기도 이야기 중, '경주 최 선생이 49일 기도 끝에 도통하여
수리(독수리)가 되어 동쪽으로 날아갔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이 이야기는 최근까지도 서낭당 아래 사는 사람들과 내원암 스님들에게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수운, 하늘의 진리를 깨닫고자
적멸, 번뇌의 세상을 완전히 벗어난
대도의 경지를 돌파하고자
홀로 굴속에 틀어박혀
마흔아홉 날 신께 기원하였다.
이도 역시 허공의 메아리가 되어
자신의 목소리만 되돌려 돌아오고,
신의 말씀은 귀에 들리지도 않고
마음에 홀연히 깨달음도 없었다.
그러다가, 자신이 신이 되어
신의 말씀이 들려오는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수운 최제우 대신사 출세(탄신) 200주년,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기념, '동학대서사시, 모두가 하늘이었다'는 계속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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