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결과 조작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이재남 2024. 11. 5. 12:51
[이재남 기자]
'민심은 천심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민심은 정확하기도 하지만, 예측할 수 없다는 측면도 있고, 한번 결정한 마음은 태산과 같고, 그 결과가 권력 구조에 엄청난 영향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불법 선거여론 조사의 심각성 |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
선거 때만 되면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 저마다 노력한다. 특히, 알 수 없는 유권자의 마음을 읽고, 부응하기 위해서 공약을 내놓고, 약점을 숨기고, 강점을 홍보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선거 시기가 되면 후보자는 유권자의 마음을 읽을 수만 있다면 섶을 지고 불 속이라도 뛰어들고 싶은 심정이 된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여론조사라고 일컫는 통계 기술이다. 대통령 선거처럼 큰 선거에는 반드시 조사통계가 주역을 맡는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도대체 어떤 원리로 저렇게 정확하게 민심을 읽어내고 그 결과를 딱딱 맞혀낼까.
최근 명태균씨가 통계를 조작해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보도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조사통계란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조작 가능하고, 그것은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는가 고민을 더 깊게 한다.
2년간 대학원에 파견되어 학위 논문을 작성하면서 통계의 핵심 원리가 '표본 추출'과 관계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전체를 조사할 수 없는 만큼, 샘플을 어떻게,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추출하고 처리하는가의 문제가 여론 조사 통계의 핵심이라는 말이다. 통계학 개론서의 맨 첫 페이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경구가 있다.
'된장국이 짠지 싱거운지 알아보기 위해 국 냄비 한 그릇을 다 마셔보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 통계의 샘플링 기법과 된장국 |
ⓒ 이재남 |
이 말인즉, 된장국의 간을 보는 것과 조사 통계의 원리가 매우 흡사하다는 얘기다. 여론이 들끓는 된장국 냄비에서 한 숟가락 국물을 떠내는 것은 샘플링이다. 짜면 된장을 조금 넣고, 싱거우면 물을 넣는다. 문제는 소금(된장)을 넣고 잘 젓지 않으면 전체 된장 국물 맛이 이상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간을 볼 때는 잘 섞이도록 골고루 저어주어야 한다. 잘 젓지 않으면, 샘플에서 얻은 결과가 전체 된장국 맛을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무작위 추출이다.
그런데 문제는 간을 본 사람마다 누구는 짜다, 누구는 싱겁다고 한다. 그래서 표준화된 레시피가 필요하다. 표본추출 방법의 표준화가 요구되는 측면이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표준화된 레시피를 사용했는지를 검증하는 조직이다.
▲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
ⓒ 중앙선거조사심의위원회 |
만약 표준화된 레시피를 사용하면서도, 독특하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은 누구일까. 민심은 천심이라고 하는데, 그 천심을 읽어내는 능력을 갖췄으니, 그야말로 신이 아니고 누구겠는가. 현대 과학은 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멈춘 적이 없다. 이 욕망을 파고들어 신의 노릇을 하고 있는 자가 있으니, 우리는 그를 일컬어 통계 전문 조작꾼이라고 한다. 당선이 간절한 후보자를 파고들어 여론을 조작하는 자들이다.
최근 신개념으로 등장하는, '비공개 대외 유출 여론조사'라는 조작의 기술로, '초기 판세를 잡았다'라는 지지자들의 심리적 안정감 조성이나, 자신에게 유리한 선거 비용 수익 창출을 위한 고비용 선거 전략을 수립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종의 조작 기술이다.
최근 국정감사에 등장한 통계 실행 실무자의 증언에 의하며, 그 방법이 아주 고도의 통계기술도 아닌 것 같다. 그냥 샘플 수치와 조사 값을 임의로 변경하는 방법으로 최종 보고서를 창조하는 정도이다. 실제 공개 여론조사였으면, 레시피 검수 과정에서 걸러졌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어떻게 통계를 조작하는 것인지, 고도의 최신 통계기법이라고 우기는 기술자를 믿어야 하는 것인지, 레시피만 보고 알 수 없는 우리들의 처지가 문제다. 어느 날 또, 누군가 요즘 유행하는 '최신 AI 통계기법'이라고 민심을 왜곡하려 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한눈에 보는 주간 선거여론조사' |
ⓒ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
이런 통계 조작기술을 통해 민의를 왜곡하는 자들에 맞서서 유권자들은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까. 모든 여론조사에 대해 일절 대응하지 않고, 무응답 해야 할까. 아니면 일부러 나이와 지역과 의견을 숨기고 허위 답변을 해야 할까. 이렇게 되면 과소, 과대, 편향된 표본에 의해 더 많은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시민들이 이런 걱정을 하지 말라고, 국가 차원에서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 둔 것이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다.
어떤 측면에서는 다양한 여론조사 오류를 바탕으로, 이를 바로잡고 정교화 하는 과정에서 관련 산업이 발전하기도 한다. 현대 정치는 여론의 정치이고, 소통을 통해 민심을 읽는 것이 제1의 과업이고, 민주주의의 토대다.
이번 일을 계기로 소위 여론조사라는 명목으로 민의를 왜곡하는 기술자들을 방지하고, 제도적으로 이를 보완할 '합리적 여론조사 추진에 관한 법(안)'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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