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안 내려고, 최상위층은 이런 짓까지 한다
[최기원 기자]
▲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단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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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억 서울 아파트 한 채 상속, 세금은?
2015년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2012년 상속자산 규모를 64조 원 규모로 추정한 바 있다. 이것이 자산 증가에 따라 2020년에는 108조 원 규모로 확대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 추세는 얼추 맞는 듯하다. 양경숙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총상속자산은 96조 원에 달한다.
여기에 총 과세된 상속세액은 19.2조 원이다(2023 국세통계연보). 2022년의 총사망자 수는 37만 명이니, 이들은 평균적으로 2.6억 원의 자산을 남겼고 국가는 5000만 원가량의 세금을 거둬갔다. 결과적으로 상속인들은 고인으로부터 2.1억 원의 자산을 물려받았다.
이를 과중한 세금이라고 할 수 있을까? 2.6억 원짜리 복권에 당첨되면 내야 하는 세금은 5700만 원이다. 2.6억 원의 근로소득에 대한 세금은 7500만 원이다. 2주택자가 2002년에 2억 원에 취득한 주택을 2022년 4.6억 원에 매각해 2.6억 원의 양도차익을 획득할 때 발생하는 양도소득세는 5400만 원이다. 피상속인의 자산규모에 따른 횡재적 성격을 가진 상속에 대한 실질적 세금부담액은 같은 소득액에 대한 다른 세금보다도 낮게 형성되는 게 현실이다.
이 정도도 사실 후한 비교다. 상속세는 이미 기본공제가 5억 원에 달하는 세금으로, 극소수 최상위권의 세액 부담을 빼면 전체적인 부담 수준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2022년 슈퍼리치 26명에 대한 14.8조 원의 과세분을 제하면 과세액은 4.4조 원에 그친다. 세 부담이 4분의 1로 급감하는 것이다.
이른바 '강남 아파트 한 채' 물려받는 이들의 상속세 부담은 어떨까. 실제 상속재산이 30억 원 정도로 예측되는 상속세 과세가액이 20~30억 원 구간(평균 22억 원)에서는 평균 과세액이 2.5억 원 수준이다. 실효세율은 12% 남짓이고, 실제 상속자산 대비로는 10%도 되지 않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건 어떤 기준으로도 중소기업의 2022년 법인세 실효세율인 13.4% 보다도 낮다.
'서울 아파트 한 채' 수준으로 가면 세액은 더욱 떨어진다. 서울 아파트 매매 평균가에 거의 근접하는 상속세 과세가액 평균 12억 원 구간의 평균 과세액은 7400만 원으로 실효세율은 6%도 되지 않는다. 이는 2022년 전체 근로소득세 실효세율(결정세액/총급여) 6.5%를 하회하는 데까지 이른다. 이 정도의 상속세 부담이 과연 과도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 국세청. |
ⓒ 김종철 |
이 영역이 어려운 부분이다. 역사적으로 여러 노력 끝에 재벌들의 다종다양한 상속·증여 꼼수들이 밝혀진 바는 있다. 소위 일감몰아주기, 세대생략증여, 공익재단, 조세회피처 활용 등이 알려져 있지만, 이것이 과연 수법의 전부일지는 알 수 없다. 법의 틈새는 늘 존재하고, 과세를 회피하려는 욕망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그 틈과 욕망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이번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제시됐다.
조국혁신당 차규근 의원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4~2023) 기업의 지주회사 설립 및 전환을 이유로 납부가 미뤄진(과세이연) 양도차익은 13.2조 원에 달한다. 재벌들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지주회사 개편에 혜택을 부여한 결과다. 문제는 이 과세가 미뤄진 양도차익이 상속 과정에서 영구히 과세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원래는 조세특례제한법상 과세 연기의 중단 사유에 '상속'이 포함되어 있었다. 즉 납부 연기 혜택을 받은 주식을 상속하게 되면 양도소득세를 내야 했다. 그런데 2010년에 기획재정부가 이 조특법 조항(제38조의 2)을 개정하면서 '상속'이 중단 사유에서 빠지게 되었고 그 결과 과세이연된 주식을 상속받더라도 세금을 내지 않을 길이 열리게 되었다.
실제로 2013년 삼양그룹 지주회사인 삼양홀딩스 지분을 물려받은 상속인들이 양도세 과세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승소했다. 이 판례에 따르면 조양호 회장의 사망에 따라 300억 원의 양도세를 내야 하는 한진그룹 상속인들은 이를 면제받을 수 있게 된다. 상속에 따라 200억 원의 양도소득세가 부과된 LG그룹의 상속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수년 전부터 국회와 시민단체를 통해 문제가 제기된 사항이나, 국세청과 기획재정부는 구멍 난 법률을 손보지 않고 있고, 과세가 미뤄진 양도차익은 해마다 조 단위로 불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조특법 해당 조항이 일몰되지 않는 한, 지주회사를 이용한 꼼수 상속의 길이 열린 셈이다. 차규근 의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납부가 미뤄진 양도차익이 6.6조 원, 세액만 하더라도 1.6조 원에 달했다. 이 돈이 그대로 19개 회사 77명의 주주들의 호주머니에 들어가 이들의 자녀들에게 대대로 상속된다는 의미다. 1인당 210억 원이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시작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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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청문회 과정에서 상속 및 증여 관련 의혹이 불거진 바 있었던, 윤석열 정권에서 고위공직자 후보에 오른 이들이다. 청문회마다 상속재산 미신고, 편법 증여, 상속세 미납 등 각양각색의 의혹이 불거졌다. 과실을 인정하고 사과한 이도 있고, 자료 제출 없이 그냥 눙친 이도 있고, 이른바 '입각세'(논란이 되자 늑장 납부)를 내고 어찌저찌 넘어간 이도 있다.
전 정권이라고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박성진, 홍종학, 박범계, 김영주, 박상기, 최정호 등의 장관 후보자들에게도 비슷한 의혹이 있었다. 이번 22대 총선에서도 일부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부동산 편법 증여는 선거 쟁점이 될 정도였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두 가지다. 하나는 대한민국의 정치인·교수·기업인·법조인·언론인 등등 이른바 사회지도층이라고 불리는 이들 사이에서 상속·증여세 회피가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다. 편법과 우회는 기본이고, 불법도 태연자약하게 저지른다. 청문회에 나올 자신이 선 인사들이 이 정도일진대, 공개적 검증 이면의 상류층의 상속·증여 실태는 어떨까.
또 다른 하나는 국세청의 외면이다. 청문회에서 발견된 불법이 의심되는 대부분의 상황에 대해 국세청이 사전적으로 탐지했다거나 조사와 추징을 한 사실은 발견되지 않는다. 국세청이 통상 탈세가 의심되는 자금 흐름을 확인하고 추적하는 활동을 하고는 있지만, 저 '사회지도층'들에게는 도무지 손이 닿지 않는 모습이다.
정상적인 사회가 이런 현실에서 교훈을 얻는다고 한다면, 최상위층 상속 및 증여 실태의 전수조사와 시스템 개선 방안을 사회적으로 논의하고 집행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양당은 하지 않는다.
이런 현 상속세를 과연 '가정맹어호'라고 일컬을 수 있을까? 실상 종이호랑이만도 못하지 않은가. 12억 원 아파트 한 채를 부모 잘 둔 덕에 물려받아도 근로소득세 실효세율 만큼의 세금조차 내지 않아도 된다. 법의 허점 속에서 재벌과 고위층은 상속과 증여를 수백억 원 단위로 요리조리 회피한다. 심지어 상속세율이 너무 높아서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고픈 부모를 불법으로 내몰고 있기에 세금을 깎아줘야 한다는 주장이 횡행한다. 그 자식들은 수십억 원을 물려받는 상위 1%인데도 말이다.
여기서 상속세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적어도 상속의 현실 파악이 필요하다는 점은 강조하고 싶다. 실제로 최상위층이 어느 정도의 재산을 어떤 방식으로 보유하고 은닉하며 물려주는지 확인하고 알아내는 노력은 기울여야 한다. 상속세 합리화든, 유산취득세 개편이든, 모든 정책의 시작은 정확한 현실 이해에서부터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덮어놓고 진행시키는 5년간 18조 원 상속세 감면이 아닌, '국가 상속·증여 실태 조사위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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