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tage]끔찍했던 美 실화 사건을 소재로 한 뮤지컬 두 편
아버지 유산 새엄마에 상속 갈등
이웃 아이 죽인 청년 '쓰릴 미'
"나는 초인이다" 놀이하듯 범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미국 사회를 뒤흔든 끔찍한 두 살인 사건을 소재로 제작된 뮤지컬 두 편이 동시에 공연 중이어서 눈길을 끈다. 오는 12월1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하는 ‘리지’와 같은 날까지 대학로의 예스24스테이지 2관에서 공연하는 ‘쓰릴 미’다.
리지는 1892년 매사추세츠주 폴리버에서 발생한 리지 보든 사건을, 쓰릴 미는 정확히 100년 전인 1924년 시카고에서 발생한 레오폴드-로엡 사건을 소재로 한다. 리지 보든 사건은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1821~1881)가 친부 살해를 소재로 삼은 소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떠올리게 한다.
폴리버의 부유한 노부부 앤드루 보든과 그의 두 번째 아내 애비 보든이 자택에서 도끼로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시신을 처음 발견한 앤드루의 둘째 딸 리지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리지는 당시 32살이었다. 사건 당시 9살 위인 언니 엠마는 집에 없었다. 리지와 엠마는 앤드루가 사별한 첫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었다. 앤드루는 유산을 두 번째 부인 애비에게 상속하려 했고 이에 두 딸과 갈등을 겪었다.
여러 정황상 리지가 아버지 앤드루를 살해할 동기는 충분했다. 하지만 결정적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법정에서 리지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리지 보든 사건이 발생할 당시 매사추세츠주에서는 여전히 청교도적 윤리 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리지는 비윤리적인 친부 살해 의혹으로 미국 전체를 뜨겁게 달궜다. 일간지 보스턴글로브는 1892년 9월2일자에서 1면 오른쪽 절반과 6·7면까지 모두 세 개 면을 리지 사건 심리 기사로 채웠다.
레오폴드-로엡 사건은 명문 시카고대의 학생이었던 네이슨 레오폴드와 리처드 로엡이 이웃에 살던 어린아이를 유괴해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다. 레오폴드는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의 초인론에 경도됐다. 니체의 초인은 높은 이상을 추구하며 끝없이 자신을 뛰어넘으려 노력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레오폴드는 초인의 의미를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정도로 인식한 듯 보인다.
극 중 ‘그’는 스스로 초인이라 믿으며 자신은 뛰어난 존재이기 때문에 어떠한 행동에도 제약이 없을 것이라 믿는다. ‘그’는 놀이하듯 범죄를 저지르고 초인인 자신은 절대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에게 집착하는 ‘나’는 ‘그’의 행동이 잘못임을 알면서도 ‘그’와 함께 하기 위해 ‘그’의 범죄에 가담한다. 방화, 도둑질 등 범죄의 위험 정도가 높아질수록 ‘그’는 더 큰 쾌감을 느끼고 급기야 살인에까지 이른다.
끔찍한 사건을 다룬 극이지만 두 극 모두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쓰릴 미는 2007년 국내에서 초연했으며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장기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초연 이후 공연되지 않은 연도가 5개 년에 불과할 정도로 거의 매년 공연된다.
‘나’와 ‘그’, 남자 배우 두 명만이 무대에 올라 밀도 높은 심리 갈등을 보여주면서 여성 뮤지컬 관객들의 끊임없는 호응을 끌어내고 있다. 극 중 끊이지 않는 라이브 피아노 연주도 극의 매력을 더하는 요소다. 쓰릴 미에서는 피아니스트가 무대 중앙에서 라이브로 피아노 연주를 들려준다. 피아니스트는 회전식 무대의 전환에 따라 전면에 등장할 때도 있고, 때로 뒷면에 숨어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만 들려주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리지는 2020년 초연 이후 마니아 관객을 만들어내며 2년 주기로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리지는 쓰릴 미와 반대로 여배우만 네 명 무대에 오른다. 주인공 리지와 언니 엠마, 리지의 친구 앨리스 러셀, 보든가(家)의 가정부 브리짓 설리번만 출연한다.
리지는 쓰릴 미의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과 대조적으로 전자기타의 강렬한 사운드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리지는 보기 드문 록뮤지컬이다. 아버지의 권위에 반항하는 리지를 표현하기 위해 록음악을 택했다. 네 명의 여배우는 강렬한 록음악에 맞춰 공연 내내 폭발할 듯한 고음을 선사하고 관객은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출되는 듯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 공연이 끝난 뒤 커튼콜에서는 배우들이 다시 극 중 넘버를 부르고 관객들은 모두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며 적극 호응하는데 록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장관이 펼쳐진다.
아일랜드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는 극이 끝난 뒤 배우들이 무대 중앙에 신발 한 켤레를 덩그러니 남겨놓고 사라지는데, 리지에서 배우들은 커튼콜까지 마친 뒤 피 묻은 도끼를 무대 한가운데 남겨두고 사라진다. 관객들은 ‘고도를 기다리며’의 신발을 사진찍듯, 리지의 도끼를 찍으며 비로소 흥분을 가라앉힌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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