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보다 입맛 좋았다…'새로' 대박낸 전자 혀의 비밀
미식의 세계도 접수하는 ‘전자혀’
■ 경제+
「 질 좋은 재료를 확보해 조리법을 택하고 ‘이븐’하게 익힌 후 미감을 살려 접시에 담아낸다. 전 과정의 창의성과 신속성은 셰프의 필수 덕목. 미식의 세계는 이토록 섬세하고 까다로운 영역이다. 식재료는 또 어떤가. 소재도 다양할뿐더러 상호작용 경우의 수가 무궁무진. 제아무리 ‘만능’이라는 인공지능(AI)도 그간 미식 영역에 있어서만큼은 발전 속도가 더뎠다. 그런데 최근 임계점을 넘어선 변화가 뚜렷해졌다. 오랜 기간 쌓은 데이터와 학습 능력을 바탕으로 종자 선별부터 품질 관리, 레시피 개발 등 식음료 비즈니스 곳곳에 AI 셰프가 침투하고 있다. AI 셰프는 인간의 ‘손맛’을 능가할 수 있을까. 절대미각 ‘전자혀’는 사람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
식혜의 은은한 달콤함을 살린 ‘식혜맛 떡볶이’와 쌀떡에 고구마의 부드러운 단맛을 더한 ‘고구마 떡볶이’, 소비자 선호와 트렌드를 반영해 AI가 개발한 레시피다. 간편식 전문기업 프레시지는 올해 AI 연구개발(R&D)팀을 만들었다. AI 기술로 시중에 있는 600만 개 이상 제품을 분석한 끝에 지난 7월 떡복이 밀키트 5종을 출시했다.
배스킨라빈스는 올해 AI 신상품 개발 시스템을 만들어 매달 서울 강남 플래그십스토어 ‘워크샵 바이 배스킨라빈스’에서 신제품을 내놓고 있다. 약 1500가지 맛과 소비자 구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지난 3월 과일과 티를 키워드로 한 ‘오렌지 얼그레이’ 맛 아이스크림을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버거브랜드 쉐이크쉑은 지난해 5월 비건 초콜릿 아이스크림과 셰이크를 새로 만들었다. 칠레의 푸드테크 스타트업 낫코가 개발한 AI 셰프 주세페와 협업을 통해서다. AI가 조합한 식물성 재료로 만든 비건 우유를 사용한 제품을 미국 260개 지점에서 판매한다.
수십만·수백만 개 식재료를 조합해 객관적으로 ‘어떤 맛’이 날지 예측 가능하다는 점은 AI 셰프의 장점이다. 방대한 데이터가 힘이다. AI 셰프 주세페는 30만 개 이상 식물성 재료 데이터를 바탕으로 동물성 제품과 비슷한 맛을 내는 조리 방법을 찾아낸다.
학계에서는 약 20년 전부터 인간 혀를 모방한 전자혀 연구를 이어왔다. 미뢰 대신 각기 다른 맛을 감지하는 센서들이 특정 맛을 전기 신호로 변환해 해석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장경인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로봇·기계전자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전자혀에 딥러닝 알고리즘을 도입했다. 여러 종류 와인을 전자혀로 맛보게 한 뒤 수집된 맛 신호 데이터를 알고리즘에 학습시켰다. 전자혀는 맛본 와인이 어떤 와인인지 95% 이상 확률로 구분하는 데 성공했다.
전자혀 기술은 AI와 접목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달 9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의 사프타시 다스 재료과학공학부 교수팀은 액체의 미묘한 차이를 구별하는 전자혀를 개발했다고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액체에 포함된 화학 이온 성분을 감지하는 전자혀 센서와 함께 인간 뇌의 미각피질이 맛을 느끼는 방식을 모방한 인공 신경망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센서를 통해 맛을 학습한 AI 알고리즘은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차이를 구분해 냈다.
전자혀는 어느 정도 상용화 단계에 접어든 기술이다. IBM은 2019년 액체 맛을 분석하는 전자혀 ‘하이퍼테이스트’를 만들어 글로벌 식품회사 맥코믹과 조미료 등을 함께 개발했다. 덴마크 맥주회사 칼스버그도 맥주의 효모와 발효 성분을 토대로 맥주 맛 차이를 감지할 수 있는 센서를 개발했다. 이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새로운 맥주를 개발하고 품질 관리 시스템을 개선하는 ‘맥주 지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롯데중앙연구소는 주류나 음료 시제품 맛을 전자혀로 측정해 분석하는 작업을 거친다. 어떤 맛을 내는지 정확히 분석하고 기존 제품과 차별화하기 위해서다. 롯데칠성음료의 새로·별빛청하 등도 이 과정을 거쳐 나온 주류 제품이다.
AI 셰프는 사람 셰프에게 최적의 요리법을 먼저 제안하기도 한다. 식재료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AI의 사물 인식 기능이 그만큼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타가 지난달 공개한 증강현실(AR) 기술 기반 안경 ‘오라이언’은 냉장고에 저장된 식재료 재고를 바탕으로 맞춤형 조리법을 제안한다. 오라이언에 탑재된 자체 AI 비서 ‘메타 AI’가 식재료를 인식하는데, 사용자가 파인애플을 바라보며 “어떤 음식을 만들 수 있어?” 물으면 스무디 레시피를 제안하는 식이다.
AI 셰프의 가장 큰 강점은 빠르다는 것. 배스킨라빈스 상품기획실 관계자는 “기존 상품개발 시스템에서 소비자 취향 분석을 위한 시장 조사, 트렌드 분석, 신규 아이템 발굴, 콘셉트 설정, 소비자 인터뷰(FGI) 등에 투입됐던 시간을 AI가 단축했다”고 말했다. 프레시지 관계자는 “과거에는 제품 레시피 개발에만 평균 20일이 소요됐지만, AI 시스템 도입 이후 최대 2.8일 이내로 시간이 단축됐다”고 전했다.
요리는 아이디어 싸움이고, AI 셰프엔 선입견이 없다. 인간이 상상하지 못할 식품 재료·영양 요소 간 조합을 만들어낸다. 낫코는 2017년 AI 레시피에 기반한 마요네즈 ‘낫마요’를 출시했다. 계란 노른자로 만드는 일반적인 마요네즈와 달리 루핀(콩과 식물 중 하나)을 사용했다. 또 파인애플과 양배추즙을 섞어 우유 맛을 냈다. ‘낫밀크’는 질감을 구현하기 위해 코코넛을 활용했고, 영양 성분을 충족하기 위해 완두콩(단백질), 치커리(섬유질) 등을 추가했다. ‘낫치킨’은 복숭아 분말, 대나무 섬유, 콩 등 인간이 예상하기 어려운 식물성 재료만을 사용해 치킨의 맛과 질감을 구현했다.
AI 셰프는 재료 관리를 넘어 좋은 식재료 ‘만들기’에도 능력을 발휘한다.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의 안정현 농식품 투자팀 부장은 “AI는 대규모 데이터를 신속하게 분석해 작물의 좋은 유전적 특징을 선별한다. 이를 토대로 새로운 품종을 더 빠르게 개발한다”고 말했다.
하드웨어와 시너지도 낸다. 중국 베이징시는 지난달 AI 요리 로봇에 식당을 경영할 수 있는 요식업 허가증을 최초로 발급했다. 중국 스타트업 엔코스마트가 개발한 다기능 요리 로봇 ‘라바’가 주인공이다. 한 가지 작업을 반복적으로 하는 기존 요리 로봇과 달리, AI를 탑재한 라바는 다양한 요리를 학습해 조리할 수 있다.
하지만 눈대중·손대중으로 버무려 만드는 인간 셰프의 직관적인 감각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직접 요리하고 맛보며 자연스럽게 습득한 경험치를 AI 셰프가 흉내 내기엔 아직 무리라는 것. 프레시지 관계자는 “AI를 활용하면서 상품 개발 과정에 예상보다 더 많은 정성적 판단이 개입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며 “사람의 직관과 데이터를 조화롭게 활용하는 방안을 더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람 혀는 정교하다. 특정 성분이 다른 성분 맛을 더 강하게 느끼게 하거나 덜 느끼게 하는 여러 복합적인 작용을 받아들인다. 이 복잡한 맛의 상호작용을 전자혀는 완벽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장경인 교수는 “다양한 맛 요소를 동시에 학습하고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전자혀가 사람 혀처럼 복잡한 맛을 다차원적으로 감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 연구 목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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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지·어환희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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