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그와 그녀의 ‘기억의 한계’

김나래 2024. 11. 5.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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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기억력이 좋은 편인가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꽤 좋은 편이라고 자부하곤 했다.

그러다 최근 종종 안줏거리 삼아 얘기하던 10년 전 기억에 치명적 오류가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 생겼다.

검찰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김 여사는 10여년 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녹취를 보여줘도 '제가 이런 얘기 했어요?'라고 했다. 기억에 한계가 있다는 걸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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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래 사회부장


“당신은 기억력이 좋은 편인가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꽤 좋은 편이라고 자부하곤 했다. 그러다 최근 종종 안줏거리 삼아 얘기하던 10년 전 기억에 치명적 오류가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 생겼다. 불현듯 찾아온 불안감에 과거 기록을 찾아본 뒤 내 기억이 잘못됐음을 깨닫는 순간 밀려든 낭패감이란. 시시콜콜한 에피소드에 불과했지만 자칫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셈이 될까 싶어 앞서 말한 이들에게 마치 정정보도라도 하듯, 내 기억이 틀렸다고 설명한 뒤에야 마음이 놓였다.

인간은 ‘기억의 한계’를 안고 살아간다. 철석같이 믿고 있던 기억이 실체와 동떨어졌음을 확인하고 당황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때로 어떤 기억은 사건 발생 당시 기억인지, 혹 그 사건을 나중에 기억하는 과정에서 계속 또 다른 이미지나 설명이 덧입혀진 것인지 혼란을 주기도 한다. 만약 사적 영역에서 이런 문제가 생기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라고, 그 정도 착오는 할 수 있다고 양해를 구할 수도, 또 상대로부터 이해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억이 회사 업무나 공적 영역에서 오류를 일으켰을 땐 상황이 180도 달라진다.

아마도 가장 양해를 구하기 어려운 경우 중 하나가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을 때일 것이다. 지난달 검찰은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시세조종 가담 의혹 사건 수사 결과를 브리핑했다. 4시간 동안 불기소 처분 이유를 소상히 밝히는 과정에서 김 여사의 ‘기억의 한계’를 언급하는 발언이 나왔다.

2010년 11월 1일 주가조작 일당이 문자를 주고받은 뒤 7초 만에 김 여사의 대신증권 계좌에서 주식 8만주가 팔린 대목이었다. 이른바 ‘7초 매도’로 불렸던 거래로, 앞서 법원이 통정매매로 인정했던 것이다. 김 여사는 이 거래를 자신이 직접 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검찰 조사 땐 기억이 안 난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김 여사는 10여년 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녹취를 보여줘도 ‘제가 이런 얘기 했어요?’라고 했다. 기억에 한계가 있다는 걸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비슷한 상황에서 누군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면 계속 캐묻거나, 책임을 회피하려 드냐며 질타가 쏟아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날 검찰 브리핑은 검찰이 언제 이렇게나 순순히 ‘10년 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며 양해해준 적 있었나 싶게 순하디순한 맛이었다.

아이러니하지만, 요즘 ‘기억의 한계’를 호소하는 사람이 또 있다.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돼 오는 15일 1심 선고를 앞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이 대표가 과거 방송대담 중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성남시장 시절 알았으면서도 몰랐다고 말한 것이 허위 사실 공표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다.

지난 9월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4부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이 대표는 2015년 1월 호주 출장 당시 김 전 처장과 골프와 낚시를 한 건 맞지만, 대장동 사업을 담당한 그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주장을 이어갔다. 이 대표는 “객관적으로 접촉은 했던 것 같지만 사람의 기억력은 한계가 있다”며 “사람이 컴퓨터가 아닌데 접촉했다고 해서 전부 기억하는 것도 아니고, 입력됐더라도 영구적으로 확고히 유지되지 않는 게 정상”이라고 항변했다.

비록 1심이지만 15일 재판 결과에 따라 야당 대표이자 유력 대선 주자의 차기 피선거권 박탈 여부가 결정된다. 과연 이 대표 ‘기억의 한계’는 어떤 판단을 받을까. 앞서 김 여사에 대한 검찰의 판단은 결과적으로 임기 반환점을 돈 윤석열정부에 적잖은 부담으로 돌아왔다. 법원의 결정 역시 어느 쪽이든 후폭풍이 만만찮을 듯하다.

김나래 사회부장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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