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현의 별과 우주] 인류 과학·문화의 융합 작품 ‘보이저 1호’가 다시 깨어났다
한동안 끊겼던 통신 최근 다시 재개
지구 정보 담은 ‘골든 레코드’ 부착
한 시대의 가치관 남겼다는 데 의의
보이저 1호와의 통신에 다시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보이저 1호는 1977년 9월 5일에 발사된 우주탐사선이다. 주로 태양계 외곽에 있는 거대기체행성을 탐사하는 목적으로 발사됐다. 보이저 1호는 목성과 토성에 가까이 가서 수많은 사진과 정보를 지구로 전송하고 지금은 태양계 외곽으로 날아가고 있다. 현재 지구로부터 빛의 속도로 23시간 정도 날아가야 만날 수 있는 거리에서 계속 태양계의 끝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보이저 1호는 인류가 만든 인공적인 구조물 중 지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보이저 1호와 쌍둥이 탐사선인 보이저 2호는 1977년 8월 20일에 발사됐다. 보이저 2호가 보이저 1호에 앞서 먼저 발사된 이유는 이들 탐사선들의 여정 때문이었다. 보이저 1호가 목성과 토성을 관측한 후 태양계 외곽을 향해 우주비행을 하도록 설계됐다면 보이저 2호는 목성, 토성, 천왕성 그리고 해왕성을 모두 관측하고 태양계의 끝자락을 향해 나아가도록 준비돼 있었다. 그래서 먼저 출발한 보이저 2호보다 나중에 출발한 보이저 1호가 지구로부터 더 먼 거리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보이저 1호와 2호의 가장 큰 업적이라면 거대기체행성과 그 위성들의 관측이라고 하겠다. 목성과 토성을 가까이 접근해 관측하면서 이들 행성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이와 함께 이들 행성 주위를 돌고 있는 많은 위성을 직접 관측하면서 이들 위성에 대한 정보도 많이 획득하게 됐다. 태양계 내 행성과 위성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보이저 2호가 관측한 천왕성과 해왕성 관측 자료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들 행성을 관측한 거의 유일한 고급 자료로 남아 있다. 이들 자료를 바탕으로 태양계 형성 이론을 한걸음 더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었다. 천왕성과 해왕성에서 고리를 찾아 찍은 것도 보이저 2호의 쾌거 중 하나였다.
보이저 1호와 2호는 태양계 외곽 거대기체행성계 관측이라는 첫 임무를 마친 뒤에는 태양계의 끝자락을 향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1973년에 발사된 파이어니어 10호와 11호도 각기 다른 방향으로 태양계의 끝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명왕성을 관측했던 뉴호라이즌스호도 태양계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들 5대의 우주탐사선이 태양계 끝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들 탐사선이 보내오는 정보를 바탕으로 태양계 바깥쪽의 모습과 물리적 환경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들 중 현재 지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을 날아가고 있는 우주탐사선이 보이저 1호다. 파이어니어 10호와 11호는 이미 통신이 끊긴 상태다. 한동안 통신이 끊겼던 보이저 2호는 지난해 8월 통신이 복구됐다. 뉴호라이즌스호는 여전히 신호를 보내오고 있지만 아직은 지구로부터 상대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지구를 향해야 할 안테나가 조금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을 발견하고 교정한 결과였다.
한동안 통신이 끊겼던 보이저 1호와도 통신이 재개됐다는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보이저 1호가 자체적으로 비상 모드로 들어가면서 송신 장비의 전원을 차단하면서 한동안 지구와의 교신이 중단됐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는 그동안 사용하지 않고 있던 보이저 1호의 다른 송신 장비가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보이저 1호가 비상 모드로 들어가면서 상대적으로 전력 사용량이 적은 다른 송신 장비를 쓰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했다. 이번에 이 송신 장비를 사용해 보이저 1호와의 교신에 다시 성공한 것이다. 이 통신 장비는 1981년에 사용한 이후 43년 만에 처음 사용한 것이다. 보이저 2호에 이어 교신이 한동안 끊겼던 보이저 1호와의 통신에 성공하면서 태양계 끝자락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우주탐사선들로부터 계속 정보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보이저 1호와 2호에는 ‘보이저 골든 레코드’가 부착돼 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제안해 지구를 나타내는 여러 정보를 3장의 레코드에 담은 것이다. 보이저 골든 레코드는 금속 합금으로 몇 억년을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보이저 골든 레코드에는 지구를 대표하는 언어로 인사를 하는 음성 녹음 정보, 지구를 대표하는 그림, 소리, 음악 등이 포함돼 있다. 당시 지구인들의 문화를 담은 일종의 타임캡슐이라고 하겠다. ‘스타맨’이라는 영화에서는 외계인이 보이저 2호를 발견하고 보이저 골든 레코드에 담긴 내용을 파악한 후 지구로 찾아오는 장면이 있다. 보이저호에 담긴 보이저 골든 레코드가 외계인에게 발견될 확률은 거의 없다. 하지만 한 시대의 가치관이 포함된 표현물을 남겼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과학적 우주탐사 프로젝트를 인류의 문화 활동으로 연결했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1990년 2월 보이저 1호는 해왕성 궤도를 통과하고 있었다. 세이건은 보이저 1호가 지구로부터 더 멀어지기 전에 지구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1990년 2월 14일 보이저 1호는 카메라를 지구로 돌려 사진을 찍었다. 내친김에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 사진도 남겼다. 태양계를 벗어나 우주 공간으로 날아갈 보이저 1호가 남긴 태양계 가족이다.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 모습은 한 픽셀도 되지 않는 얼룩이었다.
세이건은 이 점으로 찍힌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이름지었다. 지구로부터 가장 먼 곳에서 찍은 이 한 장의 사진. 당시 지구에서는 복잡한 여러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분주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픽셀도 되지 않는 얼룩으로 남은 창백한 푸른 점으로서의 지구는 그냥 작은 얼룩으로 거기에 무심하게 찍혀 있을 뿐이었다. 보이저 1호는 단순한 탐사선이 아니다. 인류의 과학과 문화를 융합한 작품이다. 그런 보이저 1호와 다시 통신을 할 수 있게 됐다니 기쁜 마음이 앞선다. 웰컴 보이저 1호.
과학콘텐츠그룹 갈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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