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 독트린'에 놀란 박정희의 자주국방, 방산 강국 결실로[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지구촌 러브콜 받는 'K방산 산실' 국방과학연구소
역사를 돌이켜 보면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1950년 6·25전쟁 당시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제공한 소련제 T-34 전차에 한국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폴란드는 소련 주도로 1955년 결성(1991년 해체)한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핵심 회원국이었다. 그런 폴란드가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안보 위협이 커지자 한국산 전차를 대량으로 수입하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이자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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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아시아에서 발 빼겠다 선언
박정희, 안보 위기 돌파 위해 결단
열악한 환경서 무기 국산화 시동
군사력 5위, 방산수출 10위로 도약
다시 신냉전 파고 몰려오는 지금
인재 모아 방산 역량 대폭 강화를
」
지난 6월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동맹 조약' 복원을 계기로 북한이 최근 1만여명의 용병을 러시아에 보내면서 우크라이나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추가로 안보 위협이 가중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5위 군사 강국인 한국에 무기 지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한국 방산 기업들의 주가는 우상향 흐름이다.
닉슨 이어 트럼프도 고립주의 노선
K드라마·K팝·K무비에 이어 K뷰티·K푸드 등 K컬처가 지구촌에서 열풍을 일으키는 가운데 K방산도 당당히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2020년 30억 달러 수준이던 K방산 수출액은 올해 사상 처음 200억 달러(약 27조 6000억원)를 돌파할 전망이다. 폭풍 성장이다. 자주국방의 보루인 K방산은 동맹국인 미국이 5일 치르는 대선의 불확실성 와중에도 한국의 안보를 튼튼히 지켜주면서 경제에도 큰 보탬이 되고 있다.
그런데 지금 활짝 꽃을 피우는 K방산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1969년 7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괌 독트린(닉슨 독트린)' 선언은 청천벽력이었다. 미국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안보를 스스로 책임지라고 아시아 국가들을 압박한 미국의 기습적 선언은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및 고립주의 노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닉슨 독트린은 특히 북한의 위협뿐 아니라 공산 진영과 대립하던 한국엔 날벼락 같은 위기였다. 안보에 몰려올 거대한 먹구름을 간파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고뇌하고 결단했다. 대통령령 5267호에 따라 1970년 8월 6일 자주국방과 방위산업 육성을 위해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출범시켰다. 지금은 석·박사 2418명 등 모두 3213명이 일하지만 당시는 겨우 45명으로 시작했다.
1차 목표는 총포·탄약·통신기·차량 등 기본 병기의 국산화였다. 다음 단계로 전차·항공기·유도탄·함정 등 정밀 무기의 국산화 능력 확보에 나섰다. 1971년 11월 서울 동대문구 홍릉에 연구동 건물을 완성하기도 전에 기본 병기를 신속히 개발하라는 '번개 사업' 지시가 하달됐다. 그만큼 자주국방은 긴박하게 추진됐다.
1979년 10·26의 비극으로 박 대통령이 갑자기 서거하면서 ADD는 정원의 3분의 1이 떠날 정도로 침체기를 맞았다. 하지만 이후 성장기(1980~1989년)와 도약기(1990~1999년)를 거쳐 2000년대 들어 방산 선진국 대열로 빠르게 진입했다.
무기 개발 중에 26명 안타깝게 희생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무기 개발 및 시험 과정에서 ADD 연구원과 방산업체 직원들의 안타까운 희생이 적지 않았다.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서해도서에 배치된 우리 군은 K9 자주포(自走砲)로 신속히 대응해 북측에 큰 타격을 줬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생산하는 K9 자주포는 현대로템의 K2 전차와 함께 K방산의 대표적 명품 무기다.
1997년 12월 K9 자주포 시제품 발사 시험 중에 화재가 발생했다. 긴급 상황에서 가장 뒤에 탈출한 당시 삼성테크윈 소속 정 모 대리는 몸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당시 34세였던 그는 아내와 어린 아들을 남겨 놓고 한 달 뒤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2009년에는 K9 자주포 개발의 주역이던 김동수 박사가 과로로 순직했다. 장남(김상만 박사)이 ADD에서 아버지의 애국심을 이어가고 있다.
2019년에는 국산 탄도미사일 요격 시스템 개발을 위한 실험 중에 발생한 폭발 사고로 기태석(당시 30세) 선임연구원이 숨졌다. 국내 최초 초음속 순항미사일 기술 개발에 공헌한 그는 당시 외동딸의 두 돌 생일잔치를 앞두고 있었다.
지금까지 무려 26명의 연구원이 각종 무기 개발에 헌신하다 세상을 떠났다. 고귀한 희생이다.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위치한 국방과학연구소에 갔더니 국방과학관에 무궁화 동판이 새겨져 있었다. "국방과학연구소를 위해 헌신하신 당신을 우리는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퇴직 연구원이 지난해 기증한 박정희 대통령 흉상도 우뚝 서 있었다. '100가지 중에 하나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거기에 대해서 그야말로 만전을 기하는 것, 이것이 국방이다'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1974년 박정희 대통령의 발언이 지금도 쩌렁쩌렁 울리는 듯했다.
땀과 눈물로 씨앗 뿌려 거둔 값진 열매
국방과학연구소를 이끄는 이건완(63) 소장을 인터뷰했다. 공사 32기로 군문에 들어가 F-16 전투기 조종사로 활약했고 공군 중장으로 전역했다. 공군작전사령관·공군참모차장·공군사관학교장 등을 역임한 '전력통'으로 손꼽힌다.
-제25대 ADD 소장으로 취임한 지 6개월이 지났다.
"ADD는 자주국방 완수를 위해 창립된 이후 지난 55년간 370여 건의 무기체계를 개발해 군사력 강화에 크게 기여했다. 소총·박격포 등 기본 병기 국산화부터 시작해 이제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고위력 미사일, 고체 추진 우주 발사체, 군사 정찰위성, 천궁-II, L-SAM 등 첨단 무기 체계를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나라로 성장했다. 국산 무기 체계의 우수성은 K방산 열풍과 수출 확대로 이어지는 밑거름이 됐다. 이는 우리 군과 방산업체, ADD의 유기적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ADD는 심각한 안보 상황에서 출범했다.
"당시 국가 안보가 그야말로 풍전등화였다. 1968년엔 청와대를 노린 1·21 사태,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울진·삼척 지구 무장공비 침투 사건 등 북한의 도발이 잇따랐다. 1969년 닉슨 독트린 발표 이후 주한 미군 1개 사단이 철수하며 언제라도 전쟁이 발발할 수 있는 위기를 맞아 나라를 지킬 무기를 만들어야 했다. 당시 우리 손으로 소총 한 자루도 만들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기적 같은 K방산의 오늘은 어떻게 가능했나.
"도전 DNA를 가진 모두가 K방산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단 한 분을 꼽으라면 자주국방의 씨앗을 뿌린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미군이 철수하고 홀로 북한에 맞서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자주국방을 실현하기 위해 방위산업의 토대를 마련했다.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 강력한 추진력과 리더십으로 ADD를 설립하고 국내·외 인재를 모았다. 땀과 눈물로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열매를 거둘 수 없다. 오늘날의 K방산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래를 개척했기에 맺을 수 있었던 열매다."
국산 유도무기 천궁-II에 큰 자부심
-미국 등 우방국 무기 수입에 의존하던 한국이 국산화에 성공하고 수출로 큰 국익을 창출하고 있다.
"K9 자주포와 K2 전차 등과 함께 수출 효자 무기인 '한국형 패트리엇' 천궁-II(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에 가장 큰 자부심을 느낀다.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KAMD)의 중고도를 담당하는 천궁-II는 우리가 독자 개발한 기술집약적 무기체계다. (LIG넥스원과 한화시스템·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개발에 함께 참여했다.) 이런 무기체계 개발 능력을 갖춘 나라는 극소수다. 2.75인치 유도 로켓 비궁은 지난 7월 미국 FCT(해외비교시험)를 통과해 사상 첫 미국 수출이 기대된다."
-K방산이 앞으로 더 도약하려면.
"우크라이나와 중동 전쟁에서 보듯 전통적·비전통적 안보 위협이 가중되고 있다. 언제 어디서 전쟁이 날지 예측이 어려운 신냉전 상황에서 자주국방 역량 강화를 위한 국방과학기술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에 대비하려면 우수인력 확보가 가장 절실하다. 두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첫째가 보상 체계 개선이다. 민간기업보다 낮은 임금과 처우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둘째는 '나라 지키는 연구소'라는 사명감을 심어주는 일이다. 정원이 3200명을 넘는데 훈장은 1년에 2~3명에게만 주어진다. 방산 수출의 화려한 성과 뒤에서 묵묵히 연구·개발에 매진한 공로를 인정하고 예우해 사명감을 고취해줘야 한다. 우리 국민의 응원은 ADD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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