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파리와 깨진 유리창의 법칙

2024. 11. 5.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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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식 수필가

가을 전어를 찾아간 식당에는 구운 갈치가 대신 나왔다. 올해 바닷물의 수온이 높아 전어가 잡히지 않은 탓이라고 한다. 흰 종이가 깔린 식탁 위에는 파리 한 마리가 앞발을 비비고 있었다. 무심결에 파리를 보고 있는데 동행했던 친구가 식당 주인에게 농담조로 “파리가 같이 먹자고 하네요”라고 말한다. 그 친구는 식당에 가면 뭔가 칭찬도, 지적도 하는데 이번에는 파리를 지적한 거다.

서둘러서 파리채를 갖고 온 주인에게 친구가 또다시 농을 걸었다. “파리가 앞발을 비비는 건 먹기 전에 양해를 구하는 건가요?”

파리는 늘 다리를 비빈다. 왜 그럴까? 파리의 몸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털이 나 있어 이물질이 잘 달라붙기 때문이다. 파리는 입보다 다리로 맛을 느끼는데 이물질이 묻으면 맛을 느끼지 못한다. 파리는 식(食)이라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다리를 비벼서 이물질을 털어내야 한다.

「 어떤 문제든 내부 결함에서 출발
작은 허점 방치하면 치명상 돼
아첨문화 뿌리뽑아야 조직 살아

사진제공=국립생물자원관

“요즘 자영업이 어렵다는데 그냥 넘어가지…”라고 내가 말하자 친구는 정색을 하고 말한다. “무슨 소리! 내가 자영업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거야.” 그러면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

“어느 심리학자가 흥미로운 실험을 했지. 치안이 허술한 골목에 차량 두 대를 방치하였는데 한 대는 보닛만 열어두고 다른 한 대는 보닛도 열고 창문을 조금 깬 상태였지. 일주일 뒤 보닛만 열어 둔 차는 어떤 변화도 없었는데 창문이 깨진 차에는 배터리와 타이어도 안 보이고 쓰레기 투기까지 했다네. 창문만 조금 더 파손시켜 놓았는데 결과는 컸지. 이런 현상을 ‘깨진 유리장의 법칙’이라고 부른다는군. 이처럼 사람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예민해. 예를 들어 손님이 식당에 갔는데 파리가 날아다니면 화장실은 물론 주방도 더러울 것으로 짐작하지. ‘거기 화장실은 깨끗하냐?’라고 묻는 사람들도 꼭 있잖아. 주인이 손님 줄어든 원인을 빨리 감지하고 파리가 꾀는 원인을 제거하면 매출을 회복할 수 있지만 방치하면 식당은 머지않아 문을 닫아야 하지.”

맞는 말이다. 중국 속담에도 ‘파리는 매끈한 계란 위에는 앉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어떤 문제도 내부결함에서 출발한다. 시작은 파리지만 그 파장은 한 도시의 운명을 쥐락펴락할 만큼 크다. ‘깨진 유리장의 법칙’은 작은 허점이나 실수를 시정하지 않으면 곧 치명적인 재앙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한 나라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데에도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적용될 수 있다. 그동안 세계적 호평을 받았던 한류도 작은 잘못으로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지금은 SNS 세상이라 사소한 잘못도 삽시간에 퍼진다. 백번을 잘했어도 한 번만 잘못하면 허사가 된다. 100-1=0이 될 수 있다. 반대로 100+1=101+α가 될 수도 있다. 여기서 1은 손님에 대한 배려와 청결한 환경이다.

1973년 6월 9일 오전 7시30분 흘러나오는 첫 쇳물을 보고 당시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과 직원들이 만세를 부르고 있다. 중앙포토

청결 이야기가 나오면 유독 청결을 강조했던 포스코 박태준 회장의 일화를 빼놓을 수 없다. 박 회장은 1973년 포스코가 제철공장 건설을 끝내고 제품생산에 들어가자마자 불량률을 0(零)으로 만들자는 ‘ZD(Zero Defect)운동’을 펼쳤다. 초창기 생산제품의 불량률이 회사의 미래를 결정해서다. 철강업이 특히 그러하다. 그는 이 운동과 함께 현장 화장실의 청결을 일류호텔 수준으로 할 것을 지시했다. 박회장은 불량이 없는 제품은 깨끗한 몸과 마음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불량률이 낮은 포스코의 표준화된 제품은 시장에 나오자마자 제값을 받을 수 있었다. 그의 청결 철학은 경영 전반에 적용되어 불합리한 관행과 조직의 부패를 일소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박 회장은 공장건설에 앞서 직원들의 주택단지와 자녀교육시설 건설에도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그래야 우수 인재가 포항까지 내려올 거로 생각했다.

조직의 지도자는 우선 청결을 해치고 부패를 일으키는 파리 같은 존재가 어디서 왜 오는지를 알아야 한다. 만약 지도자가 파리의 출처를 모르면 파리는 곧 그의 콧잔등에 내려앉는다. 시경(詩經)에도 청렴을 강조한 ‘승영구구(蠅營狗苟)’라는 말이 있다. 그 뜻은 권력자의 주변을 맴돌며 파리가 ‘잉잉(營營)’거리듯 할 소리 안 할 소리 다 해가며 아부하고, 개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먹듯이 오로지 이득만 취하는 간신배를 말한다.

승영구구들의 아첨 문화가 조직에 뿌리내리면 아부하지 않는 사람들은 바른 사람이 아니라 융통성이 없거나 출세를 포기한 ‘모난 돌’이 되고 만다. 반면 승영구구들은 겉으로는 충성스런 표정을 지으며 상관의 마음을 사지만, 아랫사람들에게는 원칙을 주장하며 빡빡하게 군다. 게다가 그들은 아부가 통하는 상사가 있는 동안 한몫 잡고 승부수까지 던져야 하므로 늘 시간이 촉박하다.

이런 충성은 ‘사이비(似而非)’다. 그럴듯해도 아니란 말이다. 문제는 승영구구들이 이미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다. 조직과 조직원들에게는 큰 재앙이 아닐 수 없다.

곽정식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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