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위 아 더 월드’ 꿈꾼 팝의 대부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Thriller) 앨범을 제작한 미국 팝 음악계의 거장 퀸시 존스가 3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91세.
4일 AP통신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존스는 이날 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자택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사망 원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유가족은 “우리 가족에겐 그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겠지만, 우리는 그가 살았던 위대한 삶을 축하한다. 그와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또 없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20세기 팝 시장에서 가장 다재다능한 뮤지션으로 평가받는 존스는 1933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이혼 뒤 아버지와 함께 워싱턴주로 이사한 뒤 14세 때 시애틀의 클럽에서 전설적 음악가 레이 찰스의 밴드에 들어가 트럼펫을 연주하며 본격적인 음악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이후 75년 넘게 아티스트이자 작곡가, 편곡가,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재즈·팝·영화 음악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경력을 쌓았다. 1950년대부터 클리퍼드 브라운, 듀크 엘링턴 등 유명 재즈 아티스트의 앨범을 작업하며 두각을 나타낸 그는 마이클 잭슨의 솔로 앨범 ‘오프 더 월’(Off the Wall, 1979)에 이어 전세계적으로 1억1000만장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 앨범 ‘스릴러’(1982)를 제작해 마이클 잭슨을 최고의 팝스타로 만들었다. 이후 마이클 잭슨과 ‘배드’(BAD, 1987) 앨범도 협업하는 등 손대는 것마다 히트시키는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며, 미국 대중음악의 지형을 바꿔 놓았다.
1985년 아프리카 기근 구호를 위한 올스타 자선 싱글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를 프로듀싱한 것도 그의 음악 경력의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였다. 당시 마이클 잭슨이 라이오넬 리치와 노래를 공동 작곡하며 올스타 뮤지션들을 이끌었다. 이 싱글은 세계적으로 2000만장 이상 판매됐다. 재즈 빅밴드의 리더로 트럼펫과 피아노 연주에도 능했던 존스는 프랭크 시내트라, 아레사 플랭클린, 도나 서머 등과도 협업해 수십 개의 히트 음반을 만들었다. 각종 상도 휩쓸었다. 2011년 미국 국가예술훈장 수훈에 이어 2013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역대 그래미상 후보에 가장 많이 오른 비욘세와 제이지(각각 88회)에 이어 80번이나 후보에 올라 그중 28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한국과의 인연도 남달랐다. 2011년 처음 방한해 K팝 산업 전반을 둘러본 데 이어, 2년 뒤인 2013년에는 서울에서 첫 내한공연을 열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그는 “‘강남스타일’ 등 K팝이 미국에서 크게 히트했는데 한국과 미국은 음악적으로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 같다”며 “한국 아티스트들이 미국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내다봤다. 존스의 예측은 몇 년 뒤 현실이 됐다. 그는 지난 3월 자신의 91번째 생일엔 페이스북에 장문의 감사 글을 적었다.
“당신의 가능성과 긍정적인 잠재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그게 바로 19세와 91세의 차이다. 위대한 분들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나눠줄 수 있기를 기도한다.”
황지영 기자 hwang.jee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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