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정기국회 시정연설마저 떠넘긴 대통령…12년 만의 불참, 총리 대독
2025년 예산안 시정연설이 진행되던 4일 국회 본회의장에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은 안 보였다. 박근혜 정부에서 시작해 문재인 정부를 거쳐 꾸준히 이어지던 대통령의 정기국회 시정연설 관행이 12년 만에 깨진 것이다.
이날 국회 본회의엔 윤 대통령 대신 한덕수 국무총리가 나왔다. 한 총리는 2025년도 정부 예산안 677조4000억 원에 대한 대통령 시정연설을 대독했다. 총리가 대독한 건 2012년 10월 이명박 대통령 때 김황식 총리 이후 처음이다.
정기국회 시정연설은 예산심의권을 가진 국회와 납세자인 국민에게 내년도 정부 살림살이 계획을 설명하는 자리다. 대통령의 시정 연설이 ‘의회 존중’ 척도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1988년 첫 시정연설부터가 1987년 체제의 산물이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직접 시정연설을 하지 않았으나,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첫해에 직접 시정연설을 했다.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엔 매년 대통령이 국회를 찾았다. 윤 대통령도 2022년과 지난해 두 차례 시정 연설을 했다.
윤 대통령이 시정연설에 불참한 건 야당이 명태균씨 통화 내용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고리로 탄핵을 언급하는 등 정쟁 수위를 높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민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이날 YTN 라디오에 출연해 “(장외 집회에 나섰던) 그분들이 출석하는데, 시정연설을 하면서 예산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얘기한다는 게 적절한가”라고 엄호했다.
야당 의원들은 이날 윤 대통령 불참에 항의하는 의미로 대독하는 한 총리를 향해 “서면으로 하라”는 야유를 보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시정연설은) 대통령이 당연히 해야 할 책임인데 그걸 저버렸다”고 했고,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처럼 노골적으로 국회와 국민을 무시한 대통령이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장 밖에서 ‘공천개입 통화 대통령이 해명하라’ ‘김건희를 특검하라’ 등의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었다.
야당의 이런 행태도 처음은 아니다. 윤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22년 10월 시정연설 때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야당이 시정연설을 ‘보이콧’하고 로텐더홀에서 시위를 벌였다. 당시 윤 대통령은 “정치 상황이 어떻더라도 과거 노태우 대통령 시절부터 지금까지 우리 헌정사에서 하나의 관행으로 굳어져 온 것이 무너졌다는 데 안타까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그랬던 윤 대통령 스스로 시정연설 관행을 12년 만에 깬 것이다.
정치권 원로들은 야당의 공세가 거친 것과는 무관하게 “대통령이 시정연설만큼은 포기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11~14대 국회의원을 지낸 유준상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통화에서 “국정 운영을 놓고 국회 갈등을 부각하며 국민에게 불안감을 안겨줬던 게 좋은 결실을 본 적이 없다”며 “여야 가릴 것 없이 역대 정권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명태균으로 국정 운영이 엉망이 되고 끌려가다시피 한 게 두 달째”라며 “이 상황에서 국회 정상화를 운운하며 총리에게 예산안 관련 발언을 떠넘긴 건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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