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고위대표 "러시아, 北 파병 받고 '비핵화 입장' 바꿔…의무 포기"
"러시아는 북한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대가로 북한 비핵화에 대한 입장을 바꾸고, 핵 확산 방지를 위한 핵심 의무를 포기했습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4일 서울에서 열린 한·유럽연합(EU) 전략대화를 앞두고 진행된 중앙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자신들이 지지해서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를 스스로 위반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북한이 무기와 병력을 보내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노골적으로 지원하는 가운데 보렐 대표는 "한국과 유럽 안보의 상호 연계성이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해졌다"며 이날 체결된 '한·EU 외교·국방 파트너십'의 의미를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EU는 북한의 파병을 어떻게 평가하나.
A : 북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무기와 탄약을 제공했다. 여기에 더해 병력 수천 명을 보내 러시아와 협력하고 있는데, 이는 다수의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한 명백한 위반에 해당한다. 역내와 세계 안보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일방적인 적대 행위다.
Q : 북한은 지난달 31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9형도 발사했다.
A : 대량살상무기를 운반할 수단을 계속 개발하겠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한·미 정보당국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로 향한 북한 병력은 이미 1만여명 수준이다. 우크라이나 전선에 배치된 인원은 8000여명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1일 보렐 대표는 북한군 파병에 맞서 "관계국과 협력해 상응한 대응을 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Q : EU의 대응 방향은.
A : 우리의 입장은 분명하다.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른 핵 무기 보유국의 지위를 비롯한 다른 어떤 특수한 지위도 가질 수 없다. 북한은 모든 핵 무기, 기타 대량살상무기,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기존 핵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식'으로 포기(abandon)하고 모든 관련 활동을 중단해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현행 NPT 체제에서 북한의 핵 보유는 어떤 식으로든 용인될 수 없다는 보렐 대표의 발언은 북한이 '사실상의(de facto)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핵·미사일 도발을 계속하고, 국제사회에서도 최근 북한 비핵화에 대한 회의론이 이는 가운데 나온 것이라 주목된다. 지난 7~8월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강에서 4년만에 비핵화 표현이 사라졌고,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서 9년만에 비핵화 표현이 빠지기도 했다.
보렐 대표는 전날에는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해 "평화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이날 오후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도 만나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강력히 규탄했다"고 국방부가 밝혔다.
Q : 우크라이나 전황을 어떻게 예상하나.
A : 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러시아는 전쟁을 악화하고 있으며, 어떤 식의 도움이든 절박하게 구하고 있다. 우리는 군사 지원을 포함한 모든 측면에서 우크라이나를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이다. 이는 (지난해 11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제안한) '우크라이나 평화 공식'(Peace Formula)에 대한 지지도 포함한다.
Q :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최초의 한·EU 전략대화를 한다.
A : 한국과 EU의 관계는 최근 몇 년간 성공 궤도에 올랐다. 주요 20개국(G20)에서 긴밀히 협력했고 반도체를 넘어서는 경제 분야 어젠다를 공유하며 디지털 협력에서도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Q : 이번 전략대화에서 '한·EU 안보·국방 파트너십'이 체결될 전망인데.
A : 양국 관계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불법 침략 전쟁으로 북·러 협력이 강화되면서 (한국과 유럽) 안보의 상호 연계성이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해졌다. 이런 중요한 순간에 파트너십이 체결된 것이다. 이 정치적 틀을 기반으로 향후 몇 년 동안 EU와 한국은 서로를 보완·강화할 수 있고 공통의 이익이 있는 분야에서 대화와 협력을 확대할 예정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이날 체결된 '한·EU 안보·국방 파트너십은 해양안보, 사이버, 군축·비확산 등 총 15개의 안보·방위 분야별 협력을 포함하고 있다. 한국 측 국장급, EU 측 실장급 인사가 참석하는 연례 안보·방위 대화를 개최하고, 북한의 불법 사이버 활동에 대응해 다자·지역·양자 협력을 지속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군축,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관련 협의를 강화하고 해양·우주 안보 대화 협의체를 설치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다만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합의 문서로 서문, 기본 체계, 협력 분야, 추진 방향 등 총 41개 항으로 구성됐다는 게 외교부의 설명이다.
보렐 고위대표는 방한에 앞서 지난 1일에는 일본 도쿄를 방문해 'EU-일본 안보·방위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해당 파트너십은 중국의 해양 진출을 염두에 두고 체결됐다. 국장급 안보·방위 대화 신설 및 연례 개최, 일본 자위대와 EU 해군 부대의 공동 훈련, 제3국을 포함한 합동 훈련 등이 명시됐다.
Q : '한·EU 안보·국방 파트너십'으로 향후 협력이 어떻게 달라지나.
A : 이 정치적인 프레임워크는 전통·비전통 안보를 모두 아우른다. 우선 해양 안보, 하이브리드, 사이버 위협, '해외 정보 조작 및 개입 위협'(FIMI), 중요 인프라 보호, 우주, 비확산 및 군축과 같은 비전통적 안보 영역이 있다. 또한 국방 관련 영역에선 위기 관리와 평화 유지, (연합)연습·훈련, 방위 산업, 상호 국방 이니셔티브 교류 등에서 협력이 강화할 것이다.
Q : 양측에 갖는 의미는.
A : 우리가 협력할 문제를 담은 목록은 길다. 그러나 이번 파트너십은 단순히 협력할 주제를 나열한 종이 한 장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와 역내 평화·안정에 더욱 기여할 수 있는 나침반(compass)이 될 것이다. 한국과 EU가 안보·국방 문제에서 더욱 긴밀히 공조·협력하겠다는 의미이며, 공동의 위협과 도전에 함께 대응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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