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전'은 옛말...건설사 경쟁 사라진 서울 아파트 재건축 시장

김원 2024. 11. 4.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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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도심에 아파트 단지 모습. 뉴스1

서울 강남권에서도 재건축 사업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유찰되거나, 경쟁사가 없어 수의계약으로 전환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공사비 급등으로 재건축 사업성이 떨어지면서 건설사의 ‘출혈경쟁’ 유인이 줄고 있는 것이다.

4일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방배동 방배7구역 재건축 조합은 지난 4월과 6월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을 진행했는데, 모두 무응찰로 유찰됐다. 결국 조합은 지난달 8일 시공 조건을 바꿔 세 번째 입찰 공고를 내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SK에코플랜트가 입찰참여 의향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유효 경쟁 입찰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입찰 마감일인 다음달 9일까지 두 업체가 입찰제안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 조합이 제시한 3.3㎡(평)당 공사비는 약 980만원으로 최근 재건축 시공사 선정 공고를 낸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2차(950만원)와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5단지(840만원)보다 높은 수준이지만, 시공사 선정에 난항을 겪고 있다. 송파구 방이동 한양3차아파트 조합 역시 지난달 21일까지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의향서를 접수 받았지만, 건설사 한 곳도 제출하지 않아 유찰됐다.

시공사의 단독 참여로 유찰된 사례도 있다.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정비사업 시공사 선정 시 한 곳의 건설사만 입찰에 참여하면 유찰된다. 다만 유찰이 2회 이상 반복될 경우 정비사업 조합은 단독 입찰한 건설사와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총공사비 1조원(1조2831억원)이 넘는 신반포2차아파트 재건축 사업에 두 차례의 시공사 입찰이 현대건설의 단독 참여로 모두 유찰됐다. 조합은 현대건설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수의계약을 준비 중이다. 용산구 원효로4가 산호아파트 재건축 조합은 벌써 세 차례나 시공사 선정에 실패했다. 지난 4월과 6월에는 입찰에 참여한 건설사가 없었고, 지난달 세 번째 입찰에는 롯데건설만 단독 참여하면서 경쟁입찰이 성립되지 않아서다. 이달로 예정된 4차 입찰에 다시 롯데건설만 참여하면 수의계약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박경민 기자


일반적으로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의 공사비는 조합이 정한다. 시공사 입찰 공고를 내면서 희망하는 공사비를 적는데, 이를 수용한 건설사가 입찰에 응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수주 경쟁이 치열해지면 건설사가 역(逆)으로 조합에 입찰 가격 이하를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시공사 선정 유찰이 잦은 데에는 원자잿값, 인건비 등 공사 원가상승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실제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매달 집계하는 건설 공사비 지수는 최근 3년 새 26% 상승했다. 건설 현장에서 체감하는 공사비 상승 폭은 이보다 크다. 건설원가관리 전문기업 터너앤타운젠드코리아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주거시설 공사비는 평당 공사비는 700만원 내외로, 지난 10년간 약 1.9배 상승(평당 360만→700만원)했다. 최근 시공사 선정 입찰공고를 낸 강남권 재건축 사업장의 경우 공사비는 최소 평당 800만원 이상이며, 고급 마감재와 설계를 적용한 하이엔드 아파트의 경우 평당 1000만원대에 육박하는 곳도 있다.

재건축 조합과 건설사 간 입장 차이도 크다. 조합은 비싼 고급 자재를 사용하면서도 저렴하게 시공하길 원하는데, 건설사는 적정 이윤을 줄이면서 수주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정비사업 관계자는 “서울에서는 조합원에게 큰 이익이 돌아가는 저층 아파트 재건축이 사실상 마무리됐다”며 “사업성 확보(조합원 분담금 최소화)에 부담을 느끼는 조합 입장에선 공사비를 최대한 낮춰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 건설사 임원은 “업계 전반에 출혈 경쟁을 최대한 피하고, 확실한 사업장만 수주하려는 선별수주 기조가 강해졌다”고 분석했다.

건설 경기 침체가 예상보다 길어진 데다 최소 향후 2~3년간 이런 상황이 지속할 수 있다는 우려가 업계에 팽배한 것도 이유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영업 파트에서 재건축 사업 수주를 원해도 수익성 등을 고려하는 내부 검증 절차 단계에서 무산되는 일이 잦아졌다”며 “특히 수주 경쟁을 벌일 경우 성공하든 실패하든 비용이 들고, 브랜드 가치 하락 등이 나타날 수 있어 내부에서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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