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이나 과시면 어때요, 책으로 깊어질 수 있다면
[황융하 기자]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소식과 그 여파는 삽시간에 번져나갔다. 해묵은 바람은 아닐 것이다. 활자 책이 사람을 다시금 묶어냈다. 묵직한 언어들이 물 흐르듯 사람들의 가슴을, 걸림돌이 없다며 디디고 나갔다.
이제는 오래된 활자 속에 잠들어 있던 의미들이 되살아나고, 독서는 먼지를 쓸쓸히 털어내는 혼자의 고요한 행위가 아니게 되었다. 어느새 책이 있는 풍경은 일상의 또 다른 언어가 되었다.
시작은 젊은 세대의 손끝에서였다. MZ세대를 중심으로 SNS에 책과 함께하는 인증 사진들을 보란 듯이 올리며 독서는 다시금 되돌아온 트렌드가 되었다. 사람들은 책 속에서 자아를 찾고 책장을 넘기며 삶의 무늬를 새겼다.
독서는 또렷하게 말해지지 않아도 감각되는 방식으로 자리 잡으려 한다. 책 속에 감춰진 텍스트를 찾아보려는 손길들이 담백하게 익어 어딘가로 멀리 달아난 가을 햇살을 붙잡으려는 듯, 자기들만의 고백하는 언어로 피어나고 있었다.
▲ Cafe 부산시, 보수동 책방 골목 근처의 카페 |
ⓒ 황융하 |
독서란 오래전부터 그 자체로 고백이었다. 다만 예전엔 혼자만의 몫이었다면, 이제는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마음이 더해진 것 같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손에 든 책을 찍어 올리고, 그 속에서 발견한 언어를 남긴다. 조용하게 낙엽을 모아보는 빗질처럼, 한낱 인증 사진이 아닌, 손끝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대화다. 독서는 타인과 이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들추고, 작은 불씨처럼 빛을 남긴다.
이럴수록 독서의 고백이 겉멋에 그치는 한순간의 유행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독서가 진정성을 가질 때는 자기의 삶에 스며들어 일상의 결이 될 때다. 이 길을 열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
각자의 삶과 일상 속에서 책이 자리할 수 있도록, 독서 모임이 있는 작은 서점과 바람에 흔들리는 창가가 있는 도서관이 필요하다. 그런 공간에서 누군가는 조용히 자아를 돌아보고, 또 누군가는 낯선 문장 속에서 자기 내면을 찾을 것이다.
독서는 모름지기 개인의 취미를 넘어서, 고독과 사유가 공존하는 고유한 순간들이다. 남들과 다른 취미이자 교양의 영토를 찾으려는, 세상의 속도와는 다르게 자기의 시간을 공유하는 어울림이 되고 있다. 이 시간 속에서 책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고 서로를 정감으로 이해하게 한다. 비록 각기 다른 나이와 배경을 가졌어도, 사람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깊어지는 독서의 고백을 경험한다.
중년의 텍스트 힙은 젊은 층 못지않으며 또한 오프라인 독서 모임도 활발하다. 여느 곳에서나 깊이 있는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그들은 서평과 리뷰를 나누고, 차 한 잔과 어울리며 책에 관한 생각을 서로에게 스며들게 한다. 그 만남은 독서 이상의 진솔한 소통이며, 저마다 살아온 생의 먼 격차를 메우기도 한다.
▲ Text Hip 자기만의 '활자 글 빛-멋 내기'를 인증하며 공유하다. 사진 출처=https://unsplash.com/ |
ⓒ Raspopova Marina |
사람과 사람이 함께 이어질 수 있는 공간으로서,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이 공간들이 사라지지 않아야, 독서는 허영의 장이 아닌 삶의 무늬가 되어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것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여전히 그늘진 자리에서 묵묵히 글을 쓴다. 이 땅의 문학은, 글이 있는 모든 풍경은 아직도 불안한 토양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작가들에게 보람된 지원과 제도가 실질적으로 마련될 때, 독자들은 더 깊고 풍부한 문학적 경험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은 문장이 빛을 발하고, 독자는 그 빛 속에서 자신을 찾는다. 이것이 진정한 독서의 의미다.
독서는 책장을 넘기는 손끝의 행위만으로 재단되지 않는다. 다양한 플랫폼과 연계되어, 마음을 들여다보는 사색의 과정이며, 감각된 시간이자 느린 호흡이다. 독서는 그 안에 품은 고요한 기운으로, 우리를 삶의 본질에 한 발짝 더 가까이 이끈다. 누군가는 스쳐 지나가겠지만, 그 안에 담긴 작고 단단한 의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소식이 아직도 찬연한 가운데, 이 여운은 활자 독서의 장면들을 다층적으로 불러왔다. 지금의 독서 열풍은 겨울 햇살 아래서도 사그라지지 않는 안온한 온기처럼 잔잔히 머물러야 할 것이다. 손끝에 전해지는 불씨들이 한순간의 열기가 아닌, 오래된 향기와 같은 문학의 숨결로 남아야 하리라.
책읽기라는 행위가 다시금 사람들 마음에 깊이 스며들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어.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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