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기괴한 소리, '보이지 않는 힘' 표현한 예술가들
[이규승 기자]
▲ 정철인&이진형 <어떤 힘(Invisible Forces)> 공연 장면 |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이 공연을 만든) 정철인 안무가가 낯설지 않다. 지금까지 그의 작품을 다섯 번 정도 관람했으니 나름 적지 않은 팬심으로 이번 작품을 소개하려 한다. 공연을 본 후 "그동안의 영역에서 한 단계 도약하는 터닝포인트"라고 느꼈다. 앞서 그의 작품을 보며 든 단상부터 전한다.
#1 "현 세계에 관심"
국립현대무용단이 지속 가능한 레퍼토리를 발굴하기 위한 공모사업인 '스텝업'(2019)에서 그를 처음 만났는데,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 0g >에 관한 기억이 생생하다. '중력의 질감'이라는 물리적인 소재를 무용 안으로 끌어들였다. 사람의 팔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다른 무용수가 위로 올리는 동작을 반복하며, 중력을 거스르는 낙하운동을 공연했다.
#2 "오브제를 활용한 무용의 극대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노들섬 야외마당에서 <위버멘쉬>(2021)를 만났다. 가방을 움켜 든 남자가 러닝머신에서 리듬을 탄다. 축제의 특성상 묘기에 가까운 동작은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을 끌 만했다. 공연을 마치고 그에게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물었다. 이에 "바쁜 일상에서 권태를 벗어나고 싶은 현대인"이라고 답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점은 동작을 충분하게 표현하기 위해 오브제를 활용한 부분이다.
#3 "현대인의 일상을 표현"
'믿고 보는 공연'으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창작산실'(2022)에서 개막작인 '멜랑콜리댄스컴퍼니'의 <모빌리티>를 직관했다. 대학로의 공연장에서 몰입한 안무가의 첫 작품이라고 얘기해도 좋을 듯싶었다. '몽환적'이라는 뜻을 가진 단체를 설립했던 그가 앞으로 남기고 싶은 방향을 "우리가 사는 세상을 예술로 바라보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4 "인간의 감정에 솔직한 무용"
국내에서 활동 중인 안무가들과 실험적인 안무 방식을 협력한 '2024 NDD(New Daegu Dance)'의 소식을 들었다. 당시 그는 <당신의 징후>라는 작품을 통해 치유되지 않는 현대인의 감정을 보여줬다. 인간의 기본적인 표현 수단인 감정을 쉽게 표출하지 못하는 사회구조에서 벗어나 무대를 통해 감정 출구에 집중하고픈 마음을 엿보았다.
#5 "다른 영역의 예술가와 함께"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현대인의 감정과 내면의 목소리에 무용의 메시지를 담은 공통점이 보인다. 하지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멜랑콜리댄스컴퍼니'를 창단한 이래 언제나 다른 예술가와 협업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을 비롯해 다양한 공연과 축제에서 다른 분야의 예술가와 머리를 맞대왔다. 그래서 단순하게 현대무용의 본질을 넘어 확장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 정철인&이진형 <어떤 힘(Invisible Forces)> 공연 장면 |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이에 관해 그는 "동시대를 예술로 바라보고, 새로운 영감을 얻는 창작물을 무용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래서 역동적인 움직임뿐 아니라 새로운 이미지를 제시한다. 남들이 사용하지 않은 기법으로 우리가 상상하는 모습을 현실로 만드는 경이로움은 덤이다.
그는 작품 속에서 '포스트 휴먼시대'를 앞두고 "시대와 사회가 변하면서 우리가 마주하는 인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 되묻는다. 이는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과 기계의 경계는 모호해지기 때문에 인간과 기술을 긴밀하게 연결 지어 인간을 탐색하는 시대가 도래한다고 내다봤다. 인간에게 닥친 새로운 삶의 환경과 인간의 정체성을 성찰하는 것이 작품의 첫 번째 목표다. 하지만 몇 년 간의 일관된 작업방식에 터닝포인트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활동에서 (스스로) 다소 정체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주목 받는 예술가와 함께 무용을 고민했던 그는 최근에 남모를 고민에 빠졌다. 수준 높은 작품으로 모두가 갈망하는 단체와 공연했지만, 아마도 100퍼센트 만족하지 않았나 보다. 그가 지난 3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한 < 어떤 힘(Invisible Forces) >(정철인X이진형)으로 대중 앞에 나왔을 때 필자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 발자취와는 다른 길을 시도하는 변곡점이 될 것이다."
이번 작품은 이전과 다른 차별점이 보인다. 물리 현상에 고민하던 그의 무용은 현실에서 설명할 수 없는 영역까지 확대된다. 그래서 'Invisible Forces'의 해석을 '보이지 않는 힘'이 아니라 '어떤 힘'이라고 자신 있게 불렀을 것이다.
그의 고민은 '얽힘(entanglement)'과 '비국소성(nonlocality)'이라는 낯선 용어와 연관 있다. 그가 모티브로 했던 이것은 물리학에서 관심받는 소재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가지고 장면을 만들어 내고, 기술을 바탕으로 장치와 연결함으로써 사람과 사물의 관계를 실험했다.
공연에 앞서 다소 난해한 용어에 관한 배경 설명을 준비했다. '비국소성'은 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다른 공간에서 일어나는 작용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는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두 물체는 서로 영향을 줄 수 없다"라는 물리학 '국소성 원리(principle of locality)인데, 천재 물리학자인 알버트 아인슈타인(1879~1955)의 '양자역학과 실재'에서 처음으로 명시됐다. '얽힘'은 "두 입자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앞서 국소성을 믿었던 아인슈타인에게는 믿기 어려워했던 현상이다. 당시에는 말도 안 되는 이론이라 치부됐지만, 최근에 와서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입증될 정도로 주목받는다.
안무가는 그동안 보이는 힘(Visible Forces)에 집중해 왔다면, 이제는 (보이지 않는) 어떤 힘(Invisible Forces)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른 장르의 예술가와 협업하는 고집력은 변하지 않았고, 무용을 통해 표현하는 메시지는 일관되다. 하지만 안무가는 그가 소재로 삼았던 배경에서 무궁무진한 영역으로 확장하는 발판이라고 힘주어 말하겠다.
▲ 정철인&이진형 <어떤 힘(Invisible Forces)> 공연 장면 |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그동안의 작업은 신체와 신체, 사물과 신체의 직접적, 물리적 연결을 통해 눈에 보이는 운동적 에너지를 무대화했다면, 이번 실험은 드러나지 않는 에너지를 찾아내고, '얽힘'에 연결된 모든 것을 보는 이에게 보이지 않는 운동성까지 감각할 수 있도록 실험의 재료를 찾아냅니다."
▲ 2023년 안무가 정철인과 이진형 작가는 ‘포스트 휴먼’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무용x기술 창작랩’에서 기술 시대를 사유하며 예술과 기술의 관계성을 탐구했다. 그들은 경계 없는 무용을 상상했다. 무용의 미래를 질문하면서 함께 답을 찾아갔다. 이들은 반년간 만나면서 서로에게 다양한 질문들을 던짐으로써 새로운 시선을 찾았다. |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무대에 등장하는 남자는 양손에 두 개의 의자를 쥐고 등장한다. 그가 정해놓은 위치에 의자를 놓자 이내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제멋대로 움직인다. 아마도 수십 년 전에 흑백텔레비전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유리 겔라(78)의 초인적인 마술에 비유하고 싶다. 눈앞에서 목격한 남자는 불안한 심리상태를 감추지 못한다. 배경음악에 증폭된 불안감은 이빨을 가는 소리로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통제하고 싶지만 제어하지 못하는 불가항적 상황에 간혹 제정신이 돌아와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 감싼다.
불안한 남자는 느끼는 것과 다르게 초인적인 힘을 명료 적으로 바라본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의자를 몇 번이고 제 자리에 놓으려 반복한다. 알면서도 거스르고 싶은 인간의 의지. 불안하지만 통제하려는 복합적인 심리 상태가 엿보인다. 보이지 않는 힘을 표현하는 무대장치는 무용수의 몸동작과 오브제들에 의한 것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공간은 바람에 의해서 휘청거리는 장면으로 시각적인 긴장감을 고취하며, 살을 에는 듯한 기괴한 소리는 불가항력적인 에너지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에 청각적 한계를 정하지 않는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그릇과 주전자는 앞서 물리학에서 관심을 받는 얽힘과 비국소성'에 묘한 힘을 보여준다. 초인적인 힘에 의해 하늘로 치솟은 주전자가 기울면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먹는 남자는 '어떤 힘'의 존재를 인정한다. 이어서 소리에 대해서도 경계를 멈추지 않는 남자는 움직이는 헤드폰을 쥐어 잡고 제멋대로의 의자 귀에 걸어둘 정도로 역학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 정철인&이진형 <어떤 힘(Invisible Forces)> 포스터 |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보이지 않는 에너지는 올해 초 공개되어 1천만 명을 넘긴 화제의 영화 <파묘>와 묘하게 겹쳐 보인다.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 인간은 초인성을 통제하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못해 불안감에 휩싸인다. 하지만 조상의 힘이 아니라 현대 물리학에서 인정받은 어떤 힘에 관한 설명을 당당하게 표현했다. 우리가 정의한 보이지 않는 운동성이 단순히 마술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현대기술을 바탕으로 '얽힘'과 '비국소성'을 무용의 언어로 표현했다. 이와 관련하여 정철인 안무가와 이진형 작가는 일상에서 보이지 않는 다양한 에너지와 유령 같은 존재들을 무대 위에서 현실적으로 완성했다. 관객들은 보이지 않는 힘을 통하여 "우리 일상에서도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을 자아낸다며 절반의 성공이라며. 마지막으로 이번 작품에 함께한 두 예술가는 이번 작품에 대한 관전 포인트를 이렇게 드러냈다.
"기대 이상의 보이지 않는 피지컬 한 춤이 되기도, 비현실이 현실로 되어가는 부분을 발견해 보세요" (정철인 안무가)
"무용수 외적인 오브제의 움직임과 블랙박스 안에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집중해 보세요" (이진형 미디어작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포스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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