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담으면 좋지" 이 도시락이 7천원이라니
매월 첫째주, 방방곡곡 진솔한 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는 '체험 함양 삶의 현장'을 연재한다. 주간함양 곽영군 기자가 함양의 치열한 노동 현장 속으로 들어가 체험하면서 직업에 대한 정보와 함께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흥미롭게 전하는 연재 코너이다. <기자말>
[주간함양 곽영군]
직장인들에게 점심 식사 문제는 은근히 큰 고민거리다. 매일 점심시간마다 반복되는 선택의 순간에 뭘 먹어야 할지 모른 채, 주변 음식점을 배회하며 이곳저곳 메뉴를 살펴보는 일도 어느새 지겨워지기 마련이다. 자극적인 외식 음식들에 입맛이 질려갈 때쯤이면, 따뜻한 집밥이 간절해진다. 사실, 요즘처럼 모두가 바쁘게 돌아가는 시대에 집밥을 매일 챙겨 먹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다 문득, 학창 시절로 돌아가 급식 메뉴를 마주하며 여러 음식을 먹던 시절이 그리워지곤 한다. 생각해보면 정해진 시간마다 규칙적으로 따뜻한 음식을 받을 수 있었던 학교 급식은 꽤나 행복한 순간이었다.
체험을 안내해 줄 시니어 손맛 담당자를 만났다. 이름을 밝히기 부끄럽다는 그녀는 소박한 미소를 지으며 오늘 체험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오늘은 어머니들과 함께 음식을 조리하는 과정에 참여하고, 준비된 음식을 도시락에 담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완성된 도시락을 아버님들과 함께 배달하는 체험까지 해보실 수 있을 거예요."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위생모자, 팔토시, 마스크, 장갑 등을 착용했다. 대부분의 음식들은 어머니들이 아침 일찍부터 준비해 두셨다. 테이블 위의 큰 냄비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음식들은 마치 집에서 방금 나온 것 같은 따뜻함을 풍겼다. 담당자께서 먼저 도시락에 음식을 담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김치는 푸짐하게 담아주시고, 다음은 애호박볶음입니다" 시범을 보고 천천히 따라 해보려 했지만,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김치를 집게로 옮길 때마다 김칫국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몇 번 담고 나니 손가락에 힘이 빠져 저리기까지 했다.
튀겨진 닭튀김에 양념 소스를 아낌없이 부었다. 대형 나무 주걱으로 비벼가며 양념이 고루 배도록 버무렸다. 아몬드와 옹심이까지 더하니 점점 그럴듯한 닭강정이 완성되었다. 어머니 두 분이 맛을 보시더니 약간 부족하다며 물엿을 추가로 넣으셨다. 다시 맛을 보고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야 맛이 제대로 났다"며 만족스러워하셨다. 손맛과 직감으로 음식을 조율하시는 어머니들의 모습은 셰프 못지않은 숙련미가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김치찌개를 완성할 차례였다. 다진 마늘과 대파를 넣어가며 간을 맞추고 국자로 저어가며 맛을 조율했다. 한 어머니께서 맛을 보시고는 "맛술을 조금 넣으면 깊은 맛이 나겠다"며 세월의 노하우를 방출하셨다. 정량이 아닌 감으로 더한 맛술 한 방울이 찌개의 깊이를 더했다. 어머니들의 손맛이란, 이런 감각적인 배합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겠구나 하고 새삼 느꼈다.
모든 음식이 완성되고 도시락을 마무리할 시간이 왔다. 보온 도시락통에 김치찌개를 따로 담고, 밥과 닭강정을 넣어 도시락을 차곡차곡 완성했다.
어머니들은 고객 요청에 따라 밥의 양을 조절하며 "푸짐하게 먹어야지"라며 정량보다 조금 더 밥을 담았다. 관리자께서는 밥을 너무 많이 담은 것 같다고 이야기했지만, 어머니들은 웃으면서 "많이 먹으면 좋지"라고 웃어 보였다. 마치 자식들에게 밥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고 싶어 하는 어머니들의 마음은 것 같아 더욱 따뜻했다. 더불어 이렇게 완성된 도시락이 7천 원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하나하나 정성으로 만들어진 도시락은 곧 두 분의 아버님이 차량에 실어 배달하러 나섰다. 올해 81세가 되신 한 어르신과 함께 배달에 동행하기로 했다. 대구에서 함양으로 3년 전 이사 오신 어르신은 배달 일을 통해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씀하셨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 (곽영군)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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