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숨는 사회

염다연 2024. 11. 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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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결혼을 앞둔 30대 여성 A씨는 집으로 찾아온 경찰을 보고 어리둥절해했다.

그런데도 보이스피싱 범죄가 발생하면 피해자의 경솔함을 탓하는 게 일반적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은 모두 "당한 내가 잘못이지"라면서 자책했다.

피해자들이 보이스피싱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다시 일상에 복귀하기 위해서는 심리적인 치료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입체적인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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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결혼을 앞둔 30대 여성 A씨는 집으로 찾아온 경찰을 보고 어리둥절해했다. 경찰이 자기를 찾아 집까지 올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A씨 휴대전화는 악성 애플리케이션(앱)에 감염돼 원격으로 탈취된 상태였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그게 확인됐는데, 정작 당사자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A씨는 결혼 준비 자금인 3000만원을 현금으로 뽑아 전달하기 직전이었다. 처음에는 범죄에 노출됐다는 경찰 설명을 믿지 않았다가, 가족까지 동원한 끝에 겨우 설득할 수 있었다.

URL 링크 한 줄을 눌렀을 뿐인데 누군가에게 전화해도, 경찰에게 신고해도 피싱범이 전화를 받는 상황. 그렇게 교묘한 방식으로 진화한 보이스피싱은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다가온다. 한국소비자원 연구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피해 경험이 없는 집단과 있는 집단을 구분 지을 변수는 확인된 바 없다. 금융 사기 교육 여부나 성별, 재무적 특성, 학력 등의 변수에서도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교육 수준이 높거나 지식이 뛰어나다고 해서 보이스피싱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는 보이스피싱 범죄가 날로 조직화·전문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나 걸려라’식의 수법은 옛날얘기다. 사회·경제적 상황에 맞게 각본을 다듬고, 개인별 맞춤형 시나리오까지 설정해 접근한다.

그런데도 보이스피싱 범죄가 발생하면 피해자의 경솔함을 탓하는 게 일반적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은 모두 "당한 내가 잘못이지"라면서 자책했다.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은 "누구한테 말도 못 했고, 이젠 전화만 와도 불안하다"며 "1년 정도가 지났는데 여전히 우울증 약도 먹고 있다"고 털어놨다. 심지어 자살까지 생각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보이스피싱을 당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속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직 그 차례가 오지 않은 것일 뿐입니다."

경찰청 피싱 범죄수사계장이 전한 얘기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보이스피싱에 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2006년 보이스피싱과 관련한 피해 사례가 알려진 이후 수많은 정책이 쏟아졌지만, 대부분 ‘피싱을 당하지 않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제는 피싱 범죄 사전예방과 함께 피해 구제의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도록 금전적 회복과 심리적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 문제는 심리적인 트라우마를 극복하도록 돕는 사업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보이스피싱에 관한 현재의 사회적 안전망은 이처럼 엉성하다.

피해자들이 보이스피싱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다시 일상에 복귀하기 위해서는 심리적인 치료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입체적인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

염다연 기자 allsal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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